[커버 스토리] 백희나, 즐겁게 읽어주면 그만입니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5월호 『나는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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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으면서 꼭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어요. (2019.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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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상한 손님』 이 출간됐을 때, 백희나 작가에게 물었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 ‘달록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행복해졌는데, 작가님은 무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느냐”고. 백희나 작가는 말했다. “그림책 작업이 나에겐 아이스크림이에요.” 이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느낌이라니. 몸은 고되도 마음은 행복하다는 엄마이자 주부인 작가에게 ‘그림책 작업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공간을 선물해 주고 싶은 심정이 됐다.

 

2016년  『이상한 엄마』 를 시작으로  『알사탕』 , 『이상한 손님』  그리고  『나는 개다』 까지. 4년 연속, 1년에 1권씩 꼬박꼬박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백희나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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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가 없는 유일한 그림책


태국에서 지내고 계시죠? 오랜만에 작업실을 찾은 기분이 어떠세요?

 

익숙한 느낌이죠. 작업실 전구가 나간 걸 이제야 깨닫고요.(웃음) 큰아이 때문에 태국에서 지내고 있는데요. 태국에는 따로 작업실이 없어요. 작은 방에서 온갖 인형을 만들고 그렇게 지냈어요.

 

올해도 봄에 신작이 나왔어요.


매년 봄에 책이 나온다는 기대감이 제게도 독자들께도 있는 것 같아요. 마감을 지키고 싶었어요.

 

트위터에  『나는 개다』 의 작업 과정을 올리셔서 더 기다려졌던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백희나 작가의 신작은 사야지”라는 트윗을 봤는데요. 어떤 이야기든 백희나의 작품이라면 우선 사는 독자들이 많아요.

 

저는 신작이 나오면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요. SNS, 블로그, 인터넷 서점 리뷰까지 모두 찾아 읽어요. 컴퓨터 화면을 새로 고치고 또 고치고. 정말 자주 찾아봐요.(웃음)

 

『알사탕』 의 주인공 ‘동동이’와 ‘구슬이’가 다시 등장했어요.  『나는 개다』 의 표지로 등장한 구슬이 모습이  『알사탕』 에도 나오는데, 이번에는 목줄이 풀린 모습이에요.

 

『알사탕』 을 만들 때 구슬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구슬이 표정이 너무 웃긴 거예요. 개의 애환과 마음이 모두 담겨 있어서 다음에 구슬이로 책을 만들어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찌감치 주제를 구상했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빨랐어요. 작년 여름에 더미 북을 만들었고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건 9월쯤이니까 빨리 작업한 편에 속하죠.

 

『나는 개다』 의 첫 장을 열면 “방울이, 순영이, 구슬이에게”라는 문장이 나와요. 실제 키우셨던 강아지 이름이죠?

 

맞아요. 어렸을 때 키웠던 개들이에요. 키웠던 순서대로고요. 제가 지금 태국에서 살고 있는데요. 개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까 마당이 있는 친정집에 개를 보냈어요. 개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거예요. 나를 키우던 부모가 다른 집으로 나를 보내버린 거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작품이  『나는 개다』 예요.

 

동물이 주인공인 작품이 처음은 아닌데요. 이번 책은 제목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편집장님이 “판타지가 없는 유일한 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맞아요. 이 그림책은 개의 시선으로 개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인데요.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지 못해도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 가는 구슬이를 보면서 저도 많이 힘을 얻었어요. 세상이 점점 발전하면서 막을 수 있는 재해가 많아졌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는 찾아오고요.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싶은 충격적인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묵묵히 살아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그림의 배경이 모두 달라요.

 

그래서 작업하기가 힘들었어요. 예전에는 조금 각도를 다르게 인형을 세우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나는 개다』 는 매 장면마다 새로 만들어야 했어요. 한낮에 해가 안 나서 옥상에 가서 찍은 장면도 있는데, 바람이 강해서 세트가 넘어지고…. 이번 책은 모든 장면이 어려웠어요.

 

구슬이의 엄마 ‘방울이’는 해마다 새끼를 엄청나게 낳았어요. 구슬이의 가계도가 나오는 장면은 독자들의 도움을 받으셨다고요.

 

SNS로 성견(成犬) 정면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어요. 구슬이가 믹스 견이니까 품종 견보다 믹스 견 사진을 골라서 인형을 만들었어요. 실제 개의 이름을 그림책에도 썼고요. 개에게 이름이 있다는 건 특별한 개라는 뜻이잖아요. 한 개에 얽힌 특별한 사연을 읽으니 확실히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강아지가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진에도 담겨 있었어요. 믹스 견 사진을 보내 주신 독자들께 책을 보내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어요.

 

구슬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열심히 대답을 해요. 어쩌면 나의 가족일지 모르는 ‘누군가’이기 때문이죠.


연대인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하지만 구슬이의 인간 아빠는 “구슬이 조용”이라고 다그칩니다. 구슬이는 생각하죠. “아부지는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다.”이 이야기를 하는 구슬이의 표정을 보는데 뭔가 찔리더라고요.

 

해석은 독자의 몫인 것 같아요. 스토리에 집착하고 그림의 해석에 골몰하면 그림책의 핵심을 놓치게 돼요. 작품을 할 때마다 주문처럼 외는 건 ‘다섯 살이 읽어도 쉽게 이해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수백 번 생각하니까 그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 있어요. 그 점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림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재밌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슬픈 내용이든 즐거운 내용이든 즐거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어요.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인가요?

 

물론이에요. 책을 만들면서 제가 생각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 때 어떤 의미가 깔려 있었다는 사실이 있을 뿐, 그 메시지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가장 큰 목표는 독자가 즐겁게 읽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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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품이란 건 없어요

 

아버지와 동동이가 나가고, 구슬이는 베란다에 누워 있어요. 아파트 단지의 소음을 들으면서 계속 중얼거립니다. “기다린다.” “기다린다기다린다기다린다.” 그러다 할머니와 산책을 나가게 되자 무척 신이 납니다.

 

구슬이가 달리는 장면이라서 어렵게 만들었어요. 앞발이 들려 있어야 하니까요. 이번에는 스컬피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재료로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는데 어렵더라고요. 마감을 지키려다 보니 다시 스컬피를 쓰게 됐어요.

 

구슬이네 집은 아버지, 할머니, 동동이 이렇게 3인 가족이에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읽혔어요.

 

만약에 누군가가 없는 가정의 아이가 이 그림책을 본다면, ‘나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아버지 안경은 왜 뿌옇게 만들었나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알사탕』 에서 동동이도 소통이 어려운 친구였잖아요. 우리가 대화를 하려면 서로 눈을 쳐다봐야 하는데, 눈이 잘 안 보이는 거예요. 렌즈가 뿌여니까요.

 

어릴 적부터 인형을 유달리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생기면 바비 인형을 사시죠?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위안이 안 돼요.(웃음)

 

어시스트를 두실 생각은 없나요?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해요. 이메일 작업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작가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으로 작업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건 없어요.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이 절실하지만  『구름빵』  작업을 하면서 사람에게 신뢰를 잃은 트라우마가 너무 강해서요. 작가와 출판사의 관계가 아닌 개인적으로 작품을 공유하는 일은 아직 섣불리 용기가 안 나요.

 

독자의 시선, 반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독자들을 굉장히 많이 의식하고 있어요. 더미북을 만들 때도 독자 입장에서 이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오래 생각해요. 충분히 좋다고 느낄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많이 생각해요. 모든 작가가 별세계에서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대중 예술을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나만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오프라인 공간에서 독자들을 자주 만나시진 않는데요. 이유가 있나요?

 

책을 통해서 만나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독자에게 직접 책을 설명하는 일은 인터뷰 같은 경우와는 조금 다른 문제예요. 책이 독자를 만나는 것이지,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건 아니라는 고지식한 생각이 아직 있는 것 같아요. 오롯이 책과 독자가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 사이를 제가 끼어들고 싶진 않아요.

 

그림책 평론도 많이 늘었어요.

 

평론이 나오는 일은 무척 감사하게 생각해요. 우선 그림책 지면이 많지 않고 평론가도 많지 않으니까요. 제 작품이 다뤄진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전문가들이 작품을 분석해서 평을 쓰는 일은 좋다고 생각해요. 가끔 완전히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요. 그럴 땐 ‘좀 물어 보시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실감하시죠?

 

그런 것 같아요. 그림책은 정말 시작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림책을 쉬운 작업으로 보는 시선이 아직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있죠. 제가 긴 공백기를 갖고 1인 출판사를 잠시 했었잖아요. 서점이랑 계약하려고 미팅을 갔는데 공급률을 좀 올려 달라고 하니까 “책에 글도 별로 없는데”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그림책을 소개하는 지면은 많지 않죠. 제가 그림책 작가 소개글에 “작업할 때마다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지만, 그림책 작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위로이자 영광”이라고 쓰는데요. 실제 제 마음이에요. 그림책은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책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요. 동시에 영광이고요. ‘아이를 위한 책이니까’라고 경시하면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거잖아요. 정말 속상하고 창피한 일이죠. 어른을 위한 책보다 더 큰 부담감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세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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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마음을 지켜야 해요

 

『알사탕』 이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와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일본 그림책상’에서 ‘번역 그림책상’과 ‘독자상’을 동시에 수상했어요. 일본 그림책상은 해마다 지난 연도 10월부터 해당 연도 9월까지 일본에서 출간된 모든 그림책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는데, 독자상 선정에는 전국의 어린이들도 투표에 참여한다고요.

 

상을 받으러 일본에 갔는데 참 기뻤어요. 무엇보다 독자들이 준 상이라 더 감사했고요.

 

『알사탕』 이 일본에서 6쇄를 찍었고, 작년에 일본 하쿠센샤(백천사)에서 주관하는 ‘제11회 MOE 그림책서점대상’도 수상했습니다. 한국 그림책이 10위 안에 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요.

 

‘MOE 그림책서점대상’은 일본 각지의 서점에서 그림책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 3,000여 명이 직접 읽고 ‘가장 팔고 싶은 그림책’에 주는 상이에요.  『알사탕』 은 6위에 랭크됐고요. 『MOE』는 굉장히 오래된 그림책 잡지인데, 저도 즐겨 보는 책이어서 너무 기뻤어요.

 

최근에 인상 깊게 본 한국 그림책이 있나요?


서현 작가님의  『간질간질』 도 좋았고 이수지 작가님의  『강이』 도 좋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책은 그림으로 스토리텔링이 되는 작품이에요. 복잡한 것보다 직관적으로 쉽게 흘러가는 책들이 좋아요. 그러면서 참신한 시도, 개성이 있다면 훌륭한 책이죠.

 

후배 작가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늘 빠짐없이 말하는 건 계약을 잘하라는 이야기예요. 신인이더라도 잘 따져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가가 돼서 일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천시까지는 아니지만,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무시를 받는 상황이 종종 찾아올 거예요. 나는 그림책 작업이 너무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쉽게 보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는 게 정말 중요해요. 저는 제가 그림책 작가라는 걸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정말로요. 그렇기 때문에 순탄치 못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주변의 반응이 생각보다 못하더라도 그림책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또 마감을 잘 지키면 좋겠어요. 출판사는 작품을 기다리니까요. 프로라면 마감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년 봄에 후속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고 싶어요 . 『구름빵』  저작권과 관련한 재판이 아직 안 끝났기 때문에 그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삶과 죽음, 인간의 선함과 악함,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에게  『나는 개다』 를 어떤 목소리로 읽어주면 좋을까요?

 

고어(古語)풍으로 읽어 주면 좋지 않을까요?(웃음) 어르신 말투로 개를 흉내 내서 읽어도 좋을 것 같고요.

 

그림책을 각별히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책이라는 물건이 가성비를 따지면 살 수 없는 상품이잖아요. 스마트폰만 보기도 바쁜 세상에 책을 보고, 또 그림책을 읽어 주는 분들 덕분에 작가들이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백희나 - 2005년 『구름빵』으로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픽션 부문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장수탕 선녀님』으로 한국출판문화상과 창원아동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2017년에는 『알사탕』이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어너리스트(IBBY Honour List)에 선정되었다. 쓰고 그린 작품으로 『나는 개다』 『이상한 손님』 『알사탕』 『이상한 엄마』 『장수탕 선녀님』 등이 있다.

 

 

 

 


 

 

나는 개다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구슬이에게는 어느 쓸쓸한 밤 기꺼이 곁을 내준 인간 가족도 있습니다. 혼자라면 더욱 길었을 밤을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함께 보냈던 기억은 또 다른 밤들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 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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