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리 칼리올라 “소심한 게 아니라 정중한 거죠”

소심한 개인주의자를 위한 카툰 에세이 『핀란드에서 온 마티』, 『마티, 내 안의 작은 핀란드인』 출간 기념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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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처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늘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나의 편의보다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요. (2019.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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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지붕이 있는 정류장 안에 누군가 서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고, 외출해야 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나가지 않고 기다린다. 널찍한 빈자리가 난 것을 봤지만 자리를 옮기면 옆 사람이 자신 때문이라고 오해할까봐 걱정하고, 길을 잃었는데도 다른 사람을 붙잡고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그저 머뭇거린다.  『핀란드에서 온 마티』 ,  『마티, 내 안의 작은 핀란드인』 의 주인공 ‘마티’의 모습이다.


핀란드의 그래픽 디자이너 ‘카롤리나 코로넨’이 그린 이 카툰에세이는 전형적인 핀란드 사람들의 성격을 귀여운 캐릭터로 표현해 핀란드 만화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소심하지만 정중한 핀란드 사람들의 매력이 담긴 두 책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mbc every1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한 페트리 칼리올라가 번역을 맡았다.


지난 2월 28일에는 합정동 ‘디어라이프’에서  『핀란드에서 온 마티』 , 『마티, 내 안의 작은 핀란드인』 의 출간을 기념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개그우먼 심정은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북토크는 두 책을 번역한 페트리 칼리올라와 함께 핀란드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얼핏 지나치게 소심해 보이는 마티의 행동 이면에는 타인을 향한 배려와 개인공간을 중요시하는 핀란드인의 태도가 깔려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누구나 내 안에 숨어 있던 ‘나만의 마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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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는 개인공간이 중요해요


심정은 :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페트: 올해부터 새로운 근무지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핀란드 교육을 수입하는 한국 회사인데요, 아직 대학원 졸업도 못했는데 감사하게도 과장으로 뽑아주셔서(웃음)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3~4월경에 핀란드의 유아교육방식을 담은 유치원을 오픈할 예정이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심정은 : 이번에 번역 작업을 하셨는데, 『핀란드에서 온 마티』 , 『마티, 내 안의 작은 핀란드인』 은 어떤 책인가요?


페트리 : 쉽게 말하면 핀란드 사람들의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놀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균적으로 핀란드 사람들은 책의 주인공인 마티와 굉장히 비슷해요. 아주 조심스럽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배려하려고 노력하죠.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거든요. 이 책을 읽으신다면 핀란드 사람들에 대해 잘 알게 되실 거예요. 사실 아까 처음 뵈었을 때, 저에게 “아주 잘생겼다”고 칭찬을 해주셨잖아요. 그때 약간 음…하고 당황스러웠어요.(웃음) 이런 모습이 핀란드 사람의 전형이에요.

 

심정은 : 저는 그 말을 굉장히 좋아하신 줄 알았는데 오해였군요.(웃음) 핀란드 현지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책이에요. 주인공의 이름 ‘마티’는 핀란드에서 흔한 이름인가요?


페트리 : 굉장히 흔한 핀란드 남자 이름이에요. 좀 전통적인 느낌이라, 나이 든 사람들의 이름인 경우가 많고요. 한국으로 따지면 ‘철수’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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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은 : 마티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살피고 소심한 성격인데요. 실제로 마티의 일상이 핀란드 사람들의 일상과 흡사한지 궁금해요.


페트리 :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정말 비슷해요. 대표적인 핀란드 사람들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죠. 예를 들어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외출해야 할 시간이에요. 그런데 현관문 밖에서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나가지 않아요.(웃음) 그 사람과 마주치는 어색한 순간을 피하고 싶어서요. 얼른 나가야하는 순간이더라도,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는 게 핀란드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에요.

 

심정은 :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고 있는데, 데면데면한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걱정하는 듯한 느낌과 비슷할까요?


페트리 : 네 비슷해요. 이에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제가 핀란드에서 아파트 8층에 살았거든요. 이웃들과도 어느 정도 왕래가 있고 잘 아는 사이였어요. 어느 날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옆집 남자가 뒤에서 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저를 보더니 엘리베이터를 안 타고 계단으로 8층까지 걸어 올라가셨어요.(웃음) 물론 모든 핀란드인이 이정도로 심하게 타인을 어색해하는 건 아니지만, 어색하게 함께 있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큰 것 같아요.

 

심정은 : 그럼 한국에 살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한국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인가요?


페트리: 핀란드는 인구밀도에 비해 땅이 엄청나게 넓어요. 그래서 개인 공간을 아주 넓게 쓰는 편이에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개인 공간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아주 힘들죠.(웃음)

 

심정은 :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경험이 많을 것 같아요.


페트리 : 네 그렇죠.(웃음) 핀란드에서는 줄을 설 때도 1m씩 간격을 두고 줄을 서거든요. 처음 한국에 와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마트에서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설 때 1m 정도 떨어져서 서 있었더니 한국 사람들이 제 앞으로 계속 들어왔어요.(웃음) 그런 부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죠. 여전히 힘든 점이 있긴 하지만,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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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인의 필수 습관, 적정거리 유지


심정은 : 이 책을 접하고 흥미로웠던 단어가 있어요. ‘적정거리’라는 단어인데요. 이렇게 타인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좀 생소한 개념이에요. 핀란드 사람들에게 적정거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페트리 : 핀란드 사람들은 개인 공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일정 간격 이상의 거리를 두고 생활하죠. 공공장소에서 타인과 가까이 붙어있어야 할 때도 보통 1m 정도의 간격은 유지하려고 해요. 다른 사람의 공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고, 내 공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여유를 두는 거리이자 배려인 거죠.

 

심정은 : 그럼 핀란드 사람들은 가족 간에도 적정거리를 지키나요?


페트리 : 낯선 사람들과 적정거리를 지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잘 지켜주는 편이에요. 생각해보면 핀란드에서도 여자들끼리는 스킨십을 잘 하는 것 같아요. 남자와 남자 사이의 적정거리가 멀죠.(웃음) 제가 호주에서 2년간 살다가 핀란드에 돌아와서 굉장히 친한 친구들을 만났어요.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가워서 잘 지냈냐고 말하면서 어깨를 잡았는데, 친구가 “왜 나를 만지냐”며 놀라더라고요. 그때 ‘아 여기는 핀란드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심정은 : 저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자주 하는 편이거든요. 만약 핀란드 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조심해야겠네요.


페트리 : 제 생각에는 한국인과 핀란드인 사이에서는 스킨십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도 낯선 사람을 터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생각하잖아요. 사실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프랑스 사람들이에요.(웃음) 뽀뽀로 인사를 하니까요. 프랑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뽀뽀를 하려고 껴안는데, 그걸 핀란드 사람들은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하죠.

 

심정은 : 마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페트리 : 마티처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늘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나의 편의보다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요. 특히 운전할 때, 마티처럼 타인을 먼저 배려하면서 조금씩 양보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웃음)

 

심정은 : 번역 작업은 어땠어요?


페트리 : 작년 3월에 번역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핀란드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라 많이 바빴거든요. 출판사에서 번역 제의를 받고 고민했는데, 이 책은 이미 잘 알고 있던 책이라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간단한 만화 형식의 책이기 때문에 ‘특별히 번역할 게 없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어려웠어요. 우리나라의 문화를 한국 독자분들께서 이해하기 쉽도록 소개해야 하고, 원작의 위트를 살려야 하는 작업이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심정은 : 번역자로서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길 바라나요?


페트: 핀란드 사람들의 성격을 담은 내용이지만, 만화라서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어요. 혹시 이 책을 읽고 핀란드 사람들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걱정돼요. 마티가 지나치게 소심하고 신경을 많이 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정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볍고 편하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티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보시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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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에게 묻다, 독자와의 Q&A


한국 문화에 반해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문화가 가장 매력적이었나요?

 

너무 많지만, 하나를 꼽자면 ‘정(情)’이죠. 핀란드에서 가족들이 한국으로 여행 온 적 있는데, 가족들도 정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께서 저희 집 주소를 잘 못 찾아서 지하철역 입구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다가와서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대요. 누군가 도움을 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하셨죠. 저도 한국 사람들의 정을 느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져요. 특히 요즘은 방송에서 저를 보신 분들이 많아서 식당에 가면 정을 많이 느낍니다. 이모님들께서 주시는 반찬의 양이 다르더라고요.(웃음)

 

한국과 핀란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핀란드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 비슷해요.

사우나, 노래방, 술.(웃음)

 

한국인 다 됐다고 느끼면서도, ‘난 역시 핀란드인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적 있나요?


자일리톨 껌이 떨어지면 불안할 때요.(웃음) 실제로 핀란드인들은 자일리톨 껌을 정말 자주 씹거든요. 한국에서도 늘 자일리톨 껌을 찾을 때마다 핀란드인이라는 걸 느껴요.

 

한국과 핀란드의 직장 문화는 아주 다를 텐데요.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한국은 핀란드에 비해서 일을 정말 열심히 하고, 많이 해요. 핀란드는 출퇴근 시간이 엄격해서 퇴근 시간이 되면 곧바로 집에 가는 게 당연한데, 한국에서는 곧장 퇴근하는 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도 저는 제 할 일이 끝나면 보통 퇴근시간에 맞춰 곧바로 퇴근하는 편이에요.(웃음) 맡은 일을 다 처리했다면 다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으려 해요. 대표님께 핀란드의 직장 문화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어서요.(웃음)

 

한국 사람들이 핀란드에 가서 살면 행복할까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요. 실제로 어떤 한국 친구는 핀란드에 가서 굉장히 좋아했고, 어떤 친구는 굉장히 지루해하는 걸 봤거든요. 한국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놀거리, 즐길거리를 찾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핀란드는 그렇지 않아요. 한국의 술집은 9시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핀란드에서는 9시에 술 파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요. 해가 지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요. 그래서 핀란드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지만, 한국의 문화에 익숙한 분들은 심심하고 지루하다고 느끼실 거예요.


 

 

마티, 내 안의 작은 핀란드인카롤리나 코로넨 저/페트리 칼리올라 역 | 문학동네
‘마티’는 전형적인 핀란드 사람이다. 핀란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마티도 평화로움과 조용함, 개인 공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려고 한다. 마티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받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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