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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용서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첫 번째 소설집 『청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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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용서라는 말을 잘 안 믿어요. 그 단어 자체가 성립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가 누굴 용서해요. 결국은 우리 다 똑같은 인간인데. (2018.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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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영에게는 친구 미영이 있다. “‘씨발’, ‘좆 같은’이라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그녀는 룸살롱 사장의 아내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지영을 보며 미영은 생각한다. 자신은 예쁘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은 청귤 같고, 미영은 달고 부드러운 “진짜 귤” 같다고.

 

닮은 점보다 다른 구석이 더 많아 보이는 이들은 또 있다. 필리핀에서 온 여성 로레나와 가족이 된 ‘나’가 있고, 늘 왕따였던 ‘나’와 늘 사람들의 호감을 샀던 ‘리나’가 있다. 그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호기심을 가지고, 호의를 보이고, 관계를 맺는다. 김혜나 작가는 “서로 다른 사람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 대해 말했다.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곧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6편의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그 누구도 자기 안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그시 응시하고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방식 그대로, 김혜나는 ‘작가의 말’의 첫 문단을 다음과 같이 썼다.

 

어린 시절, 나는 못생기고 뚱뚱한 아이였다. 어릴 때 앓은 뇌수막염의 후유증으로 나는 실제 사시이기까지 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나를 돼지, 사팔뜨기라고 부르며 놀리고 괴롭혔다. 학교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당연히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 『청귤』  243쪽)

 

김혜나의 인물들은 그녀를 닮았다. 그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팠던 순간을 끄집어내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꺼내놓고 보니 내 안에 있던 나쁜 감정들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작가는 말했다.

 

전작 『제리』 ,  『정크』 ,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청귤』  안에도 개인적 경험을 녹여냈다. 그녀는 인물의 입을 빌려 “거짓말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나는 오로지 진실을 이야기해요”라는 한 마디가 더 깊숙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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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2010년에 등단하셨는데  『청귤』 이 첫 번째 소설집이에요. 늦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해요. 어떠세요?

 

맞아요. 제가 장편소설로 등단했고 계속 장편 형태로 발표를 하다 보니까 단편을 많이 쓰지도 못했고요. 아무래도 장편으로 등단한 분들은 단편 청탁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장편으로 등단해서 좋은 점도 굉장히 많았죠. 그런데 보통은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단편으로 등단을 해서 첫 번째 책으로 소설집을 내잖아요. 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된 것 같은데(웃음), 소설집이 나와서 정말 기뻐요. 첫 소설집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너무 새롭고 설레요. 처음 이 책을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 첫 책을 만드는 것처럼 행복했어요. 그동안 작업했던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작품도 실려 있잖아요. ‘작가의 말’에서 직접 밝히기도 하셨고요. 잊고 싶은 기억일 것 같은데 피하지 않고 직면하셨어요. 『청귤』 의 인물들처럼요.


사실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좋지는 않아요. 특히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적응도 못했고 항상 겉도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졸업한 이후로는 빨리 잊었던 것 같아요. 한 번도 그때를 떠올린 적도 없고요. 그런데  『제리』 를 쓰고 난 다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더 어렸을 때의 이야기들을 쓰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걸 왜 써야 되지? 왜 자꾸 쓰게 되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한 편 두 편 쓰고 나서 보니까 불편했던 기억들이 더 이상 내 안에 머물지 않고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일들이 그렇듯이 지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동안은 말하지 않고 감춰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불편했었을 수도 있고요. 사실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잘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시였다거나 왕따였다거나 그런 이야기들이요. 그런데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들에 대한 나쁜 감정들은 사라진 것 같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스님한테 요가 명상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스님이 ‘자비’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어요. ‘자’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고 ‘비’는 슬픔을 나누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이 세계가 기쁨으로 가득차고 슬픔은 모두 소멸되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 명상법이라고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게, 어떻게 보면 단순한 말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말을 잘 안 하잖아요. 기쁨 일이 있어도 말 안 하고, 안 좋은 일 같은 건 더 숨기게 되잖아요. 특히 가까운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 말을 잘 못 하고요. 그런 것들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자, 그러면 슬픔을 가진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고 슬픔이 조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쓰게 됐어요.

 

등단 전부터 요가 강의를 하셨잖아요. 지금도 강사로 일하고 계시죠?


네, 맞아요.

 

소설가에게 부업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네. 꼭 소설가라서가 아니라, 예술가들은 다 프리랜서잖아요. 수입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적은 돈이라도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급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커요. 그렇다고 하고 있는 일을 아예 놓을 수는 없고요. 제 주변에서도 요즘 요가 지도사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세요. 소설가만이 아니라 그림 그리시는 분, 노래하시는 분, 연기하시는 분들도요. 자신이 하는 일과 같이 할 수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예술가 동료 중에 실제로 시작하신 분들도 있어요.

 

혹시 정유정 작가님인가요(웃음)?


정유정 작가님은 아니에요(웃음). 작가님이 운동을 오랫동안 꾸준히 해오셨는데, 요가는 올해 들어서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운동할 때 안 쓰는 근육을 쓰니까, 여러 가지로 몸을 쓸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두 분이 히말라야에 다녀오신 지도 꽤 됐죠?


거의 4~5년 됐죠.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계신가 봐요.


네, 지금도 제일 친한 작가죠.

 

정유정 작가님이 먼저 제안하신 거였죠? 어떻게 같이 떠나게 되신 거예요?


그때 유정 선생님이  『28』 이라는 소설을 쓰시고 난 뒤였는데요. 번아웃 되셨던 것 같아요. 에너지가 방전되고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느낌이 처음이셨나 봐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힘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의식을 되찾기 위해서 가셨던 것 같고요. 저는 그때 등단하고 장편을 두 권 냈을 때였는데, 꿈이 이뤄진 다음에 오는 실망과 상실감, 회의감 같은 게 있었어요. 간절히 원하던 꿈이었어도 이뤄진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간절히 취직을 원했어도 회사에 들어가면 힘들 때가 있는 것처럼요(웃음).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 작가로서의 일이 다른 점이 있죠. 그냥 글만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관계도 계속 해야 하고. 그래서 두 번째 책을 내고 나서 ‘내가 글을 평생 쓸 수 있을까, 작가를 계속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약간 ‘글을 더 쓰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었어요. ‘작가를 안 하면 뭘 해야 되나’ 하는 정체성 고민도 했고요. 그래서 내가 진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뭔지 다시 한 번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갔던 것 같아요.

 


가짜 같은 현실, 진짜 같은 소설


『청귤』 을 읽으면서 ‘끝까지 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고통의 순간이든 환희의 순간이든,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는 거예요. 쓰시면서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이 책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와 「그랑 주떼」를 제일 힘들게 썼어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중심인물의 입장과 시선에서 묘사를 시작하거든요.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내가 그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써요. 그러다 보니까 두 소설을 쓸 때는 너무 힘들더라고요. 쓰고 싶지 않은 부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힘들게 쓰고 나서 느껴지는 보람이나 만족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독자 반응도 보셨어요?


사실 저는 되게 재밌게 썼는데, 반응을 보고 조금 놀랐어요(웃음). 이전에 썼던 『제리』『정크』 가 굉장히 어둡고 우울한데, 그에 비해 단편은 분량이 적고 구조도 작으니까 재밌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의 이야기」의 화자도 그렇고 다른 인물들도 명랑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그런데 강유정 평론가님의 해설을 받고 ‘이 소설집에서 상처와 고통이라는 부분을 크게 보셨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독자들 리뷰를 보거나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은 재밌게 쓰셨는데, 독자들은 왜 고통스럽게 읽었을까요?


저는 계속 이 글을 읽고 고쳤잖아요. 언어폭력도 매일 시달리다 보면 그게 폭력인 줄 모르는 것처럼, 제가 하도 많이 읽다 보니까 그렇게 상처와 고통이 심한 소설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웃음). 쓸 때는 그런 거에 깊이 빠져 있지 않았어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그랑 주떼」 외에는 다 즐겁게 작업한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보면서요. 그렇게 쓰다 보니까 끝까지 감정을 밀고 나가듯이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성격이, 에둘러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내가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회사 같은 데 가면 다 돌려 말하던데, 저는 의도를 모르겠더라고요(웃음).

 

안 좋은 기억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잖아요.  『청귤』 의 인물들은 안 그래요. 작가님도 그런가요?


저도 생각 안 하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묻어뒀던 감정의 응어리라든가, 그런 걸 기억하고 있으면 살기 너무 힘들죠. 특히 회사 생활하시는 분들은 상사한테 들었던 안 좋은 말을 계속 기억해서 뭐하겠어요(웃음). 빨리 털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묻어뒀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언제인가요?


글을 쓸 때랑 요가 할 때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이야기」가 그런 걸 비유적으로 쓴 소설인데요.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감춰놨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더 깊게 쓰게 되고, 자연히 그 감정의 끝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글쓰기도 나를 바라보고, 발견하고, 평상시에 쉽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하나의 매개체인 것 같아요. 요가라는 것도 결국은 나를 바라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요가 명상 하면서 내 안에 숨겨져 있었던 진짜 욕망, 진짜 상처, 진짜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못 살죠.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고, 감정적으로도 이미 지나간 일을 굳이 꺼내볼 필요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들 그냥 잊고 사는데, 그런 것들을 조금 더 바라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우리 삶과 개개인의 존재에게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지 못하니까 자꾸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글을 쓸수록 내 안의 이야기를 깊이 보게 된다고 하셨는데요. 내면에서 반발이 일어나지는 않나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그것까지는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 하는 거죠.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항상 더 솔직한 이야기, 더 깊은 이야기, 더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만, 그걸 소설적 기법이나 장치로 바꿔서 쓰는 경우는 있죠. 허구, 상징, 알레고리 같은 걸 써서 더 작품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중간에 멈추지는 않는 것 같고요.

 

‘이 소설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쓰기란 어려울 것 같아요. ‘이건 상상해서 쓴 이야기이고, 나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할 때 보다요.


아직도 제가 현실적인 것보다는 꿈과 환상을 더 믿고 쫓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실제인지 허구인지 선택하는 건 독자의 몫이고, 저는 그게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 있다는 걸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인 것 같아요. 만들어진 세계, 만들어진 인물들보다는 진짜 인물들을 토대로 쓴 소설들을 좋아하고요. 소설가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쓰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런 소설이 되게 재밌어요. 그게 더 진짜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게 가짜 같지가 않고 진짜 같기 때문이에요.

 

소설이 진짜 같아서 좋다고요?


현실의 모든 일들은 거짓말 같은 거예요. 가족도 나한테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선생님도 나한테 진리를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해, 이게 너한테 좋은 거야’ 하면서, 누가 봐도 거짓말인 거 다 아는데도, 그렇게 말하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형식은 허구이지만 그 안에서 항상 진실한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리얼리즘 소설들을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저 자신에게서 소설적 모티프를 찾는 성향이 생긴 것 같아요. 항상 생각하는 건 ‘내가 해보지도 않은 걸 쓰지는 말자’는 거예요. 내자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냥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혹은 유행한다고 해서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느낀 걸 쓰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더 끄집어내게 되는 것 같고요.

 

“김혜나의 소설은 육체적이다” 강유정 문학평론가가 해설에 쓴 문장인데요. 육체성에 집중하신 이유는 뭔가요? 고통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나요?


아무래도 요가를 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요가도 신체를 다루는 일이잖아요. 손가락을 위로 하느냐 아래로 하느냐에 따라서도 신경의 반응이 달라지고 에너지의 흐름이 달라지는데, 그런 것들을 매일 수련하고 연구하다 보니까 소설을 묘사할 때도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게 되는 것 같아요. 평상시에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요.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더 전문적으로 쓰려는 노력도 했어요. 특히 「그랑 주떼」나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를 쓸 때 그랬죠. 저는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상시 몸의 반응들이 다 내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육체가 흔들리면 마음도 흔들리는 거죠. 그런 부분들을 대충 묘사하지 않고 조금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해서, 그만큼 마음이 고통스럽다는 걸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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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로레나」의 ‘나’는 필리핀에서 온 외숙모 로레나에게 호감을 갖는데요. 그 감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했어요.


저와는 다른 것들에 잘 이끌리는 면이 저한테 있는 것 같아요. ‘로레나’는 ‘나’와 외모도 다르고 살아온 곳도 다르잖아요. 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게 알고 싶고 궁금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장치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시선이 가고요. 그렇게 다른 것들 속에서 제가 발견할 수 있는 건, 결국 우리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한 가지 정서죠. 똑같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똑같이 살아있는 인간이고, 겉보기에는 죽어 있는 듯 보이는 사람도 분명히 어딘가에는 불씨처럼 진심이라는 게 살아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유심히 들여다보는 거죠. 그게 인간관계를 잘 해나가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나랑 너무 달라 보이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도 내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결국에는 우리가 다 연결돼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함부로 타인에게 상처 입히지 않을 거고, 내 욕심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으로 인해서 궁극적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어요(웃음).

 

「청귤」의 미영과 지영도 상반된 타입 같잖아요. 작가님 안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다 있나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모르는 하나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잖아요. 저는 그게 거울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잘 바라보지 못했던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인 거죠.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사람도 나처럼 아팠고 상처 받았구나,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싶을 때가 있고 ‘나도 이랬는데, 정말 내 감정이랑 똑같다’ 하고 공감하게 될 때가 많잖아요.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말하는데, 읽는다는 건 깊이 있게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거잖아요. 사람도 책을 읽듯이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나와 같은 심리나 본성 같은 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미영과 지영의 커뮤니케이션도 서로 다른 사람 속에서 나 자신을 보게 되고 찾아가는 과정이죠.

 

소설가 지영이 이런 생각을 해요. “소설가야말로 겉보기에만 멋지고 신비로워 보일 뿐 실제로는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청귤 같은 존재였다” 여기에 작가님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 아닌가요(웃음)?


네, 아무래도 「청귤」에는 제가 작가 생활 하면서 현실적으로 느꼈던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쓰고 싶었어요.

 

작가로서 느끼는 바를 한 번쯤 이야기하고 싶으셨어요?


그런 것 같아요(웃음). 작가의 생활이 어떤 건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워낙 작가들이 소수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제 주변 분들은 되게 환상을 가지고 보시더라고요. 그런데 겉보기에 좋아 보여도 막상 들여다보면 안 힘든 사람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소설을 통해서 한 번 말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넣게 됐어요. 편집자랑 나누는 대화부터 시작해서 문예지는 점점 줄고 청탁은 점점 없어지는 이야기도 일부러 쓰게 됐어요. 그리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조금 특수한 면이 있는 게, 주변의 동료 작가들이 다 그런데요, 이게 직업이냐 아니냐의 논쟁이 항상 있어요.

 

이유가 뭔가요?


소설가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봉급이 없잖아요. 물론 고료를 받을 때도 있지만 안 받을 때도 있고, 인세가 들어올 때도 있지만 안 들어올 때가 더 많고요. 그래서 ‘정해진 벌이가 없는데 이걸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나’라는 고민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소설가라는 직업은 뭘까’라는 고민들을 하게 됐고요.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면 환상을 가지고 대단한 일을 하신다고 하는데(웃음), 사실 소설가들 안에서는 자괴감이 되게 큰 것 같아요. 내가 돈벌이를 못한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라고 할까요.

 

소설가가 감귤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청귤과 다르지 않다는 건, 언제 처음 느끼셨어요?


전자책이 확산되고 출판 시장이 축소되면서, 그쯤부터 느낀 것 같아요. 출판시장에 위기가 왔을 때 가장 먼저 축소시키는 게 한국 문학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명성과 허울만 남았을 뿐이고 실체는 되게 보잘 것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제가 작가의 생활에 대해서 소설에 쓴 이유는, 작가들이 사는 게 이렇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보다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이렇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원하는 걸 가진다고 해서 그게 곧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는 건 누구나 똑같이 힘들고 불편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잖아요. 그 정서 하나로 우리가 계속 삶을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은 지금 ‘감귤’인가요(웃음)?


청귤이나 감귤 사이에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제 생각인 것 같아요. 우리 다 똑같은 인간이잖아요. 사실 저는 용서라는 말을 잘 안 믿어요. 그 단어 자체가 성립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가 누굴 용서해요. 결국은 우리 다 똑같은 인간인데.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히고 나쁜 짓을 했어도 우리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죠. 용서가 되지도 않고요. 용서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에게 나쁘게 했던 사람이 있어도, 나도 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나도 누군가에게 똑같이 상처 주고 있고 나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이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저도 되게 늦게 알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 똑같은 피해자이고 가해자이고, 다 똑같은 청귤이고 감귤인 거죠. 그걸 느끼고 알게 되면 사람들에게 덜 상처 받게 되고 덜 화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의 ‘메이’는 유독 안쓰러운 인물이었어요. 아직도 어두운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 제가 가장 집중해 있는 인물은 ‘메이’예요. 그 소설을 올해 1~2월에 썼는데, 실제로 인도에 있을 때 썼어요. 현재 구상중인 장편소설이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도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와 힌두 신화들이 버무려진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그게 쓰고 싶어서 일단 단편으로 써본 거예요. 지금 계속 구상중이고 ‘메이’라는 인물에 빠져 있어요.

 

읽는 동안 ‘메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기억, 사건이 계속 궁금했는데요. 언제 만날 수 있나요?


이번에 인도에 가면 쓰려고 해요.

 

언제 가세요?


내년 1~3월 동안 있을 것 같아요.

 

요가 학교에 계시는 거죠?


네. 수업이 주로 오전에만 있어서요. 오후에는 작품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가는 면도 있어요(웃음). 외국에 있을 때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쓰기 좋은 것 같아요.


 

 

청귤김혜나 저 | 은행나무
자신이 떠안고 있는 상처로 인해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그 고통과 절망을 딛고 피투성이가 된 발을 힘겹게 떼며 한 걸음씩 걸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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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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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귤 <김혜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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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크 <김혜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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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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