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희망의 등불’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그리워하며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 시대는 스승이 부재하는 시대라고 말씀들 하시잖아요. 그런데 찾아보면 스승님들이 군데군데. 많이들 숨어 계시는 것 같아요. (2018. 10. 08)
마리안느(왼쪽)와 마가렛.
*이 글은 성기영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를 토대로 편지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을 쓴 일이 벌써 1년 반이 흘렀습니다. 2017년 3월에 낸 책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4월 개봉한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촬영할 때 오스트리아 취재를 같이 갔었습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향한 윤세영 감독님과 제작진의 애정이 묻어나는 좋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가렛 할머니는 가벼운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지만 그래도 요즘엔 비교적 건강하세요. 큰할머니 마가렛은 대장암 수술을 이겨 내신 후 요새는 정정하세요. 두 분께서 건강하고 평화롭게 노후를 지내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할머니는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40여 년간 한센병 환자와 그 자녀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셨어요.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한센병 환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드셨죠. 그리고 두 분은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소록도에서 봉사하고,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던 바람과 달리, 나이가 들어 소록도에 부담을 줄 수도 있음을 염려하여 2005년 11월 22일 편지 한 통을 남기고 20대 젊은 시절에 찾아와 평생을 몸담아왔던 소록도를 조용히 떠나셨어요.
두 분은 언론 인터뷰를 일체 하지 않았어요.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두 분은 완강히 거부하셨죠. 지금도 저는 조용하게 사시고 싶은 두 분의 노후를 본의 아니게 지켜드리지 못한 것 같아 사실 죄송하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에 취재를 갔을 때, 두 분의 건강이 좋지 않아 주로 가족, 친구, 친지 분들을 취재했어요. 설득은 물론 어려웠죠. 요양원에 계셨던 마가렛 할머니는 포기하신 듯 그냥 답변해주셨는데요. 병원에 입원 중이셨던 큰 할매, 마리안느 할머니는 처음엔 뵙기도 힘들었죠. 그래도 나중에는 저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친절히 답해 주셨어요. 나중에는 국제전화로도 많이 여쭤봤죠. 인상적이었던 건,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두 분의 가족이나 친지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참으로 훌륭한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하면서도, ‘성녀’처럼 위대한 일을 했다고 여기지는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이는 “간호사 일이 두 분의 적성에 맞았고, 그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기에 두 사람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하더군요. 그 나라의 그런, 어찌 보면 투철한 직업 정신과 담담한 객관성 같은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2016년 2월, 인스부르크 시내 요양원에서 마가렛
두 할매는 소록도를 떠나는 모습마저 아름다웠어요.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기가 참 어려운데 말이에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한 통의 편지만 남겨 놓고 사람들 몰래 소록도를 떠나셨죠. 책에도 편지 내용을 담았는데요. 그 편지는 작가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냥 독자 입장에서 감동적이기도 했고요. 제 인생을 많이 돌아보는 계기가 된 편지이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어 오랫동안 정든 곳을 그렇게 갑자기 떠나야 했으니,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싶어서 뭉클했습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할머니는 처음 소록도로 올 때 5년을 머물 것을 약속했지만, 43년간 이곳에서 살았어요. 두 분이 대단히 훌륭한 간호사이기 때문이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10대 이른 나이에서부터 학교를 다니면서 자격증을 따시고 열심히 병원 근무를 하셨고, 베테랑 간호사가 되셨어요. 훌륭한 간호사는 가장 어려운 처지의 환자들 곁에 있기를 원하겠지요. 그러니까 그분들이 간호 인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던 소록도로 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환우 분들이 점차 회복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큰 보람이고 기쁨이셨다고 합니다. 물론 하느님께로 향하는 깊은 신앙을 빼놓고서 43년 동안의 소록도에서의 행적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지요. 또한 이 분들은 소록도의 바다와 풍경을 너무 사랑하세요. 그렇게 바쁘게,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큰 간호사 업무에 집중하시면서, 어느덧 긴 시간이 흘러갔던 것 같네요.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그냥 봤을 때는 참 소박하시고 인상 좋으신 할머니들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분들을 뵙고 진짜 의인들이신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있거든요. 취재도 끝내고 책도 다 쓴 지금, 이분들은 제 생각엔, 영성계의 상위 1% 안에 드는 선한 영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도 영광스러운 경험이었고요. 한편으로 무소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요즘의 저희는 누구나, 더 못 가져서 불행해하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손에 뭐든 쥐는 걸 너무 싫어하셨는데도,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사셨거든요. 그런 면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또 취재를 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정말 외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구나 하는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작은 친절에도 참 고마워하시고 언제나 표정이 밝으시거든요. 제게는 참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6년 5월, 떠난 지 11년 만에 다시 찾은 소록도의 관사에서 마리안느.
소록도의 모든 환우분들께서, 할매들이 진심으로 '어머니처럼 잘해주셨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런 분들 또 뵙기 힘들다고. 두 분이 소록도에 오신 게 20대 후반인데, 그때도 이미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환우 분들의 '어머니'셨던 거죠. 또한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소록도 환우 분들이 당하신 고통들이 말할 수 없이 크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분들을 냉담하게 대했는데, 외국에서 오신 두 할머니가 우리를 대신해서 온 마음을 다해 섬겨 주셨던 거니까요.
노벨평화상 추진이 현재 진행 중인 것으로 알아요. 하지만 두 할매는 노벨평화상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세요. 몇 번이나 싫다고 거절하셨죠. 두 분은 유명해지는 걸 진심으로 꺼리시고, 조용한 생활을 좋아하세요. 특히 상을 받는 일은 더욱 좋아하지 않으세요. 이 분들의 선행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조용한 노후 생활을 원하시는 두 분의 뜻도 존중해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참 어려운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 시대는 스승이 부재하는 시대라고 말씀들 하시잖아요. 그런데 찾아보면 스승님들이 군데군데. 많이들 숨어 계시는 것 같아요. 진정한 스승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스승을 원하는 사람은 스스로 스승을 찾아다닐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분들이 갈 곳 모르고 방황하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온몸으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소록도의 환우 분들 이야기를 한다면, 책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참 많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분들도 스승이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환우분들께서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줄곧 마리안느와 마가렛에 대해 생각했다. 마리안느는 지평선처럼 넓고 너그러우며, 마가렛은 수직선처럼 높고 깊다. 아마도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렇게 하나의 십자가를 지탱해왔으리라. ‘희생’이란 가치가 일종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인 시대. 모두가 더 가지지 못해 불행한 이 시대에 이분들의 존재는 분명 희귀하고, 또 희귀하다.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287쪽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성기영 저 | 예담
먼 나라에서 온 간호사들이 사랑을 실천하며 헌신해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두 분의 일생을 진솔하게 풀어낸 기록이자, 우리네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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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하는가에 대한 대답과 따뜻한 용기를 몸소 실천한 이방의 간호사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소록도에서 보낸 43년,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소록도에서 봉사하고,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 20대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고 소록도에서 40여 년을 보내면서 마리안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