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맞짱 뜨는 독종 기자들

『딥뉴스』 저자 안형준 할리우드 영화인 듯, 휴먼 다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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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반부에 해직 통보를 받은 윤동우 기자가 집에 들어가자, 아들 녀석이 “아빠 최고!”라면서 “실시간 검색 순위에서 아빠가 신곡을 발표한 아이돌그룹을 앞섰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해직됐던 MBC 박성제 기자의 실화를 토대로 쓴 것입니다. (2018. 04. 13)

안형준사진_제공이치열.jpeg

 

 

20년차 방송기자 안형준, 참 희한한 사람이다. 9ㆍ11 테러에서 이라크전쟁까지 그의 현장 취재는 집요하고 낯설었다. 사석에서도 그는 ‘기자’와 ‘기자 정신’ 그리고 선배기자들의 ‘고난’에 대해 얘기하며 울분을 토한다. 그런데 그의 소설 『딥뉴스』 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듯, 스펙터클하고 스피디하다. 첫 소설로 출간 2주 만에 3쇄를 찍었다. “기자 관두고 전업 작가로 나서지?”란 ‘권유’가 심심찮다. 안형준 기자를 만났다.

 

기자는 기사로 승부합니다. 왜 굳이 소설을 쓰셨나요?

 

“기자가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지, 왜 단행본 책을 내고 ‘지랄’이야.” 새내기 기자 시절, 까칠한 선배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특종 기사와 의미 있는 기획에 심취했던 저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기사를 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보도국 밖으로 쫓겨나서, 뉴스와 관계없는 부서에서 낯선 일을 해야 했습니다. 몇 주 전 휴대전화 버튼을 어렵게 눌렀습니다. 지금은 국장급이 된 그 선배에게 조용히 소설 비슷한 졸고를 썼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평소처럼 거침없는 독설을 예상했지만, 빗나갔습니다. “그려, 고생했다. 소설 쓰면서 버텨냈구만…….” 요즘은 ‘부족하지만 후련하다’는 느낌입니다. “허구(fiction)라는 장치를 통해 진실을 밝혀낸다”는 얘기를 하죠.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쓰면서 마음속에 두었던 말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속도감이 인상적입니다. 와중에 파업으로 월급을 못 받는 기자들의 얘기는 휴먼 다큐처럼 아픕니다. 직접 겪은 일이신가요?


YTN 기자로 6년을 일하다, MBC로 옮겨 10여 년을 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친정인 YTN에서는 2009년에 6명의 기자가 해직됐고, MBC 기자와 피디는 더 많은 숫자가 직장을 잃었습니다. 저는 YTN에서 6개월, MBC에서 1년 이상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월급을 포기한 기간이 가장 긴 데다, 해직 언론인들 모두를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 2011년에 폐지된 <뉴스후>라는 시사프로그램을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뉴스후>에 두 차례 몸을 담았습니다. <뉴스후>는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돌직구를 날리면서 높은 시청률과 두터운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 <뉴스후>가 폐지되는 과정을 눈물을 머금고 지켜보면서, 언젠가는 그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술자리로 미루고만 있다가, 후배 PD로부터 소설을 써보라는 제안을 들었습니다. 순간 망설였지만, 젊은 시절 소설가였던 어머니 유전자의 절반이 제게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달려들게 됐습니다.

 

‘텐프로’ 얘기, 교도소 잠입 취재가 리얼합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 풍토에서 얼마나 현실적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실제 그렇게들 하나요?

 

기자 숫자가 부족하고, 방송 스케줄이 3~4주 만에 돌아오는 빡빡한 취재 현실에서는 잠입 취재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전문 탐사프로그램인 <뉴스후>에서는 노경진 기자가 피라미드 판매 조직에 잠입해 취재하는 등 적잖은 잠입 취재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대입논술시험이 출제되는 호텔에 잠입해 출제위원인 교수들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소설과는 달리, 실제 잠입 취재는 긴장감이 매우 높습니다. 몰래카메라를 작동하는 동안은, 혹시라도 들통이 날까 조마조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 속의 취재에서는 잠입하기 전에 어느 정도의 팩트를 확보한 뒤에 잠입 취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치밀한 플롯을 뚫고 나오는 기자들의 애환이 눈물겹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취재를 해온 중견 기자로서, 전하고 싶었던 기자들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중반부에 해직 통보를 받은 윤동우 기자가 집에 들어가자, 아들 녀석이 “아빠 최고!”라면서 “실시간 검색 순위에서 아빠가 신곡을 발표한 아이돌그룹을 앞섰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해직됐던 MBC 박성제 기자의 실화를 토대로 쓴 것입니다. 또 신용카드가 정지된 해직 기자가 대기업의 임원 제의를 거절하는 장면도 기억납니다. 그럼에도 하나를 꼽는다면 1975년에 해직됐던 동아투위 선배 기자들이 ABC 파업 현장을 찾아 “월급만 좇는 샐러리맨의 길이 아니라, 언론 자유를 선택하는 기자의 길을 가라”고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영화 <1987>에서 감옥에 갇힌 동아투위 해직기자가 진실을 밝히는 데 일조하듯이, 한국 사회 민주화의 길목길목마다 동아투위 해직 기자들은 정말 소중한 일을 해오셨습니다. 비판적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히 해직의 길을 선택한 기자들의 얘기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레기’ ‘떡봉이’가 요즘 기자들에 대한 평균적 인식입니다.


진짜 기자는 시청자와 독자의 편에 서서, 대신 따지고 싸우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봅니다. 적지 않은 방송 기자들이 가족에 대한 경제적 책임을 저버리고, 공정방송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스스로를 단련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아픈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속칭 ‘기레기’, ‘떡봉이’ 기자들이 판을 치면서 한국 언론을 망가뜨렸습니다. 진정한 언론과 관련해서는 언론사를 나눠서 사고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주인이 있는 언론사와 공영언론으로 나눠서 말이죠. 주인 있는 언론에서는 대주주가 인사권을 통해 보도와 편집에 간섭하지 못하는 장치를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지난해 한 언론사가 보도최고책임자 임명동의제를 끌어낸 것은 좋은 사례입니다. 한편 주인 없는 공영언론은 사장 선임구조를 독립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서, 시민과 시청자의 의견이 관철돼 사장을 뽑는 방향으로 방송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편입니다.

 

출간 2주 만에 3쇄………. 기자가 쓴 소설이란 느낌은 사실 없습니다. 기자보다 작가 할 사람이네, 라는 독자 평이 있었습니다. 어떤 느낌으로 쓰셨는지.


부끄럽습니다. 요즘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방송 기자가 방송사 내부의 얘기를 소설로 쓴 경우가 거의 없어서일까요? 최근 방송 기자들 얘기를 다룬 TV 드라마를 보면, 어떤 것은 중심이 된 흐름 자체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 중에는 헤밍웨이나 카뮈처럼 기자 출신이 많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전쟁터와 테러 현장,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직접 누비며 카메라에 담는 방송 기자의 다양한 경험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딱딱한 얘기들을 재미있게 버무리기 위해, 최대한 흥미를 끌 만한 소재들을 취재했습니다. 호스트바를 많이 다녀본 사람을 소개받아 간접 취재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화이트 해커인 젊은이, 막 구치소에서 출소한 지인, 피렌체 전문 현지 여행 가이드를 자주 만났습니다. 사내연애를 도입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여성 정치인의 출산 의혹을 처음부터 길게 끌고 간 것도 여성 독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이 따로 없습니다. 소설 시작 전 짧은 헌사만 쓰셨습니다. ‘언론 자유의 소중함을 믿는 분들께, 그리고 김세진 학형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요?

 

사실은 ‘작가의 말’을 여러 차례 써보았습니다. 하지만 길게 쓸수록 구차해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작품 자체를 통해 ‘작가의 말’을 충분히 녹여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들이 왜 월급을 포기하고 공정방송을 외치며 파업을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하기를 원했습니다. 앞부분 헌사에 언급된 ‘김세진 학형’은 1986년 봄 4ㆍ19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세상을 뜨셨구요. 그분의 죽음이 제게 기자의 길을 선택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한마디 붙이고 싶습니다. 안치환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는 노래를 좋아했었는데요. 지금은 부르지 못하게 됐습니다. 새움출판사에서 제게 보내준 짧은 문자 때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시기에 꼭 필요한 원고라고 생각됩니다. 내주에 소주나 한잔 하시죠.’

 


 

 

딥뉴스안형준 저 | 새움
정치권과 언론사의 추악한 결탁, 부당해고와 탄압에 맞서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MBC와 YTN에서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 기자인 작가가 리얼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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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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