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커버스토리] 오래, 잘, 재밌게 그리는 허영만

<허영만의 3천만원> 채널예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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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이 앞서 나가는 게 내가 바라는 방향이 아닌 것 같으면 거기로 갈 필요가 없어요. 나 나름대로 세계를 또 만들어야죠.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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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돈을 대놓고 주식 투자를 해서 실시간 중계로 이 돈의 증, 감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엄청난 아이디어였다. 이건 묻지 않고 히트할 수 있다는 촉이 섰다. OECD 국가 중 경제 교육이 부족한 편인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을 재테크 중의 한 방법인 주식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허영만의 3천만원> 1화 중


『허영만의 만화일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허영만 화백은 앞으로 주식 관련 만화를 연재할 예정이라고 폭탄 선언을 했다. 연재 플랫폼은 웹진 <채널예스>. 그것도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자기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과정을 그리는 만화다. ‘생활 툰’보다는 ‘생활 밀착형 실시간 경제 교양 만화’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40년 넘게 만화를 그리면서 열 손가락을 넘길 만한 히트작을 만들었다. 만화가 윤태호가 스스로 ‘허영만 키드’라고 부를 정도로 허영만은 한국 만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선생님’과 ‘화백’ 호칭을 들으면서 편하게 다닐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었다고 연신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단단하다. 촬영 장소에서 재킷을 벗자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의 몸이 나왔고, 가방에서는 37권 째 그리고 있는 『허영만의 만화일기』 공책이 나왔다. 머릿속에서는 금방이라도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가 나올 듯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역으로 주식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졸지에 요새 산 주식을 털어놓고 시장 전망을 토론했다. 뭐라도 하나 더 남겨주고 싶다는 건강한 욕심이 보였다. ‘돈은 곧 탐욕’이라는 말과 다르게, <허영만의 3천만원>에서는 정말 건강한 돈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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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덤벼라

 

『커피 한잔할까요?』를 연재하던 때 주식을 주제로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셨다고요.

 

 보통 한 작품이 끝나고 그다음 아이디어를 짜지 않아요. 평소에 준비해놓은 소재로 바로 다음을 이어 가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시작하게 됐어요.


시장 질서 교란 행위 금지법 등 여러 가지로 법률을 검토해보셨다고 들었어요.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걸림돌이 많은 편인가요?


잘못하면 잡혀가요. 자문단을 구성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주식 시장을 중계하려고 했더니 위험하다는 거예요. 그 사이 주가를 가지고 조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갈 수도 있다는 거죠. 자문해주는 사람들도 자기 생활이 있는데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고 하니까 주춤하더라니까요. 올 초까지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죠.


그런데도 밀어붙이셨어요.


처음에 주식 만화 그린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타짜』 같은 만화를 생각했어요. 주식 시장에서 작전 짜고 사기 쳐서 돈 버는 내용이 아니냐는 거죠. 그런 음모 세력 이야기가 제일 재밌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스토리 만화와는 전혀 다른 만화를 그리려고 했어요. 독자들이 적어도 주식과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를 안 놓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돈을 잃게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시작할 때는 시장이 좋았는데, 바로 북핵 위기설이 터지고 하필 안 좋을 때 독자들을 만나게 됐어요. 돈이 불어나는 걸 보여줘야 사람들이 좋아할 텐데.


기존 작품 중에는 『부자사전』이 떠오릅니다.


『부자사전』은 다른 사람의 돈 이야기지만, <허영만의 3천만원> 직접 움직이는 거니까 다르죠. ‘잘 알고 덤벼라. 모르면 깨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아파트 살 때는 직접 가보잖아요. 집 모양도 보고, 위치나 주변 시설 다 고려하지 않아요? 아파트는 그렇게 열심히 살펴보면서 왜 주식은 공부하지 않고 무작정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느냐 이거죠. 주식을 사려면 그 회사 자본금이 얼마고 전망과 오너의 자질은 어떤지를 공부하라 이거예요.


부자가 되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작품을 쓴 목적이 있나요?


만화를 준비하면서 주식 관련 공부를 많이 했어요. 완전한 가치 투자를 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유지할 수 있어요. 진작 알았던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밟아 오는데, 나 같은 사람은 이제 늦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하지 말라는 거죠. 이제까지 돈 생기면 옳다구나 하고 집 넓히고 나머지는 은행에 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참 바보 같더라고요.


‘젊은 세대들이 나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해야겠다’는 말이 나와요.


옛날에는 정기 적금을 3년 넣으면 두 배가 됐어요. 지금은 이자율이 점점 내려가더니 1%, 2%대예요. 아무리 해도 안 모인다고 해서 돈 생기면 어디 놀러 나가고 자동차랑 휴대폰 바꾸지 말라는 거죠. 월급이 모자랄 정도로 소비하고 있어요. 얼마큼의 저금이라도 은행에 무턱대고 넣지 말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주식을 모으라고 잔소리를 하게 돼요. 나중에 슬퍼지거든요. 초기 투자금 3,000만 원이 늘어나고 줄어들다가 5,000만 원이 되고 1억 원이 되면 그때쯤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이 많이 늘어날 거예요. 관심을 두다 보면 일반 사람들의 경제 관념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아질 거고요. 나도 지금 주식을 모르는데 무슨 교육을 하겠어요. 만화를 보고 배우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재미있게 슬슬 만화를 읽으면서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게 되면 좋잖아요.


자문단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주식을 사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왜 이 종목을 사고파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지만 설명이 부족할 때도 있어요. 또 매매하는 내용만 나오면 독자들이 재미없겠죠. 그래서 앞에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뒤에는 매매하는 걸 직접 보여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려고 해요.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쉽지 않은데요.


두 마리 토끼를 좇다 보면 가는 길에 노루를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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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만 만화를 봐요

『허영만의 만화일기』는 꾸준히 그리시나요?

 

오늘 들고 온 게 37권째예요. 애당초 출판사 청탁이 있어서 그리기 시작한 건 아니고, 그려놓고 옆 사람들에게 보여주다가 재밌다는 말이 출판사로 들어가서 출간하게 됐어요.


종이에 만화를 그리다가 태블릿으로 옮기면서 고생하시는 내용을 봤어요.


이제는 태블릿을 많이 쓰긴 하는데 불편해요. 터치감이 아주 안 좋아요. 종이는 걸리거나 매끄럽거나 하는 맛이 있는데 화면은 스피드 조절이 안 되니 펜이 너무 빨리 가버리면 선이 못 따라와요. 손하고 펜이 항상 화면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까 매번 사방을 조정해도 잘 안 맞더라고요. 일기를 만화로 그리는 이유 중 하나도 종이에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예요.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실 때가 있나요?


될 수 있는 대로 시대를 앞서가려고 하는데, 역시나 세대 차이가 있으니까 자주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TV 프로그램을 보면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그건 나이에서 오는 거죠. 그런데 젊은 세대들이 앞서 나가는 게 내가 바라는 방향이 아닌 것 같으면 거기로 갈 필요가 없어요. 세대가 얼마나 빠른지 쫓아가다 보면 인생이 끝나요. 난 나 나름대로 세계를 또 만들어야죠. 쫓아가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어요.


하지만 역시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힘들죠.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해보니 유료로 하니까 사람들이 잘 안 보더라고요.


<채널예스>에서 연재하기로 한 건 새로운 플랫폼을 시도하는 일환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요새는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되고, 돈벌이가 되는 만화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웹툰은 페이지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무한대로 페이지를 쓸 수 있으니 꼭 드라마화되는 만화만 있을 이유가 없어요. 문예적인 작품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틀이 좁아진 것 같거든요. 최근 만화 소재를 보면 젊은 사람만 만화를 보게 되어 있어요. 아동 만화에서 청소년 만화, 성인 만화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연결이 안 되니까 항상 시장이 안 커요. 지금도 아동 만화, 영화화될 만화 아니면 야한 만화만 나오잖아요. 그런 걸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간에 오갈 데가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버리죠. 다른 데서도 독자층이 너무 젊어서 주식 만화는 곤란하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아들하고 술 마시면서 ‘이제는 그만하라는 분위기인가’ 하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아들도 그만하면 됐다고, 쉬라고 하고요.


그만두겠다고 하면서도 새 작품을 가지고 나오세요.


쉰다는 의미가 아무 일도 안 한다는 의미와 같다면 그것 또한 서글퍼요. 사실 이 만화의 독자 반응이 좋아야 해요. ‘봐라, 영화화되지 않아도 드라마화되지 않는 만화도 반응이 나오지 않냐’고 큰소리를 쳐야 하거든. 이거 해서 안 된다면…. 또 하나 해보고 싶은 소재가 있기는 한데(웃음).


이미 영화화, 드라마화된 작품이 많아요. <타짜> <비트> <식객> 등 찾아보니 총 23편이더라고요. 작품이 손을 떠나면서 마음에 안 든 적도 있을 것 같아요.


다 좋겠어요? 하지만 나름대로 수십, 수백 명이 최선을 다해서 만든 작품이고, 이미 내 손을 떠난 작품들이에요. 그러니 뒷산에서 시집간 딸 집 보면서 굴뚝에서 연기가 나나 안 나나 쳐다보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죠. 그걸로 됐어요.


창작 생활을 오래 해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어떤 식의 재미를 찾느냐가 달라져요. 20, 30대였을 때는 영화 같은 하드보일드 소재도 쓸 수 있는데, 요새 영화 포스터를 볼 때 총 들고 나오는 영화는 보기가 싫어요. 벌겋게 물감 칠해서 죽어나가면 저 사람들 쇼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재미가 없어요. 주로 유럽 영화를 많이 보는데, 배경만 봐도 본전 빠지는 영화로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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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하면서 잘해야죠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것으로도 유명하신데, 계속 메모하는 습관이 있을 것 같아요.


많이 하죠. 가정주부가 시장에 가서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 딱 하나만 사 가지고 오지 않듯이, 당장 오늘 먹진 않더라도 좋은 게 있으면 사듯이, 연재를 하려면 이것도 좋겠고 저것도 좋겠다 하면서 계속 소재를 찾아요. 주간지, 월간지, 아동지, 성인지 여러 매체에 맞는 걸 준비하다 보면 맞겠다 싶은 이야기가 항상 생겨요. 그중에 가장 좋은 걸 고르고 쓰고 또 쓰고, 계속 다음 걸 준비해요.


만화를 그리면서 창작의 기쁨이나 의의를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의의라기보다는 그냥 습관이죠. 그런데 남들이 못 하는 재주가 있고, 그걸 보여주면 옆에서 즐거워하는 게 너무 좋아요. 그래서 107세까지 만화를 그리다가 죽겠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독자들하고 호흡하는 만화는 아니더라도 나 혼자 그리며 낄낄대는 만화는 아마 죽기 전까지 그리게 될 거예요.


『허영만의 만화일기』<허영만의 3천만원> 모두 오랫동안 작업해야 하는 작품이에요.


이게 인기가 있으면 주식 시장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릴 거예요. 덤으로 3,000만 원이 불어나면 노후 자금으로 쓸 수도 있겠죠. 혹시나 부자 되면 로마네 콩티 마시면서도 계속 그려야지요.


허영만을 생각하면 부지런함이 떠올라요. 스스로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나요?


그렇게 과장할 정도로 부지런하진 않아요. 매번 마감이 있고 경쟁을 해야 하니까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나라고 놀고 싶지 않겠어요. 할 수 없이 부지런해야지. 특히 일간지 연재를 할 때는 매일 마감을 해야 하니까 굉장히 쫓겨요. 가만히 있으면 편하죠. 하지만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한 창작하는 사람의 의무로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후배를 위해서라도 원고료를 받고 새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어요.


내가 최대한 많이 받아내야지 후배들도 그만큼 따라올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요새는 광고 많이 받아서 추가로 수익을 챙겨 가니까 문화가 조금 달라지긴 했어요. 경박스러울지 모르지만 많이 버는 사람이 후배들의 롤모델로 나서줘야 해요. 우리가 잘 모르는 골프나 미식축구도 누가 얼마 받고 계약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두잖아. 만화가도 마찬가지예요. 1억, 2억이 아니고 연간 몇십 억 버는 사람이 나와야 해요. 일반 대중의 만화를 보는 눈이 높아지는 건 시간이 걸려요. 돈이 엄청나게 왔다 갔다 하면 금방 시각이 달라지죠. 다만 광고가 많이 붙는 게 좋은 작품은 분명히 아닌데, 만화의 가치가 수익을 많이 챙기는 쪽으로 달라질까 봐 걱정은 돼요.


예전에는 허영만이 ‘2등 전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죠?


1등 했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어요. 『독고탁』 그린 이상무, 『공포의 외인구단』 이현세 형, 그다음에는 무주공산이더라고요.


오래 하는 게 재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오래 하면서 잘해야죠. 회사에서도 좌천돼서 부서도 없이 책상 하나 가지고 근근이 오래 하는 것보다 자기에게 맞는 역할 충분히 하면서 오래 하는 게 좋잖아요. 만화에서도 작품을 내면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잊히지 않는 것이 오래 해도 보람이 있죠. 주변에서 찾아주는 위치에 있으면서 오래 해야 해요.


이제까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원고료가 적었을 때나, 1980년대 공장식으로 작품을 뽑아냈을 때인가요?


많이 그려야지 유지가 될 때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사회적으로 만화가 저급 문화로 취급당하던 1960, 1970년대가 제일 힘들었어요. 사람 만나서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만화 그린다고 선뜻 이야기를 못 했어요. 옛날에는 5월만 되면 대본소에서 만화를 무작위로 걷어 가서 성인 비디오랑 같이 불태웠어요. 어린이에게 안 좋은 거라 이거지. 그런 걸 보면 참 참담했어요. 적어도 이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니까. 돈도 되면서 좋은 만화를 그리는 작가를 많이 만들어내야 해요.


요새 눈여겨보는 젊은 작가가 궁금합니다.


만화체 만화나 콩트를 몇 개 찾아서 재밌게 봤어요. 극화같이 나온 만화는 예전에 했던 걸 또 보는 기분이 들어서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요새 분위기는 어떤가 하고 일부러 만화를 보기도 해요.


『술꾼도시처녀들』의 미깡 작가와 함께한 인터뷰를 읽은 적 있어요.


젊은 작가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묻길래 미깡이라고 했죠. 얼마 전에도 같이 술 한잔했어요.


최근 부산글로벌웹툰센터 개관 기념으로 허영만과 윤태호의 원화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웹툰 작가들에게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고 배려를 하고 있더라고요. 고마웠어요. 다들 서울에서만 하려고 하는데, 부산에서도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됐구나 싶어요. (윤)태호가 만화책을 갖다 주길래 봤는데 참 잘 나왔어요. 나도 욕심이 나서 태호한테 웃으면서 “태호 내면의 힘을 믿는다. 나는 너한테 안 진다” 그랬죠.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상에서 승부가 납니다. 끈질기게, 꾸준하게 책상에서 일어나지 말아요. 내실이 중요해요. 친구들이 먼저 데뷔해서 100m 앞서 가 있다고 유리한 거 아니에요. 데뷔하기 전까지는 충전하는 시간이지, 데뷔하고 나서는 충전보다 방전이 많아요.


요새는 어떤 일이 가장 즐겁나요?


수시로 바뀌는데, 어제도 즐거웠고 오늘도 즐겁고 내일도 즐거울 거라 생각하려고 애써요. 주변에서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름대로 맺힌 것도 있고 바라는 것도 있으니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도 있죠. 그러면 화실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혼자 크게 웃어요. 기분이 훨씬 나아지거든요.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니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아무래도 즐거운 일은 맛있는 술자리죠. 좋은 친구들과 좋은 술과 맛있는 밥이 있는 술자리. 많이 마시고 취할 나이는 아니에요. 그럴 때는 지났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다음 끼니 먹을 때까지 입에 계속 남아 있어요. 모처럼 그런 음식을 만났다고 하면 아주 기분이 좋죠.

 


 

 

허영만의 만화일기허영만 저 | 시루
인생 같은 만화를 그리다, 어느덧 만화 같은 인생을 살아온 70세 현역의 허영만 화백. 숨 돌릴 틈 없이 빠듯하게 찾아오는 마감일과 철저하고도 밀도 있는 취재 일정에 몸과 마음이 바짝바짝 마르는 만화 인생이었지만, 그저 그림이 좋고 만화가 좋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은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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