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자고 먹고 만나기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외
중학생 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가 인기였다. 연도와 왕 이름을 외우는 게 역사 공부라 생각했던 나에게 충격을 준 책이었다. 이후로 ~의 역사, 같은 책을 종종 읽었다.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권을 모아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2017.08.11)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회장이 쓴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에서는 사물 인터넷, 인공 지능, 로봇공학 등이 인간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리라고 예견한다. 어쩌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노동은 로봇이 하고, 인간은 놀고 먹기만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반면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를 쓴 로버트 J. 고든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로봇, 인공지능으로 돈을 벌 일부 기업은 있겠으나 전반적인 생산성이 이전보다 떨어질 테고 젊은 세대의 생활 수준이 부모 세대의 그것보다 못하리라는 예측.
어느 쪽 주장이 옳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가상 현실에서 여행하고 결혼하고 온갖 활동을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돌아가야 할 리얼 월드가 있다는 점. 그렇다, 르브론 제임스가 2011년 NBA 파이널에서 패한 뒤 남긴 ‘리얼 월드’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인간은 밥 먹고, 응가 누고, 목욕하고, 옷 갈아 입고, 사람 만나고, 만나서 술 마시는 존재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바로 이러한 리얼 월드에 관한 책이다.
부제인 ‘하루 일과로 보는 100만 년 시간 여행’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하루이면서 100만 년이다. 현대인이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겪는 일을 시간 순서대로 묘사했다. 책에는 베르사유 왕궁에 똥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든지, 최초의 수세식 변기는 청동기 시대에 이미 존재했다든지, 중세 유럽에서는 물이 피부에 닿으면 병에 걸린다는 믿음 때문에 거의 씻지 않았다든지, 19세기에는 반바지가 긴바지보다 격식을 차린 옷차림이었다든지 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소개할 만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한다. 이런 내용을 읽자면 세상 사는 데 정답은 없고, 여전히 인류는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씻고, 먹고, 누고, 잤는지를 읽는 재미도 크지만 이를 전달하는 문체도 인상적이다. 풍자와 해학 넘치는 문장을 읽자면, 인류 문명이 마치 거대한 시트콤처럼 느껴진다. 다만, 이 책이 다루는 ‘하루’가 토요일이기에 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는 점, 주로 유럽과 북미의 역사 이야기이고 간혹 등장하는 아시아 사례조차 중국이나 일본이라는 점은 다소 아쉽다.
더 읽는다면…
지금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술인 맥주. 맥주의 세계화가 이뤄지기까지 일어난 역사를 담았다.
(야콥 블루메 저 / 김희상 역 | Bier, was die Welt in Innersten zusammenhalt (2000))
『북경 똥장수』
술을 마셨다면 응가를 눠야지. 응가는 미시사에서 단골로 다루는 소재다. 19세기 베이징 똥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이야기.
(신규환 저 | 푸른역사 )
제목 그대로다. 집은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부엌, 화장실, 식당, 복도 등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집에서 살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빌 브라이슨 저 / 박중서 역 | 까치(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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