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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자기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한 사람 이야기”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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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꼭 쓰고 싶은 글은 ‘내가 읽어도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글’이에요. 읽을 때 ‘읽는 나’라는 존재마저 잊을 만큼 몰입하게 되는 글이요. 소설을 읽다 보면 종종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이 제가 소설을 읽고 쓰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던 것 같아요.

등단작 「쇼코의 미소」로 제5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 최은영이 첫 소설집을 펴냈다. 최근 소설가 김연수가 tvN <비밀독서단>에서 추천해 화제가 되기도 한 『쇼코의 미소』.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최은영은 등단 초기부터,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고 밝혀왔다. 최은영의 시선이 가닿는 곳 어디에나 사람이 자리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터.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된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갈 수 있는 정밀한 물매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들을 바로 그 ‘사람의 자리’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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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가장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의 언어


2013년에 등단한 이후, 2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첫 소설집이 나왔습니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는 등단작이기도 한데, 이 등단작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셨죠. 첫 작품이 많은 주목을 받아 부담이 되었을 텐데, 등단 이후 이번 소설집을 준비하기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첫 소설집을 낸 감상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겠어요?

 

첫 소설집을 낸 지 한 달이 지났네요.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멍했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면서부터 기분이 좋아졌어요. 수록작들을 썼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등단한 지 2년 반이 지났는데, 생활은 그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한국어 교사로 계속 일하면서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어요. 등단하기 전이나 후나 글을 쓰면서 계속 방황했던 것 같고요. 운이 좋게도 첫 작품이 과분한 평가를 받게 되어 책도 계약할 수 있었고, 청탁도 받을 수 있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고, 그 과정에서 좋은 분들도 만날 수 있어서 여러모로 감사할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수록된 작품들을 읽다 보면 ‘바다’ ‘천변’이라는 공간이 무척 인상에 남습니다. 그곳은 인물 혼자 사색하며 걷는 곳이 아니라 인물들이 함께 거닐며 무언가를 주고받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이 공간에서는 서로를 향한 인물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짧게나마 어떤 속내를 얘기할 수 있는, 그래서 후에 애틋한 회상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에게 이 공간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다 보니 바다나 강, 천변 같은 공간에 가면 좋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특히 바다를 좋아하고요. 예전에 섬에서 몇 달 지낸 적이 있었는데, 매일 바닷가에 가서 바다를 보고 가만히 앉아 있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소설 속에서 ‘쓰는’ 행위가 가진 힘이 강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차이가 무척이나 많이 나는 할아버지와 쇼코가 우정을 맺는 방식이 편지 쓰기를 통해서였고, 먼 이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때의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노트에 매일매일의 일을 적어 내려가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편지든 일기든,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인물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요?

 

저는 예전부터 말보다 글이 더 편안했어요. 말은 즉각적인 의사소통 방식이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왜곡되고 오해될 여지가 많은 것 같아요. 사람을 직접 보고 말하다 보면 부끄러움이나 여러 감정적인 방어기제가 살아나서 꼭 해야 할 말은 못하고,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들인 경우 더 그렇겠지요. 제 소설 속 인물들은 그런 의미에서 글을 써야 했을 것 같아요. 너무나도 타인과 이어지고 싶지만 그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말하고 싶지만 정작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그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건 상대가 세상에서 사라진 후라도 마찬가지겠지요. 다시는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없으니까 글을 쓰는 방식으로 이미 사라진 상대에게 말을 거는 거겠지요. 저는 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글쓰기가 모두 상대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유독 내성적인(관계 맺기에 서툰)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아 읽으면서 특히 공감이 갔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주저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무척 범위가 넓은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선생님이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지요? 서로 솔직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편이신가요? 

 

아기들을 보면 아직 말도 잘 못하지만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보고, 만져보고, 웃고 그러잖아요. 저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거의 천재적인 수준의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고요. 단지 세상으로 진입하면서 사람에게 상처를 받게 되고, 살아남기 위해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여전히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이고,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예요. 두려움이 너무 깊어 사랑을 등진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런 사람에게도 사랑에 대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인물들 간의 유대는, 아주 거창한 계기가 아닌 사소한 행동, 대화를 통해 시작이 됩니다. 특히 여자들 간의 작은 정치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엄마와 찜질방에서 만나게 되는 할머니, 동아리 선후배 등 여자들이 우정을 쌓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소설 전체적으로 여성 화자의 목소리가 압도적이기도 하고요. 평소 여성 인물이 중심이 되는, 그들 간의 연대가 두드러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여자가 무슨 대학 공부를 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여자의 적은 여자지’ ‘여자들이 무슨 우정이 있어?’ ‘여자들이 뭐 그렇지’ ‘넌 다른 여자애들이랑 달라서 좋다’ ‘계집애처럼 굴지 마’ 따위의 성차별적인 말들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자랐어요. 그러면서 제 안에도 저도 모르게 그런 목소리들이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을 인식하고 저 자신마저도 그런 식으로 보게 되었던 것 같고요. 저는 ‘나는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롭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아요.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자기 안의 여성 혐오에 대해 인식하고 매일매일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에서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지요. 많은 작품들에서 여성은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대상화되었고, 그런 시선은 ‘예술’이라는 목적을 위한 필요악으로 용인되었어요. 문학을 사랑하면서도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슬펐어요. 문학은 가장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의 언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인식하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강요된 침묵 속에 잠겨 있는 말, 어디서도 취급되지 않는 말, 버려진 말, 그런 말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구현하고 싶어요. 여자들의 관계를 평가절하하는 세상에서 여자들의 연대를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고, 성차별적인 편견들에 이야기로 맞서고 싶어요.

 

책 말미에 적힌 ‘작가의 말’을 읽으며 여러 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특히 십대와 이십대의 자신에게 너무 모진 사람이었다며 그때의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소설 속 인물들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고 한다면,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을 보고 많은 인물들을 생각했는데요. 단 한 사람을 정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쇼코의 미소」의 소유를 택하고 싶어요. 소유는 그 소설을 썼을 당시의 제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인물이에요. 선택의 기로에서 저는 운이 좋게도 제 꿈을 잡을 수 있었고, 소유는 그러지 못했어요. 꿈꿨던 영화감독은 되지 못했지만, 그 정도로 어떤 일을 사랑하고 추구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씩씩하게 잘 살아가리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에서는 소유의 절망이 주로 그려졌지만, 제가 생각하는 소유는 저보다 더 성숙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어요. 소유는 자기의 비뚤어진 욕망을 인식하고 비판할 수 있는 용기와, 익숙한 불행을 끊어버릴 수 있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죠. 소유를 만나서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제가 더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병원을 관둘 거고, 언젠가는 고양이를 키울 거고, 무엇이든 해보리라고 내게 이야기했다”라는 소설 속 문장을 빌려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형태의 글일지 얘기를 해주신다면요? 소설가가 되기로 한 뒤 꼭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제가 꼭 쓰고 싶은 글은 ‘내가 읽어도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글’이에요. 읽을 때 ‘읽는 나’라는 존재마저 잊을 만큼 몰입하게 되는 글이요. 소설을 읽다 보면 종종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이 제가 소설을 읽고 쓰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던 것 같아요. 현실에 대해 잊을 수 있고, 다른 것을 통해서는 찾기 어려운 종류의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읽으면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깝고, 다 읽고 나서도 그 이야기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설정을 인위적으로 첨가하고 싶지는 않아요. 독자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제 글을 통해 재발견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에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소설.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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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최은영 저 | 문학동네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물음에 정직하게 마주한 최은영의 질문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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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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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저13,0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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