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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엄기호, 공부에 중독된 우리 사회를 진단하다

교육,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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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배움 사이의 균형 감각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험을 통해 얻는 배움에 대해 상당한 가중치를 주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아이를 더 괜찮은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20년, 30년 후를 위해서 시급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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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저자인 하지현 건국대 정신과 교수(왼쪽)와 사회학자 엄기호

 

 

『공부중독』의 두 저자의 만남은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왜 모두 공부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는가?” 직접 교육의 현장에서 학교의 문제를 체감한 사회학자 엄기호와 고통 받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한 정신과 의사 하지현. 이 두 전문가가 우리 시대의 현 주소에 대해 벙커1에서 치열한 대담을 펼쳤다.

 

정신과 의사와 사회학자, 우리 사회에 의문을 품다

 

하지현 : 무엇보다도 먼저 이 책을 어떻게 쓰게 됐는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15세에서 25세 사이의 친구들을 굉장히 많이 봅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세칭 만들어진 아이 혹은 망가진 아이들이에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40대 초반에서 중반의 환자들도 많이 만나는데, 그들의 가장 큰 불안감과 공포의 원인은 자식 교육입니다. 그런 두 부류의 환자들을 만나면서 저는 그 둘이 엮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참에 엄기호 선생님이 떠올라 연락을 하면서 대담이 시작되었죠.

 

엄기호 : 저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됐는데, 최근 몇 년간 학생들이 보이는 모습 때문에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던 적이 많았어요. 요즘은 이전처럼 학생들에게 교사들이 먼저 다가가면 사이가 좋아지고 사제지간에 우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늪에 빠지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집이나 병원에서 해결했을 법한 일들도 최근에는 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가르치는 사람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들이 해결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거부하면 그건 또 교사가 아니죠. 이건 저뿐만 아니라 많은 교사가 빠져 있는 딜레마일 거예요. 그래서 하지현 선생님과 함께 문제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이 사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대담에 응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모두 슈퍼히어로가 되려고 한다

 

하지현 : 그렇게 대담을 진행하면서 저희 둘 다 느낀 것이 ‘나는 공부 중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어요. 그들의 마음 안에는 훼손되지 않는 완벽한 상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자랄 때 한 번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성장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공부하면 많은 부분을 눈감아 주게 되거든요. 그러니 이제 사회에 나갈 시기가 되었어도 좀 더 완벽한 준비가 되어야 할 것 같은 겁니다. 이들이 특별히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내가 이루고 싶은 이상적인 목표와 지금 자신의 실력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 와중에 언론에서는 계속 헬조선이다, 삼포세대다 이런 식의 말이 나오니까 세상 나가기 무섭다는 생각만 들게 되거든요. 그러니 가능하면 완전체와 같은 슈퍼히어로가 되어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면서 타석에 서지 않은 채 연습만 하는 선수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겁니다.

 

엄기호 : 그리고 내가 공부를 더 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 공부 중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 통치하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는 없습니다. 준비 중이라는 말을 바꾸면 나는 아직 자격이 안 된다는 의미이거든요. 대한민국은 현재 취업난 속에서 일자리를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률과 졸업률은 굉장히 높아요. 고학력 청년들이 계속 배출됩니다. 이런 불균형 속에서는 ‘난 이만큼 노력했는데, 왜 보상이 없느냐’ 하면서 반란이나 폭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근데 이런 것이 안 일어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개인들이 자신의 준비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 입장에서는 사회에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상처를 안 받고, 통치 권력 입장에서는 개인의 부족이라고 생각하니 반발도 없으니 좋은 거죠.


또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공부 중이라고 하면 좋은 것 중 하나가 비평이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끝내고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입장이 되면 우리는 비평을 당해야 합니다. 이건 무섭습니다. 근데 공부 중이라고 하면 모든 것에 대해서 비평을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를 통해 만능감도 얻을 수 있죠.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양질의 담론은 형성이 안 되고, 댓글만 넘쳐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현 :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사회의 모습들이 이미 우리의 언어 안에 스며들어 가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취업준비‘생’이라고 합니다. 학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완벽히 완성되어서 일을 시작하겠습니까? 다만 보수를 적게 받다가 숙련도가 올라가면 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근데 어느새 인가부터 취업 준비생이 완벽히 준비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겁니다. 그 결과 사고의 틀이 공부 시스템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뭔가 막히는 것이 있으면 학원에 가서 해결해야 합니다. 또 막히는 것이 무엇이건 신기할 정도로 그것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습니다. 저는 대표적인 예로 픽업 아티스트를 들어요. 예전에는 연인을 사귀는 것에 어려움이 있으면 직접 부딪쳐도 보고, 실패도 해보고 했습니다. 근데 요즘은 돈을 내고 학원에 가면 이론을 배운 다음에 클럽에 가서 직접 실습까지 해보고 마치는 학원도 생겼습니다. 그 결과 배움이라는 것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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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공부, 기성세대의 신화가 되다

 

엄기호 : 사실 공부, 그리고 배움이라는 것이 가르쳐줘야만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분명 가르쳐 줄 수는 없는데 배워야만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건 삶을 통해서 배워나가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제도 안에서 배우는 것과 삶을 통해서 배우는 것 사이의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근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전자만 있고 후자가 없습니다. 삶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고 위험해 보이니까 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가르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고 가르치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현 : 저는 엄기호 선생님께 들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가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수업 중에 어떤 학생이 토론을 시키니까 선생님은 답을 알면서 치사하게 알려주지 않고 우리한테 토론만 시키면서 빙빙 돌게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점점 ‘돌아가기’를 참지 못하는 거예요. 요즘 학생들 많이 다니는 ‘내일로’라는 기차 여행도 블로그로 후기들을 보다 보면 ‘누가 최적화된 노선으로 제일 싼 곳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먹었나?’ 하면서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가 나오면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친구들이 가득합니다. 여행에서까지 최적화, 효율성, 경쟁이라는 것이 침투한 것이죠.


그런데 그러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그것들이 평균값이 된다는 것입니다. 열 명 중에서 일곱 명이 했다고 하면 그것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건 본능이에요. 사람들은 본디 그런 식으로 의사 결정을 합니다. 남들을 따라 하면 안전하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기준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이 사회의 공부 수치를 과하게 만듭니다. 자식 교육하면서 486세대라 부를 수 있는 기성세대들 다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교육 미친 것 같다고.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내 아이까지만 성공시키고, 라고 말하죠.

 

엄기호 : 우리나라의 486세대들은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앎이라는 것을 굉장히 전도해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의 핵심은 네가 모르는 것을 알라는 것이거든요. 근데 제가 직업상 학부모, 즉 486세대를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을 보면 모르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것이 뭔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아이에 대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알려고 굉장히 노력합니다. 근데 사실 알려고 하는 욕망의 핵심은 통제하려고 하는 욕망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책 읽는 것까지 무엇을 읽을지 통제하려고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우리나라 486세대의 중산층이 공부에 관해서는 굉장히 비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현 : 비합리적이라는 것이, 계산이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80%라고 생각하지만, 선천적인 것의 영향도 크고, 그 이외에도 환경이나 성향 등의 다양한 결과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소가 존재합니다. 486세대의 중산층들은 열심히 해서 전략을 잘 짜면 우리 아이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명확한 상황 판단 없이 아이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투자를 했다가는 아이에게 문제가 닥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문제가 닥친다는 것이죠. 노후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무직의 평균 퇴직 연령이 53세입니다. 65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이 나오고요. 그럼 12년 동안 아무것도 없고, 의료비는 얼마나 들지 모르는 상태에서 집 한 채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산수가 이전 세대와 달라졌는데, 왜냐하면 이전 세대에는 아이도 빨리 낳았고 퇴직도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요즘은 아이도 늦게 낳고 심지어 자식들이 결혼도 늦게 합니다. 그러니 아무도 버는 사람이 없는 공백의 10년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이 사회가 앞으로 5년, 10년 후에 성장 동력이 멈췄을 때 찾아올 노인 빈곤, 그리고 사회의 곤궁함에 대해서는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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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학교와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

 

엄기호 : 사실 공부중독을 만들어내는 학교, 그리고 공부중독 상황 안에 갇힌 학교의 문제는 정작 학교가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임금 격차 문제, 삶의 안정성 문제와 결합이 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학교에 대한, 혹은 교육에 대한 비판의 상당 부분은 학교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무능을 학교에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학교가 사회의 무능함에 대한 알리바이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내가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먹고는 살 수 있고, 내 삶이 안정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노동 구조를 유연화한다, 이건 사실 유연화가 아니라 불안정화입니다. 사람은 정작 삶이 안정됐을 때 유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한국 사회의 큰 문제가 불평등과 불안정의 문제입니다. 학력에 따라서, 혹은 학벌에 따라서 나타나는 불평등도 심각한데 불안정하기까지 한 거죠. 그러니 모두 생존을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이건 더 이상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고 정치적 문제가 됩니다. 근데 우리는 계속 ‘교육이 문제네’, ‘대학을 바꿔야 하네’합니다. 이건 사실 주객이 전도된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앞으로는 함께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하면서 공부 중독을 넘어서 학교에서, 집에서,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지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현 : 학교는 단순히 배우고 외우는 효율성을 따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탐색하고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고, 그렇게 배운 것을 다른 곳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쌓아가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엄기호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학습이라는 것에는 경험을 통해 얻는 것과 외우고 익히는 것을 통해 얻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 배움 사이의 균형 감각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험을 통해 얻는 배움에 대해 상당한 가중치를 주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아이를 더 괜찮은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성세대의 20년, 30년 후를 위해서 시급한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공부 시스템이 변화해도 공부중독이 되어 있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거기에 맞는 방식으로 우리는 쫓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칫하다가는 굉장히 이상한 세계에서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교육 시스템이 변화하고, 사회 권력이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개개인의 각성이 정말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이 책을 위한 대담 중에서도 가장 강조되었던 부분이고,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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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엄기호,하지현 공저 | 위고
공부가 마치 모태 신앙과도 같은 부모는 공부에 중독된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온다. 공부 백 퍼센트짜리 순도 높은 존재일 뿐, 사회성, 공감능력, 유연성 같은 요소는 상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그런데 이 요소들이 모자라다고 느끼면 역시 공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며 책과 학원을 찾는다. 이런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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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고은영(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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