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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는 노벨문학상 받지 않아도 큰 작가

『조지프 앤턴』 김진준 역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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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살만 루슈디는 한국 독자에게도 친숙하다. 『악마의 시』 때문에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공개적으로 처단하라고 선포한, 이른바 ‘파트와’ 이후 신분을 숨기기 위해 루슈디가 쓴 이름이 조지프 앤턴이다. 『조지프 앤턴』은 루슈디의 자서전으로 그의 어린 시절도 있지만 주로 13년의 도피 생활을 기록했다.

근대 이후 많은 사회가 유럽의 모더니티를 받아들이며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사회도 완벽하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화 사건도 끊이지 않았는데, 20세기 가장 유명한 필화 사건을 꼽으라면 아마도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두고 선포된 파트와일 것이다.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전 세계에 그를 죽일 것을 지시한다. 이후 루슈디는 오랜 시간을 숨어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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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othy Greenfield-Sanders 

 

『조지프 앤턴』은 루슈디의 자서전으로, ‘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은 그가 도피 생활 때 정체를 숨기기 위해 썼던 가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책에는 주로 도피 생활의 경험과 단상이 실렸다. 800쪽이 넘는 긴 분량이라 쉽지 않았을 번역을 맡은 것은 분노』, 『한밤의 아이들』  등을 번역한 바 있는 김진준 번역가다. 그와 루슈디와 『조지프 앤턴』 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분노』, 『한밤의 아이들』 등 루슈디 작품을 번역해 오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루슈디의 매력, 루슈디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살만 루슈디는 빈틈없는 작가입니다. 작품의 스케일이 크고 복선과 곁가지가 많아 얼핏 산만한 듯싶지만 나중에 보면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곳곳에 묻어놓았던 복선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저 경이로울 뿐입니다. 엄청난 상상력, 기억력, 결벽증, 완벽주의,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겸비했습니다. 장편소설 작가에게는 모두 크나큰 장점이죠. 엉뚱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를 많이 닮았습니다.

 

루슈디의 작품세계는 현실과 초현실, 사실과 허구, 역사와 상상을 한 그릇에 버무린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조합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서로 치밀하게 맞물리며 조화를 이뤄 자연스럽다 못해 필연적이라는 느낌까지 주거든요. 마술적 요소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독자에게 루슈디의 소설은 이 세상의 다른 현실을 내다보는 맑은 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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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번역하는 것과 자서전을 번역하는 것은 느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조지프 앤턴』 번역을 시작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흥분, 설렘 같은 감정도 느끼셨을 법한데요.

 

오랫동안 소설 작업만 한 터라 처음에는 좀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저로서는 적잖이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살만 루슈디라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작품이 더 잘 보이고, 작품을 알면 알수록 사람이 더 잘 보이더군요. “작가”가 아니라 “사람” 말입니다. 번역가인 저도 루슈디와 그의 작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아주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연히 설렜죠. 저도 애독자니까요. 물론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논픽션의 번역은 사실관계가 정확해야 하는데 이 책에는 실존인물이 1,200명 이상 등장하고, 크고 작은 역사적, 문화적, 개인적 사건이 끊임없이 거론되거든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자서전에서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있지만 숨어 살아야 했던 시절을 비중 있게 다루는데요. 이런 점을 포함해서 『조지프 앤턴』에서 독자가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할 점이 있을까요?

 

20세기 최대의 필화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만약 나였다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동료들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루슈디가 겪는 온갖 마음고생, 그리고 심적 변화의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시길 권합니다.


3번 질문과도 관련 있는 질문 같습니다. 루슈디의 소설은 환상적인 요소가 있는데요. 자서전에서는 그런 요소는 없는 대신 루슈디가 그를 ‘나’라고 하지 않고 ‘루슈디’라고 지칭하며 객관화하는 부분이 특별했습니다. 소설과 자서전에서의 문체, 어떤 부분이 다를까요.

 

일단 소설에 비하면 평이하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건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썼던 일기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겠죠. 그러나 문체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루슈디 특유의 표현방식과 유머도 고스란히 살아 있어 반가웠습니다. 소설가의 논픽션은 이런 점이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예를 들자면, “부칠 수 없는 편지”(로빈슨 크루소 귀하. 하느님께, 종교에게) 같은 장치는 여전히 루슈디답죠.


저는 ‘오전 씨와 오후 씨’에서 출산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요. 번역하시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보신 부분을 꼽아 주신다면.

 

800쪽이 넘는 책 속에서 굉장히 많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중에서 제가 독자로서 또는 번역가로서 인상적으로 읽은 장면을 몇 개만 골라보자면, “육즙소스 테러사건”, 아버지의 죽음, 어마어마한 대가들의 시시한 신경전과 말장난, 그리고 루슈디의 실수담, 그중에서도 거짓 신앙고백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인용 할만한 문장도 많지만 요즘 자주 생각나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자신의 책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며 루슈디는 자연스럽게 하이네를 떠올렸다. […] ‘책을 불태우는 나라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기 마련이다.’ 나치가 화톳불을 피우기 백여 년 전 『알만조어Almansor』 실린 이 예언적인 구절은 나중에 나치가 책을 불사른 베를린 오페라 광장 바닥에 새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대목.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네가 지키려 하는 것들이 정말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가?’ 그는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다.’ 카멘 칼릴이 ‘그 망할 놈의 책’이라고 불렀던 것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죽을 각오까지 했다.”

 

그리고 악마의 시를 출간한 죄로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노르웨이 출판인 빌리암 뉘고르의 말.

 

“방금 대량으로 증쇄를 찍으라고 지시했다네.”

 

책 전체에서 제가 특히 눈여겨본 것은 창작과정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작가의 삶과 작품 내용이 겹치는 부분들입니다. 예컨대 아버지와의 관계는 『한밤의 아이들』『악마의 시』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전적 요소입니다.

 

그리고 참, 글쟁이들에게는 절대로 반감을 사지 말아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었습니다. 기억력 좋은 글쟁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악마의 시와 관련해서 역자, 출판인 등 테러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그런 테러 위협에 시달린 적은 없었나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슈디 경호팀이 완전히 철수하는 날이 2002년 3월 27일입니다. 제가 『악마의 시』를 번역한 것은 2000-2001년이니까 파트와가 일으킨 긴장감도 많이 완화된 뒤였습니다. 그래도 출판사는 당시 제 신변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지켜주었습니다. 제가 그때 죽었다면 그 책은 단숨에 밀리언셀러가 되었을 텐데 말이죠.

테러 위협을 받은 적은 없지만 무슬림에게 파트와가 어떤 의미인지 실감한 적은 있습니다. 출간 소식을 듣고 당장 출판사로 달려가 따끈따끈한 새 책을 받아올 때였죠.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꺼냈습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뒤적거리는데 옆에서 누가 불쑥 물었어요. “이렇게 나쁜 책을 왜 읽습니까?”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부터 거기 있었을까, 아랍계 남자 하나가 뒤표지에 실린 작가 얼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더군요.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살만 루슈디 작품 중에서 다른 역자가 번역을 한 작품, 혹은 번역 안 된 작품 중에서 선생님께서 번역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탐났던 작품을 하나만 꼽는다면 아찔하도록 강렬했던 『광대 샬리마르』.그러나 훌륭한 번역서가 이미 있을 때는 번역가로서 별다른 의욕을 못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재번역보다는 국내초역이 좋죠. 다만 제가 번역한 『악마의 시』는 언젠가 다시 손보고 싶습니다.

 

지금 번역 중인 작품도 루슈디 소설이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신작 소설도 미리 읽어보는 중인데 느낌이 꽤 좋습니다. 물론 제 손에 떨어질지는 미지수지만요. 저에게 루슈디는 그렇게 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작가입니다. 그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을 끝냈으니 더욱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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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노벨문학상만큼 문학 쪽에서는 화제가 되는 상이 없는데요. 루슈디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에 한 명인데요.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루슈디는 파트와 이전에도 이미 세계적인 작가였습니다. 파트와 이후에는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 명성은 오히려 독이 되었죠. 문학 바깥의 사건들이 루슈디의 문학적 성취를 덮어버렸으니까요. 한 인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몹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루슈디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좀 회의적인 편입니다. 정치적 변화가 선행돼야 할 테니까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루슈디에게 노벨상을? 문학적 업적만 따지자면 루슈디의 자격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는 영원히 정치와 종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가 돼버렸습니다. 자유롭지 못하기는 노벨상 위원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요? 그렇지만 세상에는 루슈디가 노벨문학상보다 큰 작가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많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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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살만 루슈디 저/김진준,김한영 공역 | 문학동네
1988년 한 편의 소설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바로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였다. 이 책은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도발적으로 묘사해 출간 즉시 격렬한 논란을 불렀고, 급기야 1989년에는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해 작가를 처단하라는 종교 칙령(파트와)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영국 정보부와 경찰의 경고에 따라 루슈디는 기약 없는 도피생활에 들어갔고, 그사이 『악마의 시』와 관련된 출판인, 번역가, 서점, 도서관이 연이어 테러를 당했다. 살해 위협 속에서 자신과 작품을 지키기 위해 루슈디는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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