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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사랑의 힘, 너무 믿지는 말아야 한다”

『사모님 우울증』 펴낸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부교수 여자들이여, 남자에게 거리감 두면 오히려 돌아온다 마음 스트레스, 몸으로 푸는 게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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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강남 사모님들. 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남편 잘 만나서 호강한다는 소리가 제일 싫다”는 사모님들의 마음을 우리가 알아서 뭐할까? 『사모님 우울증』 의 저자 김병수 교수는 “우리네 마음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사모님 우울증』. 제목만 보아도 숨이 탁 막히는 느낌은 ‘사모님’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일까? 궁금한 마음이 적잖이 들지만, ‘사모님도 아닌 내가 굳이 이 책을 펴볼 까닭이 있을지’ 갈등하던 차에 읽게 된 문구 하나. “하루 종일 눈물만 나는데,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어요.” 책을 읽고 나면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언젠가 심심한 일상을 사는 ‘사모님’이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책장을 펴기 시작했다.

 

“당신이 뭐가 아쉬워서 우울한 거야! 당신처럼 편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우울하다는 거야?” 『사모님 우울증』 의 저자 김병수는 이런 말 한마디가 사람을 진짜 아프게 만든다고 말한다. 아픔마저 이해 받지 못할 때 우리들은 우울해진다. 또 내 마음이 왜 불안한지, 나조차도 이유를 알 수 못할 때 마음의 갈피를 잡기 어려워진다. 김병수 교수가 이들에게 내놓는 해답은 ‘감정 읽기’다. 내 감정을 제대로 읽어낼 수만 있다면, 우울한 마음이 들어도 견딜만하다. 불안한 가운데서도 자아를 버리지 않는 힘이 생긴다.

종합병원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우울증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김병수 교수는 KBS <남자의 자격> ‘남자, 그리고 중년의 사춘기’ 편에 출연해 이경규, 김태원, 전현무 등 멤버들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도 했다. 정신과 전문의는 얼마나 정신노동을 많이 하며 살까. 하루 종일 우울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의사의 마음도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감정 읽는 법’을 묻고자, 저자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첫눈에도 푸근한 인상, 노련함보다는 따뜻한 느낌이었다. 김병수 교수는 달변가이자 탁월한 경청가의 모습을 지녔다. 저자의 대학 스승인 한 교수님은
『사모님 우울증』 에 대해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평을 했단다. “듣기에는 좋은 조언이더라도 현실에서는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데, 누구도 다치지 않는 적절한 조언을 해서 좋았다”고. 김병수 저자와의 인터뷰 또한 다르지 않았다. 뜬구름 잡지 않는 위로와 매우 현실적인 심리 해석. 우울의 근원을 열심히 파헤친다고 모든 불안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심리를 이해하게 됐다는 건 세상을 살아갈 여력이 생겼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뜻한 말 한마디’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바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훈련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감정과 그 감정이 비롯된 상황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는,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미워하거나 무력하게 느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더 아껴야 한다. - 『사모님 우울증』 p.53




관점, 생각의 전환에서 치료가 시작된다

 

 

 

 

저자는 40대인데, 중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책을 2권이나 펴냈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에 이어 『사모님 우울증』 까지. 아직 중년으로 보기에는 젊은 나이인데, 중년의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6년째 병원의 건강증진센터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스트레스, 우울증 분야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아주 심한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스트레스 진단을 받고 오는 환자들이 많다. 1년에 2,3천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맥락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간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한 자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상에서 숱하게 많이 언급되는 병명이 ‘우울증’이다. 그래도 아직은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환자들이 많을 텐데.

상담을 하다 보면, 의사가 어떤 말을 해주길 바라는 것보다, 뭔가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라고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위로 받는 환자들이 많다. 특별히 큰 사건이 터지지 않았는데도 혼란스러워하는 중년 여성들이 많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우울증’이라고 명명을 해드리면, 마치 해결된 느낌을 받는 분들이 많다.

스스로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공황장애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리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줄긴 줄었다. 우울증이라고 진단하면 “그런가 보다”라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고. 하지만 여전히 부담을 느끼는 환자들이 대다수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남편과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아내들이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으면,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 나로 인해 남편, 자식이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이 이제 곧 결혼하는데 엄마가 우울증이라는 소문이 나면 난처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남편 회사에 소문이라도 나면 남편의 사회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는 중년 여성들이 많다. 서글픈 현실이다. 남자들은 보통 이런 이야기 안 한다.

정신과를 찾는 성비를 보면, 남성의 수가 확연히 적다. 남자들은 정말 심리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알기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관심은 많지만 들여다보기가 싫은 거다.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다. 아내가 아프다, 힘들다고 하면, 남편들은 부담을 느낀다. 도와 주고는 싶지만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까, 피하려고 하는 거다. 내 마음을 열어서 보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 보기 싫은 거다. 남자 환자들은 병원에 와서도 의사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한참 동안 회사, 사업 이야기를 하다가, ‘이 의사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신이 서면 그 때서야 속마음을 보여준다. 남자, 여자의 시간 차가 크다. 남자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명화에 빗대어 표현했다. 미술치료가 많아지고 있지만, 그림을 통한 상담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 명화를 보여주면서 상담을 하는 경우는 없다. 할 수도 없고. 지금 당장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주면서, 마음을 해석해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림을 책에 실은 건, ‘공감’을 주기 위해서다. 객관적으로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 심리학 이론보다 명화 한 점이 인간의 본질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장황하게 풀어낸 정신분석보다 하나의 그림이 사람 문제의 본질을 더 잘 묘사해주기도 하니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속 깊은 곳의 기억과 감정을, 오직 그림으로만 끄집어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시각적인 치료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환자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미술치료는 많지만, 환자의 심정을 그림에 빗대어 표현해주는 상담은 아마 지금까지 없었을 거다. 시각적으로 보여주면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강하게 와 닿을 수 있다.

한 번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내가 정신과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막상 진단을 받기에는 두려운 마음도 있고. 사람들이 정신과에 와서 의사에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주거나 인생을 바꿔주는 경우는 굉장히 희박하다. 바꿔 드릴 자신도 없다. 이런 표현을 주로 한다. 나를 거울처럼 생각하라고. 거울이 없으면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의사를 거울처럼 생각하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정신과 치료 중 하나가 관점의 전환이다. 사람들이 우울하고 힘들면 관점이 좁아진다. 넓게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해주면 관점을 바꿀 수 있다. 생각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 적게 받으려면 ‘자기 효능감’ 중요

중년 여성들의 고민 중 하나가 스스로가 선택한, 자신이 원해서 하는 행동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남편, 자식에게 의존하는 일상이 많기 때문에 자아 존중감 역시 부족하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기본적인 믿음이 있는데, 자기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왔다는 생각이다. 지금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틀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느낌,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람은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느끼면, 동기가 생기고 활력이 넘친다. 자기 행동의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가 자신의 내부에 있다고 자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택권이나 결정권이 자신이 아닌 외부에 있다고 느끼면 무기력해지고 활력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자기 효능감(self-sfficacy)도 사라진다.

일상에서 ‘자기 효능감’을 많이 누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인을 예로 들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자의가 아닌, 지시에 의한 업무가 대부분인 회사원들이 많고.

직장에서는 당연히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니꼽고 더러워도 견뎌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는 견디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란 개념을 많이 이야기한다.

‘잡 크래프팅’이란, 주어진 업무를 스스로 변화시켜 보다 의미 있게 일을 한다는 개념인데,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라고 말하기엔 현실이 너무 힘들지 않은가.

공항 셔틀버스 운전만 30년을 한 남자가 있다고 치자. 얼마나 힘들었겠나, 30년을 같은 일만 했는데. 하지만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단지 운전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누군가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여행의 시발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어 디자이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손님의 요구에 따라 머리 스타일을 바꿔주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 자체가 의미 있고 힘이 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생각을 통해서 자신의 직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사람들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한 사람들이 아니다. 추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이 있다 치자.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견디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1년이든 2년이든 뭔가 이루고 나서 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누구도 내 인생에 의미 부여를 해주지 않는다. 스스로 해야 한다. ‘자기 효능감’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믿음이 있으면 자기 효능감이 커져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는 것이다.

자기연민이 심한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많다. 딜레마다. 여성이 갖고 있는 이중적 심리인데,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고 채찍질하면 우울해지는 걸 알지만,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버리면 이대로 안주해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내제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연민에 숨겨진 이면의 메시지다.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나쁘다는 걸 알지만, 자기비난에도 자신을 움직이는 동력이 있으니까 버리지 못한다. 더욱이 한창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욱 포기가 어렵다. 그런 분들에게는 지금 당장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한다. 해결한다고 해도 또 다른 불안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자기연민에 따라오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받아들이고, 그것을 동력 삼아서 잘 지내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은 조금 괴롭고 힘들어도, 실수하지 않고 열심히 살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다만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엄마라면, 아이를 볼 때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고 괜한 죄책감이 전달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 스스로를 자꾸 비난하게 되는 습관이, 내가 진짜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비난을 하는 성향’ 때문이라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양면성을 인정해야 마음의 피로를 풀 수 있다. 인정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방법이 보인다.

사람의 성격이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기질, 성향으로 성격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왔는데.

성격이라는 게 대부분 생존의 이점이 있어서 발달된 것이다. 유전적으로 연결되는 기질조차 생존의 이점이 있어서 유전되었고, 학습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성격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거다. 40, 50년을 한 성격으로 살아왔는데, 상대에게 그걸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신중하고 말이 없는 남편에게 아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적극적으로 표현도 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여달라”고 하는 건, 당신의 유전자를 바꾸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가능한 요구다. 사람의 성격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향으로 형성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존에 가장 적합하게 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본질적인 성향을 바꾸려는 시도는 한 사람의 생존 본능에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자신의 본질을 바꾸려는 외부의 시도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저항한다.

아내들이 남편의 변화를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남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자가 아무리 교양 있게 말해도 남자가 느끼기에는 ‘정서 충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남자들은 정서적인 피로감이 몰려오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살만큼 살았는데, 바꾸라고 하면 엄청난 부담인 거다. 또 그렇게 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거리감을 두고 남자를 대하면 오히려 관계가 좋아진다. ‘당신이 나 사랑하면 이렇게 해줘. 이렇게 변해줘”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사랑의 힘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 믿지 않으면 오히려 돌아온다.

통계에 의하면 성격이 비슷한 성격의 부부들이 편안한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상대를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확률적으로 비슷한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면, 이혼할 가능성이 적는 건 사실이다. 문화적인 배경이 아니라 기질,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상대와 만나면 재미 없을 것 같다. 티격태격 싸우고 갈등도 있어야지 살아가는 재미가 있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그냥 평탄하게 살면 나중에 ‘잘 살았다’는 느낌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다. 메달로 따지면 은메달 정도? 물론 금메달을 못 딸 수도 있겠지만, 갈등을 품고 살아온 삶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비혼자들에게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때, 이것만은 주의해라! 조언을 한다면.

정신과 의사로서 합당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남녀 관계에서는 절대 이성적인 판단만으로 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일을 처리할 때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하는 게 맞지만, 대인관계와 같이 불확실성이 많이 노출된 상황에서의 이성적인 판단은 대부분 실패하는 결론이 많다. 정보량이나 사회 환경 등 변수가 너무 많아서 일반적인 생각으로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내가 답을 찾았다고 생각해도 오류일 가능성이 많다. 그 때는 오히려 자기 감정을 따르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자기 감정이라는 것도 생존에 따라 발달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상심하면 뇌에서 ‘너 위험하니까 지금은 쉬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 온다. 남녀 관계에서는 이성적 판단이 작동하지 않는다. 결혼을 늦게까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은 너무 많이 따지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에 따라서, 충동적으로 살라는 게 아니다. 감정, 관계의 문제는 이성적인 변수를 조합해도 올바른 정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마음의 스트레스, 몸으로 푸는 것이 최선

사람의 감정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본능대로 하라고 부추기는 책들도 많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우선 내 자아가 본능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고, 세상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실제로 그렇게 강한 사람은 없다. 약한 사람한테 자꾸 단칼에 잘라버리라는 격인데, 안 되는 일을 자꾸만 부추기는 격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현실은 환상이 아니니까. 듣기는 좋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정답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자기 자신과 친해져야 한다.

심리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해답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나의 불안, 우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인가?

불안은 치료 후에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치료가 됐다는 건, 불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했을 때 좋아지는 것이다. 불안이 없어져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불안하고 우울해도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고 고민이 많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상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온전할 수 없다.

정신분석을 전공한 전문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궁금하다. 화가 나면 어떻게 하는가?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노하우도 있을 것 같은데.

의사도 감정노동자다. 혼자 있을 때,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낸다. 흔히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이게 가장 나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마인드는 컨트롤하는 게 아니다. 마음의 스트레스는 몸으로 푸는 게 가장 좋다. 땀 흘리면서 운동하는 게 제일 좋다. ‘안면 피드백 이론’이라고도 말하는데, 신체 반응에 따라서 뇌가 영향을 받는 거다. 스트레스 받고 불안한 상태라고 해도, 사람이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게 되면 몸의 긴장이 자연스럽게 풀리면서 뇌가 거꾸로 영향을 받는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운동을 적극 추천한다. 효과가 가장 좋다. 개인적으로 또 다른 방법은 음악 감상이다. 바하 인벤션을 듣고 있으면 내 몸이 조율되는 느낌이다.

『사모님 우울증』 이라는 제목 때문에 중년을 타깃으로 한 느낌이다.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솔직히 말하면 20, 30대 따님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엄마를 이해하는 통로로 이 책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또 나중에 겪게 될 불안한 심리, 우울증을 대비하기 위한 통로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30, 40대라고 해서 다른 고통이 숨겨져 있지 않다. 삶은 정말 제각각이지만 고통의 본질은 대부분 몇 가지로 취합된다. 불확실성이 압도되는 상황에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획기적이고 새로운 것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남자, 남편들도 읽으면 좋지 않을까.

물론이다. 남편이 읽는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병원에 찾아오는 중년 여성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남편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이 말을 가장 많이 한다. 남편이 도와주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그런데 남편들은 잘 오지 않는다.

남편으로서 저자는 어떠한가? 중년 여성들의 심리를 이렇게 잘 아는데, 현실의 아내에게 어떤 남편인가?

아내가 그러더라. “책을 읽으면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인데, 왜 현실에서는 이러냐고.”(웃음) 내가 심리에 도통해서, 이중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비유를 들자면 나는 아직 미숙하고 인생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지만,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는 건 베이스캠프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등산을 잘하진 못하지만, 등산하는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가장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조금 더 편안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알려주는 정도이지, 내가 엄홍길 대장은 아니다. 모든 현실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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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우울증 김병수 저 | 문학동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 김태원, 전현무 등 출연 멤버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 명쾌한 분석을 들려주었던 정신과의사 김병수가 이번에는 중년의 여자, ‘사모님’들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기를 원하는 우울한 아내와 외로운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삶을 살 것 같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책장을 넘길수록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책에 담긴 스물다섯 가지 사연은 소수의 ‘사모님’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내 아내 그리고 외로운 어머니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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