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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안목, 좋은 그림을 기준으로 삼자

『옛 그림을 보는 법』 의 저자, 허균과 함께 한 전통미술 여행 옛 그림, 그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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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며 옛 그림을 살펴보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되었다. 시간이 되자 독자들이 들뜬 마음으로 박물관 앞에 모여들었다. 이날 전통미술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해준 길잡이는 한국민예술연구소장인 허균이었다. 그는 얼마 전 『옛 그림을 보는 법 - 전통미술의 상징세계』 로 펴내기도 했다. 현대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동양의 전통미술에 한걸음 다가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보기 전, 저자 허균은 옛 그림을 볼 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알려주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관념들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현재의 눈이 아니라 그 시대의 눈으로 작품을 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합리성으로 세상을 판단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당대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어 저자는 모든 유형문화재는 무형문화재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그림 한 폭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옛사람들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림의 속뜻을 알기 위해서는 그림의 배후에 있는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 시대적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한 작품을 볼 때 작품을 통해 화가를 보고, 그 화가가 살던 시대를 본다는 말이 된다. 저자 허균은 창작자는 한 사회 안에서 키워지기 때문에 우리는 화가를 통해 그 사회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그 시대의 특징들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민족성이나 오랜 역사적 맥락 등도 읽어낼 수 있다고 했다.




비교를 통해 판단을 해볼 것

옛 그림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태도를 익히고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을 시작했다. 테마별로 꾸며진 전시실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북새선은도>라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 무과시험을 그린 것인데 과거시험을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일종의 보고서로 쓰인 그림이었다. 왕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그린 기록화지만 이 그림을 보면 당시 함흥 주변의 풍경과 사회상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직접 풍경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는 면에서 실경산수의 의미도 있다고 했다.

다음은 풍속화를 살펴보았다. 저자는 그림을 보기 전 풍속화가 생겨난 사회적 배경을 말해주었다. 임진왜란이 막 끝나고 폐허가 된 조선에서 사람들은 크게 할 일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사를 통해 삶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상인들이 늘어나고 상업을 통한 부의 축적도 많아지게 된 것이다. 부유한 상인과 몰락 양반이 늘어가는 상황 속에서 조선 후기에는 돈의 가치가 중요해졌다. 매관매직도 성해지고 문화 역시 양반 중심 문화에서 서민 중심 문화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간 계급의 구매력이 상승하면서 그림 수요가 늘며 풍속화가 발달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이 나온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풍속도를 모두 돌아본 뒤에 초상화를 감상했다. 동양에서 좋은 초상화란 사진처럼 그리는 것은 물론 그림 안에 사람의 인격까지 표현한 그림이었다. 그래서 다른 그림에 비해 더 어렵게 여겨졌다. 특히 임금의 얼굴을 그리는 어진화사는 최고의 화공에게만 주어지는 일이었다. 임금의 얼굴은 물론 어진 풍모까지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있는 그대로 사람의 모습을 전하면서도 그 사람 정신을 담는 걸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그림을 보는 안목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기준이 되는 좋은 그림을 알고 비교를 통해 판단을 해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초상화에서는 보통 윤선도 초상을 그 기준으로 많이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안목이 는다는 것이다. 탑의 경우는 불국사 삼층석탑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좋다는 팁도 주었다.




산수화, 여백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어지는 그림은 산수화였다. 저자에 따르면 산수를 대하는 데는 세 단계가 있다. 제일 먼저, 눈으로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흥취를 느끼는 것, 마지막으로는 그 뒤에 숨겨진 이치를 아는 것이다. 이를 테면 눈 덮힌 산 위에 까마귀가 날아갈 때 흑백이 분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모습이 경치라면, 흥취는 까마귀가 눈을 더럽히지 않으니 설산이 더욱 희고 깨끗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의 감격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치는 흰 눈과 검은 까마귀가 원래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이성으로 파악되는 자연의 원리다.

같은 산수화라도 단순히 경치를 그렸는지, 자연이 주는 감격을 표현했는지, 아니면 자연의 이치를 드러내느냐에 따라 그림의 성격과 품격이 달라진다. 그림을 읽는 법 역시 이에 따라 다르다. 저자는 그림을 대할 때 이치를 드러낸 그림이라면 체득할 수 있어야 하고, 흥취를 표현한 것이라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경치를 그린 그림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그렸는가를 살피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그림의 진의를 파악하여 그것을 화가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일 터였다.

경치로서의 산수를 그린 그림을 실경산수라고 한다. 이 실경산수는 고려시대부터 그려졌는데 조선시대 후기 사대부들에 의해 크게 유행한다. 그 내용을 보면 금강산 명소를 비롯해서 한양 주변의 누정이나 명승,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성 일대의 절경, 그 밖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지역의 볼 만한 경치, 유적지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로 눈앞에 전개된 산수 경관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데, 대체로 이런 그림에는 자연에서 느끼는 흥취가 배제되어 있으며, 경치 뒤에 숨은 자연의 이치를 드러내려는 시도도 찾아보기 어렵다.

흥취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얻는 감격이고, 높고 밝은 경지에서 마음을 같이할 때 느끼는 감동이다. 그리고 이치는 동양화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옛 문인이나 는 자연의 이치와 도의 본질이 내재된 곳이었다. 지형적 물질적 세계가 아니라 주관적 정신적 세계였던 것이다. 현실에서 산수의 세계가 나무, 풀, 바위 등으로 분별되어 있고,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한다. 옛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데서 오히려 산수의 이치를 체득하려 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써 보이지 않는 이치를 드러내야 하는 산수화가들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중요하게 이야기한 것은 바로 그림 속 ‘여백’이다. 우리는 자주 ‘여백의 미’라는 말을 쓰지만 이 여백이 왜 필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를 드러내는 그림에서 여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수화에서 산이나 나무, 바위, 배 등 눈에 보이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이 여백이다. 여백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충만해 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며,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그림으로 그리고자 해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침묵으로, 적막으로, 여백으로 암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산수화에서 이치가 드러나게 되는 거다.

사실 이렇게 구체적인 대상이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서양화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동양화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양화에서는 생각을 그리는 일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요즘 옛 그림이 어색한 이유는 현대에 와서 서양화가 익숙해진 때문이다.

산수화를 돌아본 뒤에는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를 함께 봤다. 이 그림은 북송 때 부위도마 왕선의 정원에서 벌어진 문인들의 모임 장면을 그린 것이다. 옛이야기에서 빌려온 고사인물화의 성격이 강한 그림이었다. 모임 현장을 직접 묘사한 기록화가 아닌 문인 취향의 풍류 모임을 이상화해 그린 일종의 상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림은 현대에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글을 쓸 때도 고문을 빌어다 쓰곤 했던 시대를 떠올려보면 그 맥락을 짐작할 수 있다.

옛 문인들은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는 것을 인격 수양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신라의 최치원은 풍류를 현모지도라 하면서, 자연의 법도를 체득하여 인간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풍류의 본뜻이라고 했다. 풍류를 중요하게 여겼던 옛 선비들은 사는 형편이 비슷하거나 취향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집단 풍류를 즐겼다. 이를테면 다산 정약용은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초가을 서늘할 때 연꽃 구경을 위해 한 번 모였다고 한다. 물론 국화가 필 때, 눈이 올 때도 빼놓지 않고 모였다. 이렇게 모일 때마다 술, 안주, 붓, 벼루 등을 갖추어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

퇴계 이황이 주도한 풍류모임은 정적인 풍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연꽃이 필 무렵 남대문 밖에서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연꽃 봉오리를 주시하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시회는 연꽃 피는 소리를 듣는 모임이었다. 그들이 침묵을 지켰던 건 자연의 법도를 체득하여 인간 본성을 회복하려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김홍도의 그림은 단순히 왕선의 모임을 그린 것이 아니라 당대 문인들이 지향했던 ‘풍류’ 그 자체를 그려낸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사물을 그린 그림에도 모두 속뜻이 있다

저자는 다양한 사물과 동물들이 그려진 그림으로 독자들을 안내했다. 대부분 민화로 분류되는 이 그림들에는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특히 인생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오복을 드러내는 작품이 많았다. 오복은 오래 사는 것, 부자로 사는 것, 몸과 마음에 우환 없이 편히 사는 것, 덕을 행하여 복을 쌓는 것, 천명을 누리다 편히 죽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사물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에도 모두 속뜻이 있었다. 연 꽃 그림 중 새가 연밥을 쪼아 먹는 그림은 남아 잉태를 의미하며, 여러 명의 아이들이 연 밭에서 노는 모습은 아들 복과 부부 화목 등을 뜻한다. 석류 문양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석류 모양이 자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박과 참외 역시 많은 씨앗을 가지고 있어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뜻한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복숭아는 수명장수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민화 중에 고양이와 나비가 그려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가롭게만 보이는 이 그림은 사실 장수의 염원을 나타낸 그림이라고 한다. 이런 상징은 무수히 많은데, 한 쌍의 물고기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을 그린 민화는 부부 화합과 다산의 대표적 상징이다. 또 모란도는 부귀를, 잉어가 용으로 변하는 순간을 묘사한 그림은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당연히 사물과 동물을 그린 그림이라 생각했던 것들 뒤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게 꽤나 신기하고 놀라웠는지 독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물관 투어를 마친 뒤, 저자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저자 허균은 독자들에게 서양에서 과학이 발전한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독자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생각’과 ‘관찰’을 가지고 답을 찾아 나섰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생각하고 나서 보는 것은 동양의 것이고, 보고 나서 생각하는 것은 서양의 것이다. 따라서 물질을 직접 탐구해 답을 알아내려는 과학 분야에서 서양의 행동력과 실험정신이 동양을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동양이 과학발달이 늦어진 것은 관심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저자는 예로 네팔의 세르파를 들었다. 높은 산을 정복한 사람들은 늘 서양 사람들이었지만 사실 이들은 네팔에 사는 세르파들의 안내를 받았다. 세르파들은 누구보다 먼저 높은 산에 올라가고 서양의 탐험가들을 안내했지만 아무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서양의 경우, 달을 보고 공기가 있을지 없을지 같은 궁금증을 가지기 때문에 로켓을 만들어 달이나 화성으로 간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은 실체를 확인하는 동시에 끝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동양의 경우 달은 이태백의 시와 같이 달에 대한 생각, 이치의 탐구로 진행된다. 동양예술과 서양예술이 다른 것 역시 이런 차이에서 시작된 것 같다고 저자는 말했다.

동양과 서양에 대한 저자의 구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들의 시선이 다분히 서구중심적인 것은 사실이며, 그 시선으로 우리 옛 그림들을 충분히 읽어낼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오래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아는 일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오랜 수련을 통해 안목이 생긴다면, 그래서 그림을 통해 과거와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풍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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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옛그림을 모두 13장의 주제로 분류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대표작품을 선별하여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상징의 세계를 풀어낸 책이다. 우리 옛미술을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그동안 출간된 책들은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거나, 또는 그림 자체를 일상적인 감상과 연계하여 소개한 것들이 많았다. 이에 비해 이 책은 그림에 담긴 ‘상징’을 매개로, 우리 옛미술품들에 관심은 있으나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몰랐던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우리 그림의 특징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림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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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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