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 단지 공화국이 우리 삶을 망쳐놓았다

『아파트 한국사회』 저자 박인석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아파트 단지를 읽으면 한국사회가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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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가 대한민국 아파트의 ‘단지화 전략’의 문제점을 밝힌 『아파트 한국사회』를 펴냈다. 박인석 교수는 한국 아파트라는 필드워크에서 이뤄진 평생의 연구 궤적을 담아 주거사회사를 낱낱이 파헤쳤다.

『아파트 한국사회』 는 단지 공화국에 갇힌 대한민국의 일상을 담은 책이다. 박인석 교수는 한국사회를 읽는 키워드 ‘아파트 공화국’을 ‘단지 공화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공간의 환경 개선 없이 사유 단지 개발을 장려하는 이른바 ‘단지화 전략’으로 일관하는 주택정책 속에서 박인석 교수는 “비판 받아야 할 것은 아파트라는 주거형식 자체가 아니라 ‘단지 만들기’로 일관해온 정책과 이로 빚어진 도시 상황이다. 정확한 문제 지적과 비판 속에 문제를 개선하고 아파트를 좋은 집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문제의 핵심은 아파트가 아닙니다. 아파트든 타운하우스든 ‘단지’로 지어지는 집이 문제의 주인공입니다. 설사 단독주택 동네라도 담장을 둘러친 단지로 만들어진다면 도시공간과 격리되기는 마찬가지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시민들의 공간, 시민들의 도시에서 관심이 멀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라도 얼마든지 좋은 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유수한 도시들을 채우고 있는 5~6층 건물들이 대부분 아파트라는 것을(아파트단지가 아니라 아파트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3년 전, 지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박인석 교수는 집 짓기 과정을 『아파트와 바꾼 집』 에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박 교수 역시, 아파트(단지) 생활 22년 끝에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룬 것이다. 이웃들과 서로의 마당을 견주며 세 번째 가을을 맞고 있고 있는 지금. 박인석 교수는 “지금의 집에 만족하고 있지만 마당을 갖춘 단독주택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집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은 집, 적정한 비용으로 지을 수 있는 집,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으면서 품격 있는 집, 동네 환경에 보탬이 되는 집이어야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단독주택 중에는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집들도 많습니다. 또 반드시 단독주택이 가장 좋은 주거형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좋아하는 주거유형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파트도 얼마든지 좋은 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런 좋은 아파트가 우리 곁에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요.”



획일적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 모습

아파트를 “열악한 도시 환경이라는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사설 오아시스”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오아시스는 영원한 것이 아닐 텐데요.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파트가 가장 효율적인 주거 방식이라는 개념은 과연 깨질 수 있을까요?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단지)가 가장 좋은 집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라 해야 합니다. 동네의 생활편익시설 수준에 관한 한 아파트(단지)와 경쟁할만한 동네와 집이 한국에는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좋은 동네와 좋은 집을 가늠하는 일차적인 조건은 당장의 생활에 필요한 공간이나 시설의 양과 수준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도시 환경이 좋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아파트단지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아파트가 가장 좋은 집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도시에 공원, 생활체육시설 등 생활편익시설이 많아지고 환경이 좋아져서 일반 소필지 지역에서도 아파트단지에 견줄만한 생활환경을 갖춘 동네가 늘어나야 사람들의 평가와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문제는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한국의 여건에서는 아파트단지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좋은 해결방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이러한 생각이 문제 상황의 개선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 객관적인 안목을 갖는 시민들이 많아지도록 아파트단지가 갖는 문제와 다른 대안들을 밝히고 알리는 일이 전문가들과 언론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의 다양한 아파트 사례 중에, 대한민국에 적용하기 가장 적합한 아파트 형태는 어떤 구조입니까.

외국의 어떤 특정한 주거형태가 한국사회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는 한국의 기후와 주거문화에 알맞은 아파트가 따로 있을 것이고 이것을 우리 한국사회의 여건 속에서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지향해야 함직한 부분적인 특성들만을 거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대규모 자족적인 단지보다는 가급적 소규모 단위로 나누어 개발하고 공공공간(도시가로)과 직접 접속하는 생활공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발코니가 본연의 형태를 되찾아 집집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점입니다.


그 동안 도시, 주거 건축의 담론이 부동산 개발 문제에만 편중됐다고 지적하셨는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지하듯이 부동산 개발은 한국경제 압축성장의 주요한 수단이었으며 국가경제와 건설기업들에게 중요한 영향 요인이자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특히 모든 주택을 개인이 구매하는 시장주택으로 공급하도록 한 주택정책 속에서 부동산 경기와 집값은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시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 건축과 집에 관한 관심이 부동산 개발과 재산가치적 측면에 편중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할 만합니다. 물론 그러한 여건 속에서라도 시민들의 생활공간이 갖는 또 다른 측면의 성격과 의미를 천착하며 시민적 논의 대상으로 부각시켜야 할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전문 분야와 언론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비판과 자성이 있어야 할 부분입니다.



아파트 단지의 폐쇄적인 담장

택배기사들이 아파트 출입을 못하게 해서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주거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주차를 못하게 하는 거죠. 아파트의 폐쇄문화, 어떻게 보십니까.

임대 아파트단지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아파트단지는 모두 분양 아파트단지이고 고급 아파트단지일수록 정도가 심해집니다. 아파트단지는 본질적으로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한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도시 공공공간 환경이 열악한 상태로 방치된 속에서 사유재산으로서 놀이터, 주차장 등 생활기반시설을 갖춘 주거지를 자기 돈으로 구입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재산인 주차장 등 편익시설이 주변지역 사람들에게 점유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단지를 둘러싼 담장은 그러한 경계심의 발로입니다. 고급 단지일수록 담장이 높아지고 심지어 경비원까지 내세워 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또한 아파트단지는 거주자들에게 자신들 집의 재산가치 상승에 대한 공통 욕구를 갖도록 만들게 마련입니다. 주민들이 단지 내부 환경을 가꾸고 지키려는 욕구가 강한 것은 단지 환경을 살기 좋게 만들려는 욕구도 있지만 자신들의 재산가치를 높이려는 욕구도 동시에 작용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욕구가 단지별 폐쇄성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최근 개봉한 영화 <숨바꼭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고, 단지화에 대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이웃들 간의 격리 단절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영화는 아직 못 봤는데 꼭 봐야겠습니다. 아파트단지가 도시와 단절되는 것보다도 더 흔히 지적되는 문제가 단지 안에서도 집집마다 소통과 교류가 부족한 채 단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단독주택 동네보다 훨씬 많은 집들이 벽을 맞대고 이웃하여 모여 사는 단지가 왜 이웃 간 단절이 더 심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아파트가 개인들의 차이를 드러낼 여지가 없는 형식으로 설계되고 지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모든 집의 발코니 창, 현관문이 모두 똑같고 외부에서 집 안 삶의 표정을 한 치도 볼 수 없도록 막혀 있습니다. 아파트에서는 누구인가 남의 집을 계속 쳐다본다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려는 것으로 의심받기 마련입니다. 볼 것이 없는 곳을 보고 있으니까요. 교류는 ‘다름’과 ‘차이’의 만남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딪고 만나야 교류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똑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교류가 쉽사리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복 속 개인들의 서로 다른 개성과 인격을 감지하기 전까지는. 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보다 단독주택 동네에서 이웃 간 교류가 활발한 것은 집집마다 모습이 다를 뿐 아니라 마당, 창문 화분대 등 사는 사람들의 ‘다른’ 삶의 내용을 드러내는 장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높은 담장을 친 고급 단독주택 동네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겠지요. 아파트라고 집집마다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현관 앞, 발코니 등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문제는 한국 아파트에는 이러한 장치가 없다는 것이지요.


한국은 땅이 좁아서 아파트단지를 많이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대해, 도시별 인구밀도를 살펴보면 유럽 대도시와 비슷한 수준이고 고밀개발을 해야 할 만큼 땅이 부족한지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는 아직까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까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총 밀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고, 서울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밀도 도시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집중해 있는(따라서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한국 특유의 상황을 무시한 것이며, 시민들의 생활공간환경은 지역별로 다른 여건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상식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도시들 중 많은 곳에서 인구 감소를 걱정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말입니다. 아마도 여기에는 고밀개발 정책의 당위성을 주장하려는 태도가 작용하였을 것이고, 모든 가치판단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사회의 상황도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도쿄 시티코트 오오지마의 연도형 단위주거

“단독주택 시대가 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근거 없고 막연한 주장입니다.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단독주택을 많이 지을 것 아니냐”고 하지만, 시민들의 집에 대한 요구는 단순히 기호 변화에 따라 독립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집값과 환경수준에 따라 요구의 방향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양호한 단독주택 동네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즉 아파트(단지)와 비슷한 값으로 비슷한 환경수준을 갖춘 단독주택을 짓거나 구입 할 수 있는 동네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단독주택에 대한 요구와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도시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오히려 “역시 아파트단지가 답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도시의 일반적인 환경수준이 개선되어서 아파트단지와 경쟁할만한 단독주택지가 늘어날 때 비로소 단독주택 시대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최근 LH 아파트 건설 50주년 기념단지 공모전 심사위원을 맡으셨는데,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셨나요? 아파트 설계와 문화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나요?

이번 공모전은 원론적으로는 한계가 있는 공모전이었습니다. 도시계획에 의해 1000호가 넘는 아파트단지 조성을 전제로 구획된 대규모 아파트용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설계해야 하는 공모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바람직한 아파트 설계’를 위해서는 주거용지를 구획하는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다른 접근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이번 공모전은 한국 아파트 설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LH의 세심한 진행으로 새로운 설계 개념을 담은 많은 설계안들이 출품되어 한국 아파트 설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선안은 ‘자족적 단지설계의 탈피’, ‘주변 도시공간에의 융합’ 등 공모전이 요구한 설계방향을 충족하는 참신한 설계안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새로운 설계를 한국 아파트가 지켜온 주요한 주거성능들인 남향, 개방적 외부공간 등을 유지하면서 이루어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외국 어느 도시에서도 없었던, 한국적 여건에서 진전시킨 새로운 설계였습니다. 이러한 설계노력이 도시계획 단계에서의 새로운 접근과 연결된다면 보다 큰 진전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인가구가 늘어 나고 있는 환경에서는 어떤 주택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제까지 1인가구 증가에 대한 대응은 원룸주택 등 ‘작은 집’을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인가구는 단순히 ‘식구 수가 적은 소규모 가구’가 아니라 생활방식과 주거공간 요구 자체가 일반 가족과는 다른 가구로 보아야 합니다. 최근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공유주택은 이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공유주택은 침실, 화장실 등 개인생활에 필수적인 공간만 개인공간으로 설계하고 휴게공간, 주방, 식사실, 샤워실 등을 공유시설로 하는 주택입니다. 작은 부엌과 작은 침실공간뿐인 원룸주택에 비해 훨씬 딜럭스한 시설공간들을 향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설의 공유를 통해 옆집 다른 개인들과 다양한 교류를 기대할 수 있는 주택형식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고려 대상은 늘어나는 노인인구입니다. 몇 년 후면 65세 이상 노인이 20%를 넘어설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노인주거를 ‘실버시설’로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거의 모든 동네와 모든 집에 노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다면 노인용 주택이나 케어시설은 모든 동네에 필수적인 시설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모든 집에 어린이가 있다고 간주하고 모든 동네에 어린이집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모든 동네에서 어린이 케어시설과 어울려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노인 케어시설과 어울려 사는 것이 당연한 동네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미산마을과 같은 마을 공동체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마을 안에 공공시설을 많이 만들고 주민들이 서로 나눈다면 주택 문제도 다소 해결되지 않을까요.

성미산마을은 공동육아, 생협 등 생활상의 공통 관심사와 공통 일거리를 소재로 마을공동체를 일구어가는 곳으로서, 주민들의 일상생활 활동과 함께하는 공동체적 노력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사례입니다. 그러나 주민들 스스로 공동시설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성미산마을은 열성적인 마을리더들과 주민들이 마을마당이나 대안학교, 어린이집 등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공동시설은 어렵습니다. 성미산마을만큼의 공동시설을 만드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이례적인 경우라 해야 합니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해 공공시설 일부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면 박수를 보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보편적 해결책으로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공공시설은 공공이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를 통해 마을공동체 활동을 북돋워야 합니다. 공공시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생활공간의 형식입니다. 마을공동체가 보다 많아지고 보다 활발해지려면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담는 생활공간이 공동체 노력을 북돋우고 손쉽게 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미산마을 공동체가 아파트단지가 아니라 소필지 지역에서 일구어졌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민들이 각자의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도와주는 공간구조입니다. 아파트단지 역시 이러한 공간형식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공동체 활동을 오히려 제약하는 공간형식으로는 곤란합니다.


결국 우리가 살 길은 ‘단지 해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지개발 정책은 공공공간 환경을 개인부담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공공공간 환경 개선은 국가가 담당해야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단지개발에 익숙해져 있는 정부와 공무원들의 자세, 즉 정부예산은 최소로 투여하고 사업자 부담으로 기반시설을 확보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정부예산으로 그 많은 일반 주거지 공공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는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많은 선진국들이 이미 해온 일입니다. 효율적인 단지개발을 목표로 한 개발관련 법규를 개선하는 일, 일반 주거지의 공공공간 환경 개선과 개별적인 주택들의 개선을 정책 우선순위로 전환하는 일 등 정부가 서둘러야 할 일은 너무 많습니다.



도쿄 다마뉴타운의 개방형 발코니



아파트 발코니가 바뀔 때, 아파트 단지 담장이 바뀔 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하셨는데, 내 집 마련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집 없는 시민들이 ‘내 집 마련’을 가장 큰 소망으로 꿈꾸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요. 아파트 문제는 시민들, 즉 수요자들의 의식개혁을 촉구하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정부의 주택정책이 바뀌고, 아파트단지 설계기준과 법규들을 바꾸어서 시민들이 아파트값에 포함된 발코니 확장비용을 다 부담하고도 마치 공짜로 집 크기를 늘린듯한 허위의식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아파트단지 담장을 쳐야만 안심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정작 시민들에게 바라야 할 일은 시민들 모두의 자산인 도시 공공공간 환경, 광장과 가로공간, 골목과 공원의 환경수준에 관심을 갖고 그 개선을 위해 정부가 보다 노력하도록 촉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공공공간이 좋아질 때 아파트 담장이 필요 없어지고, 내 집, 내 단지의 환경만을 유일한 삶터로 여기는 시민들의 생활이 비로소 바뀔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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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국사회
박인석 저 | 현암사
아파트 단지라는 생활공간이 우리의 도시와 일상을 가두었다면, 공간 구조의 변화를 통해 우리네 삶터를 회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2013년 현재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압축성장 이후 아파트는 급팽창한 중산층과 현대적인 주거환경의 상징이 되었다. ‘재테크 수단’이나 ‘구별 짓기’의 상징으로 여전히 추앙받고 있는 아파트, 어쩌다 일상을 획일화하고 도시 안에서의 소통을 단절하는 아이콘이 되었을까? 이 책은 편하지만 편할 수만은 없는 한국 아파트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며, 나아가 서로 만나고 부딪는 도시를 이루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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