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강신주 “자유로운 자만이 사랑할 수 있다”

김수영의 시를 통해 표현한 당당하고 정직한, 철학자의 인문학 맨얼굴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자 강신주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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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발가락이 드러나 보이는 샌들을 신고 나타난 철학자 강신주의 모습에 놀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를 조금 안다는 독자들은 그저 슬며시 웃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책 좀 봤다는 여느 지식인들처럼, 혹은 인문학을 도구로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들과는 좀 다른 분위기다.

혹자는 그의 행적을 빗대어 거리의 철학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보통의 학자들처럼 강단에 머물기보다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고, 인문학의 참뜻을 대중들과 부대끼며 설명하고, 알리고 이해시키려 노력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그저 ‘철학자’라고 말한다. 또 스스럼없이 철학자는 ‘다 알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제와 사회, 정치와 윤리를 비롯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담론을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는 것은 답해줄 수 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것”이라고. 이를테면, 그의 인문학이란 당당함이며 솔직함이다. 가식이나 허위도 스며들 자리가 없다. ‘삶은 원래 고통이며 가끔씩 덜 고통스러울 때가 행복’이라고 너무도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그에게 대중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한다. 그럴듯한 희망을 심듯, 미끼마냥 삶의 달콤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이들의 말보다는 차라리 후련하게 들린다. 솔직함은 솔직함을 만났을 때 더 유쾌해지는 법이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아니, 어쩌면 생각을 던져 놓았다고 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 씨가 묻고 그가 답한 형식의 인터뷰 집이다. 장장 50여 시간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책 한 권에 녹여 넣었다고 한다. 바로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다.




당당한 인문학이란, 그리고 진짜 자유란 무엇인가

그의 이야기는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듣고 있노라면 엉뚱한 이야기 역시도 하나의 맥락 속에 포함 돼 있고 그 조차도 청중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림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인문학의 오해에 대한 것이다. 겉멋과 고상함으로 치장된 인문학에 대한 오해다.

“대학시절을 떠올려보면 인문학은 제가 생각해도 겉멋이 엄청 들었어요. 당시에는 멋있어 보여 질투도 했었죠.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친구들은 교수들의 흉내를 내고 있던 것이더군요. 어쨌든 인문학에 대해 처음 들었던 생각은 ‘귀족들이 하는 것’이었어요. 저처럼 가난한 사람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죠. 돌이켜 보면 그게 가장 큰 오해였던 것 같아요. 그들이 인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일종의 화장품과 같은 것이었어요. 계속 공부를 하고 책을 쓰면서 제가 깨달은 인문학은 사실 화장과는 반대의 개념이었어요.”

그가 발견한 인문학의 본색은 당당함이었다. 유사 이래로 이어진 말, ‘펜은 칼보다 강하다’가 그가 이야기하는 인문학의 정확한 정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겉멋이 든 인문학, 여리고 퇴폐적인 인문학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그가 당당한 인문학을 설명하기 위해 김수영 시인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수영 시인의 생애와 작품, 그 안에 고통과 고민까지 꿰뚫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였다. 실제로 그는 근자에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부제는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이었다.

“제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김수영은 6.25의 시인, 분단의 시인이에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던 시인은 김수영뿐이었죠.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그야말로 남북의 대립이 극명했던 곳이었어요. 이념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던 곳이었죠. 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사라진 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수용소가 된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좌익 이념 공세가 넘치는 인터넷 댓글 보면 아실 거예요. 이념이 뭐가 중요해요. 이념은 인간을 위해있는 것이잖아요. 김수영은 그걸 안 거죠. 그래서 김수영 시인은 남한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쳤을 때 우리사회에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김수영은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계속 읽혀야하는 시인이에요. 20세기에 이념대립이 끝났는데 21세기의 우리가 정리 못하면 20세기는 계속 지속되는 겁니다. 우리가 낙후됐다는 것은 거기에 있어요. 물론 살기 힘든 세상이고, 일상의 갈등은 존재해요. 하지만 여러분도 자각해야 합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가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을 낭독했다. 혁명으로 칭해진 ‘4.19’가 일어난 직후 시인이 비분강개하며 쓴 시는 진정한 혁명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자유는 피 냄새가 섞여 있는 것, 혁명은 고독한 것임을 토로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를 ‘자유롭다’고 말하는 이는 가혹한 푸른 하늘의 실체를, 자유를 위해 비상하는 것이 어떤 고통을 수반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겨울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 본 사람은 그 바람이 얼마나 매섭고 센지를 알거에요. 또 산에 올라가는 것은 강제로 데려가지 못해요. 다섯 사람이 가면 다섯 사람 모두가 올라가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산이거든요. 산을 제대로 올라가 본 사람은 모두 스스로 올라가야한다는 걸 알아요. 자유에는 그렇게 피 냄새가 섞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는 젖과 꿀이 흘러야 하는 것으로 잘못알고 있어요. 직접 겪어봐야 아는 세계죠.”

그의 말은 다시 혁명의 고독성으로 이어졌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고독한 주인이어야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라고, 또 혁명은 개개인이 고독하게 이뤄내야 진정 이뤄지는 것이라고 한다.

“혁명은 정치적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삶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어요. 누가 끌고 가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와 땀 냄새를 맡으며 해내야하는 것이죠. 한 번 혁명을 하면 두 번 사는 겁니다. 혁명은 그런 것이에요.”

그의 이야기는 다시 ‘자유’에서 맴돌았다. 그가 이야기하는 자유는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그것과는 조금 차원이 달랐던 탓이다. 구속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구속을 뚫고 가야하는 것, 억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피가 나면서도 쟁취하는 자유야 말로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다. 적어도 그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용된 자유에 만족하는 노예의 삶에 안주하고 있는 듯하다.

“군대에서도 자유를 누릴 수 있어요. 허용된 범위만 벗어나지 않으면 되죠. 억압이 있는 사회에서는 허용된 자유만 누리면 되요. 조선시대에 여성들에게도 자유가 있었죠. 그저 삼종지도만 지키면 됐어요. 자기 방에서 수를 놓을 자유가 주어지는 거죠. 독재시대에도, 일제강점기에도 허용된 범위의 자유는 있었어요. 그러나 진정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계에 부딪혀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죽을 때까지 부딪혀보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그리고 저처럼 부딪히는 사람에게는 오버한다고 하죠.”

그는 다시 동물원의 사자우리를 이야기했다. 가운데 호수가 허용된 자유라면 벽이 둘러쳐진 우리의 경계는 그 자유가 허황된 것임을 깨닫게 하는 한계라는 것이다. 한번 벽의 존재를 깨달아버린 이는 어쩔 수 없어 다시 호수로 돌아오는 순간 예전처럼 편치 않음을 절실히 느낀다.

“김수영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경계, 벽에서 절규하고 있을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합니다. 심지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벽 밖이 오히려 갇힌 것이고 안이 자유로운 것일 수도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죠. 인문학은 벽에 서서 버티며 자유를 갈구하는 겁니다. 벽에 서서 손톱이 빠지도록 박박 긁어 피투성이가 되어 뚫는 것이 예술이고 인문학이에요. 무서워도 당당하게 버티는 거죠.”




자유가 없는 것은 노예의 삶

    사령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아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아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그가 낭독한 김수영 시인의 두 번 째 시는 ‘사령(死靈)’이었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때,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인의 심상이 느껴지는 시는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영을 죽은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자유라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주인이에요. 하지만 타인이 원하는 걸 하는 사람은 노예죠. 내 삶을 못 사는 것은 죽음과 다르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고 타인이, 독재자가 원하는 걸 하는 데 뭐가 마음에 들겠어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죠. 아름다운 것들, 사랑스러운 것들도 마음에 들지 않죠.”

그는 다시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소설 『무무』를 설명하며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정 러시아의 농노제도가 존재했던 시절, 게라심이라는 농노가 감정을 느끼는 것, 사랑을 느끼는 것조차도 주인인 귀족 부인에게 허락받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쏟아 부은 개 ‘무무’조차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비극을 다룬 이야기. 이 작품은 당시 황제인 알렉산드로 2세로 하여금 농노제도를 폐지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어요. 노예는 사랑을 하면 안 되죠. 사랑과 자유는 같은 것이거든요. 황제가 농노제도를 없앴다고 하지만 그는 다시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나에게 밥을 줬을 때 고마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스스로 밥을 얻어야 되는 겁니다. 누군가 주는 것에 흡족해 할 때, 그 준 사람은 빼앗을 권리도 있거든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라

    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의 세 번째 시 ‘폭포’를 낭독하는 그의 목소리에 새삼 힘이 느껴진다. 그는 이 시가 ‘모든 인문학자들, 예술가들, 철학자들이 글을 쓰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김수영 시인의 오만도 보이긴 해요. ‘내가 시를 한 편씩 폭포처럼 쏟아낼 때 과연 누가 읽을까’하는 고민도 있죠. 그런데도 희망을 해 보는 거죠. ‘벽에 부딪혀서 우리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소리치는데, 이 이야기를 누가 들을까’하면서도 희망을 가져 보는 거예요.”

그는 또 청중들에게 ‘당신은 폭포냐’고 되묻는다. 남의 인정과 평가에 휘둘리는 사람은 폭포가 될 수 없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기준도 다르지 않다. 남의 인정과 평가에 휘둘리는 것은 아이의 특징이다. 욕하면 싫어하고 칭찬하면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 행동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주변에 어른인 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려면 모든 것을 떨어뜨려야 해요. 누가 떨어지면 안 된다고 하면 안 떨어질 건가요? 폭포는 소리가 들려야 해요. 여러분은 폭포신가요? 김수영의 폭포 소리는 그의 심장 소리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소리입니다.”

강연 내내 강신주는 당당한 철학자이자 솔직한 인문학자로서 자유와 사랑을 이야기했다. 또 그 모두가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어야 가능한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외부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만의 소리를 가진 폭포가 되라고 했다. 우리의 경계, 벽에 섰을 때 깨닫게 되는 것이고 벽을 뛰어넘었을 때, 허물었을 때 진정으로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가 이야기하는 벽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섰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경험해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인간은 은연 중 끊임없이 사랑과 자유를 갈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강신주의 인문학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각하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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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지승호 공저 | 시대의창
끊임없이 인문정신에 육박해 들어가는 우리 시대의 철학자, 강신주를 우리 시대의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났다. 인문정신에서 시작한 이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인문학적 계보를 찾다가 제자백가에 이르고, 다시 현대 한국 사회로 돌아와 우리 현실을 바라보다, 본연의 인문정신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밤을 지새고 난 뒤 오히려 육체와 정신이 가뿐해질 때처럼, 철학자 강신주의 촘촘하고 정교한 사유의 그물을 통과하고 나면, ‘나’와 ‘너’를 그리고 세상을 좀 더 뚜렷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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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황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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