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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안녕, 내 모든 것’은 90년대에 전하는 안부 인사”

장편소설 『안녕, 내 모든 것』 출간한 정이현 작가 서태지, 하이텔, 삼풍백화점 90년대 기억 호출하다 연애에 관한 소설 아닌, 사랑의 감정을 물은 첫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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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이현이 신작 『안녕, 내 모든 것』을 펴냈다.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장편소설로 1990년대에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세미, 지혜, 준모의 이야기다. 언뜻 성장소설 같지만, 작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물음표를 던진 최초의 작품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산다고 믿었던 정이현 작가. 『안녕, 내 모든 것』를 쓰면서 비로소 ‘나는 살기 위해 쓰는 사람’임을 느꼈다. ‘마감과 압박’이 동력인 작가가 펜을 들 수 있는 시간은 넉넉하지만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 아내, 생활인으로서 삶을 동시에 살아내야 했다. 작품만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일, 어떤 작가라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정이현에게 최근 4년은 당황스러우리만치 막막한 심정이기도 했다. 강제성이라도 가져야 쓸 수 있을 것만 같아, 덜컥 연재를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은 일찌감치 1990년대로 점찍었다. 스스로를 ‘90년대 아이’라고 부르며, 단편 「삼풍백화점」에서 이미 소비자본주의가 개인에게 준 상처를 되짚어봤지만 아직 꺼내놓을 이야기가 많았다. 정이현은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으로 자율학습을 꾸역꾸역 견뎌냈던 18살, ‘언젠가 이 시시한 순간들을 기록하게 되겠구나’ 싶었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안녕, 내 모든 것』에서 90년대의 대한민국, 18살 세미와 지혜, 준모를 호출했다.

『안녕, 내 모든 것』의 원제는 ‘내 모든 것’이었다. 정이현 작가가 가장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는 서태지와아이들 1집 앨범의 수록곡 제목이기도 하다. ‘내 모든 것’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작가는 ‘내 모든 것? 어떻게 이런 강렬한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단다. 개작을 하면서 ‘안녕’을 붙이게 됐는데, Hello와 Good Bye가 하나로 표현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90년대는 ‘안녕’이다. ‘안녕’의 의미를 전자로 읽든 후자로 읽든, 그것은 독자의 마음이다.




소설을 쓰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사는 삶

『사랑의 기초』가 지난해 5월 8일에 나왔는데, 『안녕, 내 모든 것』 연재도 때마침 같은 날 시작됐어요. 주변에서 ‘네가 에너자이저냐? 두 개를 어떻게 같이 하냐’라고 했는데, 『사랑의 기초』 집필이 끝나자마자 준비에 들어갔거든요. 지난해 3월부터 준비했고 연재를 시작한 거죠. 사실 저는 ‘압박’이 동력이에요(웃음). 압박이 없으면 일을 못해요. 지금 뭐라도 쓰지 않으면, 어쩌면 강제로 하지 않으면 쓰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으니까요. 스스로를 강제성 안에 옭아매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지난해 봄부터 올해까지, 정이현은 집과 작업실만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밤 외출이 뭐야?’라고 되물을 정도로 바빴고, 그만큼 열심히 펜을 들었다. 예전에는 ‘삶은 곧 소설’이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놀고 여행을 다녔지만, 문득 소설이 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맞닥뜨리며 기어코 책상에 앉았다. 그러다 불현듯, ‘소설을 쓰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자신이 살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생활인의 삶을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쓰기 위해 산다’는 선언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뒤늦게 알게 됐어요. 어떤 소설도 삶보다 귀하지 않다는 것, 또 내가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도요. 아이에게는 일하는 엄마라는 죄책감을 갖고, 소설에게는 모든 걸 쓰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있는 거죠. 『안녕, 내 모든 것』은 스스로 뭔가를 열심히 했다는, 그 시간에 대한 기록 같은 느낌이에요.”

2002년에 등단한 11년차 작가 정이현. 지난해 한 언론에서 데뷔 10년차 작가들의 근황을 리포트한 기사가 있었다. 48명 중 한 권 이상 단행본을 펴낸 작가는 30명, 4권 이상은 3명이었다. 그리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단 3명의 작가 중 1명이 정이현이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등단,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작별』,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 등 정이현은 단편과 장편, 산문집 모두를 넘나들었다.




1990년대 소비자본주의 가족의 몰락

“우리가 1960, 70년대를 복고라는 키워드로 소비하듯이, 90년대도 X세대라는 대중문화, 특정한 음악으로 소비하잖아요. 그런 것들은 유행으로 잊혀질 수 있다는 건데, 그게 너무 가슴 아프더라고요. 제 청춘은 삼풍백화점으로 무너졌어요. 언니들의 청춘은 아직 거기 있지만, 나의 청춘, 우리 세대는 폭삭 무너져버려서 흔적도 없이 다른 게 들어서버렸다는 것에 되게 울컥하는 미안함, 안쓰러움 같은 게 있어요. 이제 시간의 거리가 많이 떨어졌잖아요. 제 나름의 안부인사라고 할까요? 잘 지냈니? 잘 있어? 그런 담담한 인사요.”

『안녕, 내 모든 것』은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1978년생 세미, 지혜, 준모의 이야기다. 김일성이 죽은 해인 1994년부터 소설은 전개된다. 강남 반포에서 함께 중학교를 다니며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세 친구는 숨기고 싶지만 숨길 수 없는, 각자의 고민을 갖고 살아간다. 부모의 불화로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된 세미,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특별한 기억력을 가진 지혜, 틱장애인 ‘뚜렛 증후군’ 때문에 반복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준모. 이들은 어른과 아이, 모범생과 아웃사이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며 부모 세대와의 괴리를 감내한다. 세 사람에게 일탈이란, 캔맥주를 사와 마시지는 않고 컵에 따라만 놓는 것일 뿐이다. 소설은 세미, 지혜, 준모 세 명의 시점으로 교차 서술되지만 시작과 끝은 지혜의 시점으로 맺는다.

“세 친구의 이야기인 동시에 세미의 가족으로 상징되는 90년대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몰락이 함께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세미의 인칭으로 주로 서술되지만, 소설의 처음과 끝은 지혜의 시선으로 열고 닫았어요. 지혜는 기록하는 자인데, 투명한 연필로 기억하는 자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지혜가 가장 진보하는 발전하는 인물일지도 몰라요. 성장의 무언가를 치르고 나서야, 자기 안에 어떠한 기록들이 차곡차곡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된 거죠. 그 친구가 꼭 소설가나 시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 세대가 그렇지도 않고요. 현재의 이야기는 꼭 지혜의 시점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 시절을 끝까지 담아두고 있는 인물이 지혜였으니까요.”

소설의 주된 배경이 되는 세미의 가족사는 1990년대 중산층의 삶을 대변한다. 사업이 망한 세미의 아버지는 이혼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새 여자를 데리고 세미 앞에 나타나고, 유일하게 세미가 이해할 수 있는 존재였던 고모는 예상치 못한 인물과 결혼한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집안의 가세가 기울자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한남동 부촌을 떠나 세미와 단둘이 살게 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세미는 갈등하지만 방황하는 모습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부모가 속물임을 아는 세대. 그러면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 부모가 얼마나 속된 사람이고 그게 얼마나 쓸쓸한 것인지 알지만, 또 나를 먹여 살리고자 안간힘을 쓰는 부모잖아요. 온전히 사랑할 순 없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는 존재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묻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것 같아요. 연민은 있지만 부모 세대와 반목하는, 화해는 할 수 있지만 묻어야 하는 세대죠. 부모 세대의 공과 과를 똑똑히 알고 인지해야만 우리의 길을 갈 수 있잖아요. 지금 30대를 어떤 이름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386세대 이후는 그런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도 부모 세대 이야기가 더 나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어요.”

세미를 두고 이혼하는 부모, 지혜에게 가혹한 입시 공부를 강요하는 교수 부모, 준모에게 자퇴를 권유하고 유학을 보내는 부모. 작가는 소설 속 부모들에게 행동의 근거에 대한 해설을 보태지 않는다.




정이현 소설에서 유일한 ‘사랑에 관한’ 소설

할머니에게 비밀을 선물한 대가로, 우리 셋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우리만의 완벽하게 은폐된 비밀.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는 친구들과 꼭 나누고 싶었는지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비밀은 지켜졌고, 나와 지혜와 준모는 다시 모이지 않았다. 우리는 마침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인 거였다. 『안녕, 내 모든 것』 (p.228)
세미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날, 세 사람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비밀을 갖게 된다. 세미의 한 마디, ‘할머니를 조용히 보내드리고 싶어’ 때문이었다. 준모는 지혜에게 말했다. “지혜야, 너는 그냥 가.” 세미와 준모는 지혜까지 휘말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지혜는 혼자만 배제되긴 싫었다. 결국 함께했다.

“가장 애틋한 인물이 지혜에요. 지혜는 되게 저 같아요. 준모는 장애가 있고 또 세미는 복잡한 가정사가 있는데, 지혜는 단지 입시공부를 강요하는 부모가 싫고 부담스러울 뿐이잖아요. 준모나 세미는 갖고 있는 상처가 커서 오히려 10대 또래들과 세상을 다르게 보고, 자기 안의 상처를 응시할 줄을 알았지만 지혜의 세상은 좁았어요. 부모를 싫어하고 욕하지만 어쨌든 순응하고 살았으니까요. 마지막 순간까지도요. 지혜의 구덩이는 그렇게 살았던 데에 대한 대가일 수 있어요. 그리고 나서 지혜는 변했죠. 준모나 세미는 그런 일을 겪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알았지만, 지혜는 자발적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거죠.”

훗날 30대가 된 지혜는 학원 강사가 되어, 세미는 여섯 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마주한다. 세미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아챌 수 없다. 작가는 그녀의 30대가 암흑으로 남겨지길 바랐다. 세미의 할머니 사건 후, 오히려 정상적으로 세상에 편입된 인물이 세미이기 때문이다. 지혜가 비정규직 학원강사가 된 건, 부모 세대로부터 독립한 후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었던 직업이었던 까닭이다.

“세미와 지혜가 30대가 되어 만났을 때, 지혜가 세미한테 ‘너는 어떠니?’라고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혜한테 처음으로 주도권을 주고 싶었어요. 지혜는 외부의 무언가로 일어난 일을 내부의 동력으로 바꿔서 혼자 조용히 견디는 삶을 택한 거잖아요. 나이가 든다는 건, 닳아간다는 걸 깨닫는 일이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사는 사람이 성공한 거 아닐까요. 단단한 사람이 된 거죠. 세미보다요.”

준모의 30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린란드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한 동양인의 사진을 보고 준모와 눈매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준모는 열려있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에선가 평범하게 살 수도 찌질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언젠가 뚜렛 증후군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 미안해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고 병이 있을 뿐이라고 설명을 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훈련이 되어 있었던 거죠. 사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욕이 세상에 대한 욕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의 고통을 내가 가늠할 수는 없지 않나, 라는 생각. 대상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에 대한 진심이 빚어낸 인물이에요. 제가 특히 애정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준모는 세미를 좋아했지만 세미는 준모의 과외선생인 성우를 마음에 담았다. 성우는 고등학생 세미를 그저 귀여워하는 평범한 대학생. 준모는 세미가 성우에게 삐삐를 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지만, 세미와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 유일한 애인 아닌, 남자친구가 된다.

“그동안 쓴 소설은 연애에 대한, 연애에 관한 소설이었어요. 작은 따옴표 속의 연애였죠. 세상이 말하는 연애에 대한 소설. ‘과연 사랑이 그러니?’ 라고 묻는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을 읽는 것, 누군가에 대한 진심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준모 부분을 연재하면서 문득, 누구를 막 좋아했던 감정을 오랜만에 되살리는 느낌을 가졌어요. 내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싶었죠. 나의 유일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 아닐까, 그게 버거우면서도 좋았어요. 준모는 유일하게 사랑이라는 동력으로 움직이는, 계산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세미는 준모가 아닌, 과외선생 성우를 보고 ‘양파냄새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아무렇지 않게 껍질을 까다가 별안간 들이닥친 매캐한 기운에 컥, 목울대가 꺾이는, 그런 찰나.” 작가 정이현은 말한다. “양파를 썰다 보면 고통스러운 냄새와 함께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내가 울고 싶었구나, 난 항상 울고 싶은 준비가 되어 있구나’ 그런데 양파를 그렇게 자주 썰면서도 썰 때마다 그 느낌을 잊어버려요.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잊어버리고 있다가 ‘아 이거였구나’ 싶은. 참으면 된다는 것도 아는 그런 느낌이요.” 소설을 쓰는 것도 다르지 않다. 힘들 걸 알면서도 자꾸만 펜을 들게 되는 작가의 모습. 고통스럽지만 그 이상한 카타르시스 때문에 정이현 작가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을 궁리를 한다.


정이현 작가 향긋한 북살롱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 2013년 8월 5일 (월)
시간 : 오후 7시 30분
장소 : 홍대 앞 KT&G 상상마당 카페
초대인원 : 30명 (1인 동반가능)
신청 : //86chu.com/Culture/SalonEvent/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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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저 | 창비
1994년,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열일곱살 세 친구가 있다.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채 부자인 조부모의 집에 사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고 있는 세미, 통제할 수 없이 반복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뚜렛 증후군에 시달리는 준모,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지혜. 셋은 서로를 감싸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지켜왔지만, 또한 서로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상처와 비밀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들이 보내는 힘겨운 십대의 마지막 시절,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누는 커다란 비밀이, 그들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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