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와 유머, 천연덕스러운 입담으로 사랑 받아온 이기호 작가이기에 그의 빛나는 재담을 기대하며 책을 펼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서는 랩을 닮은 문장도, 성경에서 따온 문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작가의 소설은 그사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재미있게 잘 읽히는 장점은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의 경쾌함에 비하면 꾹꾹 눌러 쓴 듯 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 작가 이기호와 그의 새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를 만나보자.
행사 시간이 가까워오자, 이기호 작가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곧 이기호 작가와 그의 친한 후배인 박성수 시인이 등장했다. 박성수 시인은 이날 사회를 맡았다. 그는 이기호 작가에 대해 “평소에 보면 사람 좋은 형인데, 소설을 읽다 보면 좀 이상한 형 같다”고 평하며 유쾌하게 말문을 열었다. 독자들이 보통 작가를 만나면 “작가님, 멋있어요.”라고 말하는데 이기호 작가는 독자들이 “작가님, 힘내세요!”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고 말하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박성수 시인은 “제 머릿속의 이기호 작가는 그런 독자들에게 죄송합니다. 열심히 쓸게요, 라고 말할 것 같은 작가입니다.”라는 말로 간단한 평을 마쳤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근황이 궁금하다.
독자를 만나는 자리에 몇 차례 다녀왔다. 이 자리가 두 번째다. 또 광주에서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학교에도 나간다. 얼마 전, 여름호 단편을 하나 마감해서 허탈하지만 후련한 느낌으로 지내고 있다.
7~8년 전, “인류 평화를 위해 장가갑니다.” 라고 했는데 벌서 아이가 셋이나 된다. 육아에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나?
첫째는 제가, 둘째는 반반, 지금 셋째는 아내가 거의 돌보고 있다. 요즘엔 거의 시간이 없어서 육아에 별로 도움이 못 된다.
이번 책에 보면 아내 되는 분께서 작가의 아내는 ‘유니세프’ 같은 품성을 지녀야 한다는 걸 몸소 실천하신다고 쓰셨는데, 흥미로웠다. 거기 보면 ‘다신 말 없이 집을 나가지 않겠다’는 부분이 있다. 언제, 왜 집을 나가셨나?
나는 문학 전공하는 여성들에게 절대 글 쓰는 사람하고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이 평소엔 온순하다가도 마감 근처에 가면 이상한 짓을 많이 한다. 이상하게 글이 안 써지면 새벽 1-2시에도 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가 덜어냈다가 한다. 아마 『밀수록 가까워지는』을 쓸 때였던 것 같다. 하도 풀리지 않아서 말없이 집을 무작정 나가 달렸는데 도착한 게 하동이었다. 거기서 일주일 있었다. 이틀 지나서야 부인에게 연락을 했는데 많이 놀랐더라. 거기서 탈고를 하고 왔다. 다시는 말 없이 집 나가지 않겠다는 건 그 이야기다.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쓸 때는 어려운 게 소설 같다. 이번 작품집에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나? 글 쓸 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탄원의 문장」을 보면 딸이 죽는 이야기가 있다. 열심히 마감을 하고 있는데 그때가 하필 아내가 분만을 하는 시기였다. 딸이 태어났는데, 작품에서 딸이 죽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다. 그러고 보면 작가가 참 독한 것 같다. 소설을 안 쓸 때는 참 좋은 직업인데 어쩔 땐 사람이 너무 냉정해진다. 나는 집에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 사실 쓸 수가 없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아이들이 자면 써야지, 하다 보면 내가 먼저 자버린다. 지금은 고시원을 잡고 글을 쓰는데 낮에 일하고 집에 왔다 밤이 되면 다시 출근해서 새벽 3-4시에 돌아온다. 주변에서는 대리 운전을 하는 줄 안다. 한 1년 정도 광주 시장 근처에 골방에서 쓴 적도 있다. 집에 있으면 의지가 박약해서 안 된다. 구속력 있는 환경이 필요해서 노트북 하나에는 한글만 깔아 두었다. 프로그램을 다 깔아두면 자꾸 사람들이 네이트온으로 말 걸고 그러면 그걸 또 소설에 쓰고 해서 아예 차단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하동에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전화도 안 통하고 산 속에 처박혀 있으니까 글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단편은 속도감도 중요하지만 특히 집중력이 필요하다. 익숙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낯설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작가도 밀도 있게 이야기에 들어가야 한다. 아주 작은 공간에 이야기를 몰아넣는 것처럼 작가도 같은 상황에서 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삼촌의 프라이드가 완전히 멈춰 선 것은 재작년 6월 말의 일이었다. 장마가 좀 길어져서 걱정을 했더니, 역시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배터리가 방전된 줄 알고 점프 케이블로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계속 쇳소리만 낼 뿐,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레커 차를 불러 삼전자동차공업사까지 걸어갈까도 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미 너무 오랜 길을 달려온 프라이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계속 프라이드를 담벼락 옆에 세워두기만 했다. 집에 들어올 때나 나갈 때, 퉁퉁, 지붕을 두 번씩 두들겨주면서.
내가 다시 그 프라이드를 몬 것은,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몬 것은 그 해 10월 초순의 일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다 말고, 끙끙 아버지의 소나타 뒤에 프라이드를 빼냈다. 그리고 거기, 조수석에 할머니를 태운 채 보닛을 두 손으로 밀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냥 꼭 한번, 프라이드가 사라지기 전에, 그래 보고 싶었다. 나는 차를 밀면서 할머니한테 물었다.
-할머니, 아직도 손주보다 자동차가 더 좋아?
할머니는 내 질문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조수석 등받이에 기대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몇 번 마른기침을 하기도 했다. 그러곤 한참 후에 이런 말을 했다.
-야, 야, 이러니까 꼭 옛날 생각난다. 옛날에 네 삼촌도 나랑 논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꼭 리어카를 이렇게 밀었거든. 끌지 않고, 꼭 뒤에서 밀었어. 이 할미 얼굴 계속 바라보면서 말이야………
나는 허리를 더 아래로 깊숙이 숙인 채, 프라이드를 밀었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삼촌은 이렇게 직접 민 것 또한 노트에 적어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그 거리는 과연 어떻게 잴 수 있는 것일까.
내 나름대로는 어떻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말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아주 우직한 소 같은 인물이다. 1970-80년대 소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삼촌은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윤리적이고 더 성실한 인물이다. 그러니 어디서든 잘 살겠지, 하고 생각한다.
유쾌한 와중에도 이기호 작가의 소설에는 항상 슬픔이 있었다. 이번 작품집은 특히 그렇다. 작품들 중에서 「탄원의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쓰인 작품 같다. 그래서 질문을 하자면, 이기호 작가에게 정규직이란?
그렇다. 나는 이제 정규직이다. 5년 전에 막 첫아이가 태어났는데 겁이 좀 났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사명감이 들고 그러다 보니 돈벌이를 위해 이상한 글도 많이 썼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일이 있다. 패션 잡지에서 ‘쇼핑예찬’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했다. 사실 나는 쇼핑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쇼핑이 행복하다는 말을 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이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운이 좋게 일자리게 생겼고 광주로 내려갔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생활은 안정되었지만, 그동안 내가 소설 속에 썼던 인물들을 쓰는 게 어려워졌다. 대부분 인물이 비정규직에 루저인데 이제 내가 정규직이라 그런 인물을 다루는 게 힘들다. 배우가 메소드 기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작가도 능수능란할 수 있을 텐데, 자꾸 위선적이라거나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지금 학교를 그만둬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꾸준히 이야기한다. 책에도 썼지만 정말 유니세프 같은 태도다.
물론, 직장에 다니면서 루저들의 삶에 대해 쓸 수도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작품집처럼 조금 기이한 세계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작가의 진정성과 관련된 것 같다. 요즘 글을 쓰며 왜 내 선배 작가들이 그동안 썼던 것에서 계속 벗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된 독자들에게 배신감을 주면서까지 계속해서 다른 작업을 찾아가는 이유를 말이다. 어쩌면 그게 작가가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계속 다른 쪽으로 움직이려는 시간이었다. 환경 변화에 책임지고 그에 맞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다.
「탄원의 문장」을 구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또 이 상황이 굉장히 문제적이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실 나는 작가라서 내 작품을 분석하고 이러는 건 힘들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제자들과 술을 엄청 먹고 쓴 건 확실하다. 나는 아직 젊은 선생이라 학생들과 친한 편이다. 그 무렵 친한 제자가 자살을 했다. 연락을 받고 황급하게 응급실에 갔는데 내 품에서 그 친구가 죽었다. 나는 아직도 이걸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날, 옛날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옮기다 버튼을 눌렀더니 통화가 녹음된 것이 나오더라. 그 친구가 죽기 사일 전이었다. 내가 취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 아이가 들어주고 있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이 글은 처음에는 애도 같은 거였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그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쓰고 애도했으니 이제 됐다, 할 문제도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회적인 것으로 변했다. 여러 상황에 대해 조금씩 바뀌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거다. 그게 작가로는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힘든 일이다. 가장 마음 아프게 쓴 소설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잘 지내는 것 같다. 좋은 점이 있다면?
이 시대에 문학을 하려고 온 학생들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 그런 친구들은 다 문제적이다. 별로 요즘 애들 같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자극을 많이 받는다. 좋은 점은 소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써 그 친구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게 엄청난 경계가 된다는 거다. 잘 써야지, 하고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소설을 못 쓰게 되면 그때는 그만둘 생각이다. 사실 지금은 학생, 선생님보다는 같이 쓰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막연하게나마 소설을 공부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나름대로 심각하게 궁리했다. 입대하기 전, 남들 다하는 진학도, 취직도 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골방에 엎드려 벽시계와 지루한 눈싸움만 반복하며 지냈던 적이 있었다. 문 밖 출입도 거의 하지 않았고, 아주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잤으며, 이틀에 한 번꼴로 세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해가 떠 있을 적에는 주로 쓸데없는 공상들을 했고, 한밤중이나 새벽 무렵에는 고등학교 때 쓰다 남은 공책 뒤쪽에 무언가를 깨알같이 적었다. 무엇을 쓰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니었고, 또 그것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진 않지만, 나름대로 진지했고, 그 일에 꽤 몰입해 있었던 것 같다. 그것밖에 달리 할 일도 없었으니까……
한번은 새벽 무렵 화장실을 다녀오던 아버지가 졸린 눈으로 내 방문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온 것도 모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게 뭐냐?
그제야 나는 화들짝 놀라 쓰고 있던 공책을 가슴 아래로 감추었다. 가끔 밥상에 마주 앉을 때마다, 내 속에서 어떻게 저런 게 나왔는지, 하는 자조와 탄식을 내 숟갈 위로 수북이 얹어주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거의 반강제로 내 가슴 밑에 있던 공책을 뺏어 들었다. 그러곤 마치 남파 공작원의 난수표를 해독하는 공안검사처럼, 이리저리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냐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기냐?
아버지는 한 장 한 장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그냥 소설이에요……
내 입에서 어떻게 ‘소설’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게 되었는지, 그건 지금도 알 수 없는 일들 중 하나이다. 단지 당장의 부끄러움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내 안의 어떤 다른 이의 목소리였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분명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
아버지는 공책에서 시선을 거둬 잠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들고 있던 공책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에게 건네주었다.
-하여간 게으른 인간들이 하는 짓은 하나씩 다 해보는구나.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소설 좋아하면 폐병 걸린다더라.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내 방에서 나갔다. 방문 밖에선 예의 그 ‘내 속에서 어떻게 저런 게 나왔는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경우, 아버님이 공무원이었다. 그만큼 집안 분위기도 안정적인 편이었다. 처음 문창과에 갔을 때, 깜짝 놀란 것이 아이들의 살아온 이야기가 너무 영화 같았기 때문이다. 학교에 잘 못 갔구나 생각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글을 쓰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글은 그 사람이 살아온 것과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많이 됐다. 근데 작가가 되고 보니 소설은 재능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노력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물리적 시간에 의해 어느 정도 소설의 질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기호 작가 글을 보면 되게 재미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글을 쓰는 소설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사실 그렇게 성실하지 않다. 작년,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리던 시절에 아내에게 “소설을 쓰고 오마.”하고 비장하게 말하고는 PC방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PC방에 가서 아저씨들과 친해져서 같이 술도 먹고 놀았다. 그렇게 대단히 성실한 작가는 못 된다.
이기호 작가에게 독자가 묻다
글을 쓸 때, 직접 겪은 일을 쓰는 편인가?
아는 부분에서 영감을 찾는 편이다. 물론 쓰고 나면 처음 내 경험과는 굉장히 달라져 있다. 우리 동네 미용실 아주머니도, 부동산 업자들도 늘 자신의 일을 생각하며 모든 감각을 그 쪽에 맞추고 산다. 소설가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을 쓰는 것은 자기 감각을 그곳에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별다른 이야기가 아니어도 저걸 어떻게 소설로 풀까, 생각한다.
산문집 『독고다이』를 보면 베스트셀러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데, 만약 이 소설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집계하는 방식이나 시스템의 문제다. 사실 한국 작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유경쟁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나는 피츠 제럴드와 경쟁한다. 문단에는 국경도, 세월도 없다. 다만, 취향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한가지 취향으로 세상이 가득 차는 것은 문제라 생각한다.
작품 속에 주변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가?
내 소설 속 인물들을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이 모욕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친한 친구를 등장시킨 적이 있었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보통 인물들을 변형하고 재구성한다. 소설을 쓰기 전에 전지를 펼쳐놓고 캐릭터 구상을 먼저 한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를 보면 빈칸이 있다. 어떤 의미인가?
대외적인 이유는 독자들과의 소통이다. 다른 이유는 마감에 쫓겨서이다. 소설은 예술이면서 예술이 아닌 장르인 것 같다. 재능이 아닌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면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글을 썼지만 점점 글이 좋아지고, 등단을 하는 걸 보게 된다. 사실 나 스스로도 열등감이 많았다. 재능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끝까지 소설을 붙잡고 있어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빈칸의 의미는 “써봅시다.”인지도 모른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습작기 때, 작가들을 만나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오늘 이 작가를 만나면 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며 찾아가지만 결국은 실망해서 돌아온 기억이 더 많다. 그 기억 때문에 이렇게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가 어렵고 조심스럽다. 작가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소중한 일이라 느끼고, 꿋꿋하게 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리보다는 작품으로 만나는 게 좋은 것 같다. 현재 장편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출간할 생각이다. 꾸준히 좋은 글로 찾아 뵙겠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이기호 저 | 문학과지성사
우리 시대 젊은 재담꾼 이기호가 세번째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왔다. 신작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문학과지성사, 2013)에는 제1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을 비롯한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을 ‘이야기’로 보수해가면서 삶과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규명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1972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추계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공모에 단편 「버니」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짧은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