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봄비가 창가를 연주하고, 재즈 피아노의 선율이 흐르는 밤에 『재즈싱잉의 비밀』이 흘러나왔다. 재즈여신 말로와 함께다. 『재즈싱잉의 비밀』 출간 기념 북 콘서트. 말로는 세계에 한국 재즈를 전파하기보다 마을 이웃에게 재즈를 전파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었다.
『재즈싱잉의 비밀』 출간 기념 북 콘서트. 최근 재즈를 도구로 마을에 힘을 쏟고 있다는 말로는 세계에 한국 재즈를 전파하기보다 마을 이웃에게 재즈를 전파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 그런 말로의 친구이자 소설가 노희준이 사회를 본다. 친구 말로를 소개한다.
“친구로서 정의하자면 짜증나는 친구다. 노래 잘하지, 문장도 나 같은 글쟁이를 화나게 만든다. 책 출간 일주일 전에 전화해선 큰일 났다고 하는 거다. 너무 글을 못 쓴 거 같다고. 전혀 아니었다. 책이 나오고 말로가 한동안 우울해했다. 그건 전문 글쟁이들이나 하는 짓이거든(웃음). 재즈싱어가 전문 글쟁이까지 넘보고 너무 한다. 어쨌든 얘기를 나눠보겠다.”
근황은 어떤가? 사는 동네에 합창단도 만들었다던데…
말로: 아픈 데 없고 아침 저녁으로 행복하다. 아이 학교에 참관수업을 갔었는데, 모니터를 달아놓고 노래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서 1~2학년은 전부 음악 수업을 해주고 3학년부터는 오디션을 봐서 합창단을 꾸리고 싶다고 얘기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흔쾌히 해보라고 하더라. 일주일에 3회씩 점심시간마다 합창단 때문에 학교에 가고 있다. 생고생을 사서하고 있다! (웃음) 합창단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인데, 눈물이 날 정도로 화음이 아름답다. 편곡을 잘했다는 얘기지(웃음). 아이들이 참 맑아서, 최근에는 그것을 보람으로 삼고 있다. 또 근처에 마을 카페가 있는데, 주부 재즈교실을 열고 있다. 1월부터 한 1년 코스인데, 주부들 만족도가 대단하다. 재즈가 듣기는 좋은데, 입이 안 떨어졌다고 했는데, 요즘 한 달에 한곡씩 배우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수업을 하고 왔는데, 입이 떨어지고 따라할 수 있게 됐다고 하셔서, 내겐 그것도 사는 목적 중의 하나다.
“재즈의 자유란 바로 이러한 ‘지식과 즐김의 경계 없음’에서부터 출발한다.”(p.7)
이번에 책을 낸 소감, 저자가 된 기분은 어떤가?
말로: 이젠 뭘 썼는지 기억이 안 나서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읽는 시간을 통해 기억하게 되면 슬프겠지만. 처음 책이 나온다고 생각했을 때 두 근 반 세 근 반 했었다. 그런데 반응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신간 베스트셀러에도 안 올라가 있어서, 이젠 내려놨다. 이름 없는 저자가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책을 낸 기분은 묘하다.
책은 어떻게 해서 쓰게 됐나?
말로: 둘째 언니가 글도 잘 쓰고 노래도 잘한다. 3년 전 어느 날, 언니와 함께 서점에 가서 교본을 보게 됐다. 록의 발성 교본법도 있고, 기타 치는 법은 있는데, 재즈 노래에 대해선 교본이나 소개서가 없더라. 그때 언니가 네가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지나가듯 말을 했다. 나도 한번 써볼까 심심하게 생각했는데, 그날 저녁 목차를 정해봤다. 그게 3년 정도 걸려서 책이 나오게 됐다. 내가 둘째 언니의 아바타였던 거지. 처음엔 교본으로 썼는데, 노희준 작가가 처음 쓴 걸 보고 호통을 치더라. 노 작가가 소설 쓸 때의 작법을 알려줘서 배우고, 고쳐서 다시 썼다. 노 작가의 가르침도 도움이 됐다.
나희경, 말로의 친구
이날의 게스트 보사노바 뮤지션 나희경이 등장했다. 음악을 위해 혈혈단신, 브라질로 향했다. 브라질의 음악 거장들을 만나 음악적 교류를 했다. 브라질 음악을 한국에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싱어송 라이터다. 보사노바는 물론 여러 장르와 융합을 잘 하는 뮤지션이다. 말로가 브라질에 가서 리듬 워크숍을 받았을 때, 통역을 맡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단다. 말로에 의하면, 음악적 태도도 멋있고, 인간적으로도 존경한단다.
이어 피아니스트 이명건과 함께 말로와 나희경이 듀엣으로 봄밤을 노래했다. 봄밤도 따라서 리듬을 탄다. 작은 빗소리까지 끼어든다. 멋들어진 화음이다. 온몸과 오감으로 봄밤과 봄비, 그리고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두 싱어의 즉흥 향연에 그만 마음을 뺏긴다. 아니, 마음이 따로 논다. 아, 예술은 이런 것이구나.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름다운 순간. 피로 따윈 안녕. 디 두둘라 뒤랏~♪ 봄날의 선물이다. 음악은 그런 것이다. 나희경이 가장 많이 부르는 곡이자 좋아하는 곡이라는 재즈 스탠다드 ‘Chega De saudade’가 이어진다. 원곡의 포르투갈어로 부르고 같은 노래의 영어 버전인 ‘노 모어 블루스(No more blues)’로 잇는다. 이런 풍경. 좋아하는 공간에 기타가 있고, 창밖으로 도시의 정경이 보인다. 내가 사랑하는 노래가 있고, 옆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이 무엇이냐고? 사랑! 노 작가, 나희경에게 묻는다.
책을 낼 생각은 없나?
나희경:낼 수 있다면, 여행기를 적고 싶지 않을까. 매일 글을 적고 있고, 좋아한다. 오가면서 느낀 것 적어놨고, 7월에 가면 또 여행하고 올 텐데, 발표를 하는 날이 온다면, 같은 콘셉트로 북콘서트를 열 것이다. 사회와 게스트를 지금 이 자리에서 섭외하는 셈이다. (웃음)
오늘 힘들 거다. 남쪽에서 먹거리 순례를 하다가 오늘 올라오셨다.
나희경: 남쪽에서 공연을 끝내고 남아서 이것저것 먹거리를 잔뜩 먹고 왔다. 오면서 걱정이 되더라. 말로와 노 작가는 스키니 몸매인데, 옆에서 풍요로운 사람으로 비칠까봐(웃음).
두 분 절친한 사이로 알고 있다. 말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희경: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 생각을 하면 말로가 떠오른다. 음악뿐 아니라 삶, 삶에 대한 태도 등에서 여러 면에서 존경하는 사람이고 친구다. 여러 면에서 자극을 많이 받는다. 나는 개그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말로와 노 작가 두 분이 농담을 알아 듣는 방법을 알려줘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말로와 함께 있으면 문제의 핵심을 짚으면서 대화를 유쾌하게 풀어가고 이끌어 나간다. 물론 음악적으로도 되게 많이 배운다.
책에 대해 추천해준다면?
나희경: 이 책은 재즈뿐 아니라 노래를 하는 모두가 자유롭게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걸어 나갈 때 꼭 봐야할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청중들과 나눈 리듬과 선율
재즈가 팝이나 록과 다른 점 하나를 꼽아준다면?
말로: 책에 나온다. 본문에 싣지 않은, 빠질 수밖에 없었던 짜투리 이야기인데, ‘재즈보컬 감별법’이라는 항목이 있다. 세 가지를 들었는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재즈 스피릿이다. 그 스피릿이 왜 재즈를 하느냐에 대한 답이다. 팝도 록도 괜찮은데, 굳이 재즈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재즈 스피릿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끌려 다니지 않겠다’이다. 내 마음 가는 대로 무대에서 노래하겠다는 거지. 진짜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으면 재즈보컬에 한 발짝 가 있는 것이다. 규정을 지키는 상태면 팝이나 록이다. 그렇다고 록이나 팝이 자기를 풀어헤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제한된 요소가 있다. 재즈가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훨씬 많다는 의미다.
“대체로 팝음악은 인트로와 간주 부분이 정확하게 지켜진 상태에서 클라이맥스를 포함해 전체 흐름이 엄격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레코딩 할 가수에 맞게 미리 조정해놓기 때문이다. 물론 가수와 작곡자가 사전에 여러 번 연습을 거쳐 적당한 키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재즈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를 자유가 있다.”(p.22)
어떤 계기로 재즈 싱어가 됐나?
말로: 대학 때 통기타 가수를 했다. 학교 앞에 통기타 바가 많았다. 어느 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을 알아들을 수 없고 박자를 셀 수가 없더라. 충격이었다. 따라할 수도 없고, 엄청 좌절을 했다. 분통이 터지더라. 화가 나고. 이해 못하는 것이 존재하다니! 화가 나서 그걸 해결해보고자 애를 썼다. 그러다 그것이 재즈라는 장르임을 알았다. 악보를 구했는데, 나오는 음악은 악보와 다르더라. 이태원의 ‘올 댓 재즈’에 가서 뮤지션에게 물었다. 배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한국에선 안 된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사정했다. 무지막지한 학비를 내고 미국에 재즈유학을 갔다. 물론 지금은 유학 갈 필요는 없다. 내가 한국에 있고, 이 책이 있으니까. (웃음) 나도 그런 게 있었으면 안 갔을 거다. 미국은 학비가 너무 비싸다. 내가 궁금해 하고, 나를 못살게 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재즈싱어가 됐다.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재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말로: 한국의 재즈뮤지션은 연주해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 작가도 그럴 텐데. 재능과 돈 버는 것은 다른 얘기다. 뮤지션 특히 재즈는 얼마나 연습하느냐면, 피아니스트는 12시간 이상 연습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재즈가 너무 안 돼서 눈썹을 밀어버렸던 분도 있다. 밖에 안 나가려고 그런 거지. 3개월 동안 그렇게 연습했다더라. 그게 재능이지 않을까.
“많은 분들이 예술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들 하시는 모양인데 그 부분이 저는 안타깝습니다. 타고난 기량의 문제라기보다는, 잘 되지 않는데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재능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진짜 재능은 아무도 못 말리는 열정이랄까요.”(p.198)
그런데 보컬이 지닌 성대라는 악기는 몸의 일부라 근육이 괴로워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만큼만 써야 한다. 풀 사운드로 소리를 내진 않는다. 성대는 한계가 있어서 오래 쓰면 안 된다. 노래를 할 때, 목소리가 좋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좋은 관객이 있으면 좋은 목소리가 나온다. 어떤 종류의 음을 낼 수 있고, 어떤 리듬을 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발성은 20분 정도 연습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테크닉 연습이다. 4시간 정도 살살 불러주면서 나머지 4~5시간은 음악을 듣는다. 나는 그렇게 하루 8시간 정도 연습하면서, 젊을 때 바싹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테크닉과 함께 생각이나 철학 등을 갖춰 좀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무대에서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재즈는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내뱉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훌륭한 연사는 자신의 인생을 얘기할 때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 살아온 세월이 허접한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도 쓸 데 없는 얘길 한다. 믿는바 깨달은 바가 함께일수록 무대 위에서 자기가 견고해지고,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온다.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 어쨌든 테크닉에 머무르면 안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재즈싱잉은 일반적인 노래와 결별한다. 시작부터 다른 것이다. 나는 ‘그’ 가수가 되기 싫다. 좋고 싫고를 떠나, 무엇보다도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나’다. 내가 내는 고음과 저음, 강약의 부분은 그 누구와도 같지 않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음색, 풍부한 성량, 화려한 테크닉이 아니다.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낸 멜로디와 호흡이다.”(pp.6~7)
안개를 내뿜는듯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자신의 악기에 경쟁력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있다면?
말로: <거장의 악기도 때로는 초라하다>는 챕터가 있다. 우리에겐 성대라는 악기가 있다. 그런데도 초라하다는 건, ‘내 목소리가 왜 이래’하고 부정하는 거지. 에디 고메즈(Eddie Gomez)라는 베이시스트가 어느 날 연주를 해야 하는데 악기를 안 가져온 거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이 쓰는 연습용 베이스로 연주를 했다. 그 악기 상태가 안 좋았는데, 에디 고메즈가 연주를 끝내주게 했다. 목소리라는 악기 연습은 하루 20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이 목소리를 경쟁력 있는 목소리로 만들려고 억지로 애쓰지 않는다. 적재적소에 쓰면 된다. 내 목소리를 파악하고 그것으로 나를 표현하는 상태가 된 거지. 누구나 목소리는 타고 난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나의 옷차림이 아니다. 듣는 이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한 눈빛이다.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결코 올라갈 것 같지 않던 고음의 샤우트가 아니다. 그 고음이 토해내는 감정의 결이 갖는 의미들이다.”(p.7)
나를 안다는 것, 음악에 내 마음과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것, 재즈가 말로가 봄밤을 채우는 하루의 선물이다. 재즈선율로 열었던 봄밤은 재즈선율로 마무리한다. 말로의 재즈싱잉이 닫는 봄밤. 레이 찰스의 곡이 말로의 선율로 흘러나올 때, 내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봄비의 존재였다. 스틸 러브 유~♪ 글도 재즈처럼 즉흥적으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즈 돋는, 자유가 함께 돋는 밤. 말로의 재즈를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말. 봄이 돋는다. 맞다, 이것이 재즈다! 이것이 말로다!! ‘Come Rain or Come Shine’으로 휘감고 싶어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음역으로 부르는 것. 그럼으로써 원하는 바를 유효한 형태로 드러내는 것. 이것이 재즈보컬로의 첫 번째 단계다. 타고난 목소리는 욕망과 배치될 수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보이기 시작한다. 욕망은 일단 접어두자. 그 곡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의 음역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키(key)를 아는 것에서부터 재즈싱잉은 시작된다.”(p.21)
재즈싱잉의 비밀말로 저 | 자음과모음
객석을 압도하는 화려한 스캣, 파워풀한 가창력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보이스……. 국내 최고의 재즈보컬리스트로 인정받는 '말로'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말로는 재즈와 한국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며 한국적 재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매주 클럽에서의 공연과 주기적으로 이어지는 대형 무대에서의 공연을 통해 재즈보컬이 가야 하는 길을 정석으로 밟으며 국내의 재즈 시장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그녀의 첫 책『재즈싱잉의 비밀』다름 아닌 ‘재즈보컬’, ‘재즈싱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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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