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아 가끔 버겁지만…” - 정인 인터뷰
“리쌍은 나의 롤 모델” “음악 하는 이유? 작품 만들 때의 희열 때문에”
인터뷰 중 스스로를 두고 자주 ‘생각이 없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작정의 틀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치환돼 들렸다. 그는 억지스런 규정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말끔한 말들로 자신을 꾸며내는 일에도 서툴렀다. 아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좋아하는 음악을 솔직하게 즐길 줄 아는 이에게 인위적인 다듬질은 불필요한 노고에 불과해 보였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는 듯 인터뷰 내내 호탕하게(?) 큰 소리로 웃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리쌍’이라는 힌트가 필요했다. ‘정인’이라는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Rush」,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를 노래한 여성 보컬이라고 하면 금세 고개를 끄덕이니, 이름보다 목소리를 먼저 알린 몇 안 되는 가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이다. 최근 < 나는 가수다 >와 엠넷의 < 볼륨 텐 > 등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그간 가려져 있던 정인의 존재감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데뷔 10년 만의 일이다.
인터뷰 중 스스로를 두고 자주 ‘생각이 없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작정의 틀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치환돼 들렸다. 그는 억지스런 규정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말끔한 말들로 자신을 꾸며내는 일에도 서툴렀다. 아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좋아하는 음악을 솔직하게 즐길 줄 아는 이에게 인위적인 다듬질은 불필요한 노고에 불과해 보였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쓰지 않는 듯 인터뷰 내내 호탕하게(?) 큰 소리로 웃었다.
2002년 「Rush」로 데뷔한 이후 오랜 피쳐링 활동으로 ‘객원 보컬’의 이미지가 짙은데, 2010년 이후 발매된 두 장의 개인 앨범도 모두 미니 앨범이다. 수록곡이 10곡 이상은 되는 풀 앨범은 언제 가능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자연스러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앨범도 미니 앨범으로 준비 중인데 나가수를 하게 되면서 활동을 병행할 수 없어 미뤄진 상태예요. (웃으며) 떨어지면 바로 앨범 준비를 시작하게 될 거 같아요. ( “떨어지길 기다려야 하나요?” 했더니 역시 웃으며 “1등을 해야죠.”라고 했다)
첫 앨범명이 < 정인 From Andromeda >인데, 왜 안드로메다인가.
아 그게, 한창 앨범 제목을 고민할 때 김C 오빠를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오빠가 3초도 안 돼서 ‘안드로메다’를 말해 준 거예요. 4차원이라는 뜻은 아니고, 좀 과장하자면 ‘네 목소리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목소리다’라는 식으로.(웃음) 사실 다들 앨범 명을 반대했었어요. ‘안드로메다’라는 게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잖아요. 그치만 제가 재미있는 걸 좋아해서 길씨랑 밀어붙였어요.
실제로 안드로메다처럼(?) 예측불허에 분방한 느낌인데 이런 이미지가 도움이 되는지.
엉뚱하다는 소리는 가끔씩 듣지만, 제가 그렇다고 심하게 그런 건 아닌데 (웃음) 그렇죠. 도움 돼요. 그렇다고 해서 이미지를 억지로 만들거나 하지는 않아요. 억지로 되는 건 아니에요.
그 전에는 피쳐링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첫 앨범에서 정인의 정체성을 알린 곡이 있다면.
「미워요」 인데요. 원래 제가 해 왔던 스타일의 곡은 아니에요. 발라드를 처음 해 봤으니까요. 터닝 포인트죠. 제 보컬이 호불호가 심한 편이라 힘을 빼고 대중에게 알리고자 그 곡을 택했어요. 대중친화적으로 다가가고 싶었거든요. 길씨랑 같이 이적씨에게 곡 부탁을 했는데, 제가 평소 이적씨 노래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미워요」라는 곡은 순수하게 발라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한번 들어 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하기로 했죠.
준비 중인 미니 앨범에도 발라드곡이 있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직은. 상황에 따라 달라져서요. 준비하다가 바뀌기도 하거든요. 이러다 정규를 내게 될지도 모르고요. 지금까지 준비과정에서 아직 발라드는 없었어요.
가장 최근 앨범인 < Melody Remedy >의 마지막 곡 「연말특수」는 첫 자작곡이다. 자작곡에 대한 욕심이 있나.
원래는 없었어요. 저는 ‘오로지 싱어’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기회가 계속 생겼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해 보게 됐는데, 만족하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불만족! (웃음) 창피하기는 하지만 창피해하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안 그러려고 하고요. 곡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아직은 초등학생 같은 느낌이랄까. 현재로는 새 앨범에 실릴 곡이 개코씨가 만든 1곡과 제가 만든 4곡으로 계획돼 있어요. 전부다 대중적이지는 않고요. (웃음)
왼쪽 귀가 잘 안 들린다고 들었는데…
네. 왼쪽은 전혀 안 들려요.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대요. 음. 스트레오감이 없어요. 위치감도요. 지장이 있지만, 그래도 들을 수 없는 건 아니어서 노래하는 데 큰 무리는 없어요. 모니터링이 완벽하지 않다는 얘기는 들어요. 무대 위에서 가끔 문제가 될 때도 있고요. 이렇게 버거운 경우는 더러 있는데.. (무대에서의 버거움이) 저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발라드 스타일의 곡에서 정인씨의 보컬은 중음영역에서 허스키로 퍼지는 음색인데, 자연스러운 건가 아니면 작위적인 건가.
기준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다른데, 작위적인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이게 100% 원래 제 목소리라고 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게 음악뿐이었는데 그 시절 메리제이 블라이즈나 아레사 플랭클린, 제임스 브라운 같은 가수들 노래를 많이 들었고, 따라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제 목소리가 이런 줄도 몰랐어요. 리쌍과 작업 중에 제 목소리를 알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만든 건 아니지만 ‘만들어진 것’이죠.
정인 하면 또 고(高)음역 대인데…
발라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어요. 음역도 낮았고요. 어쩌다 보니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했죠. 이제야 좋다는 평을 많이 받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 고음역대도 만들어진 거예요. 발성 연습을 3년 정도 하다 보니 영역대가 넓어졌어요.
음색이 유니크하다는 평을 받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음색이 유니크하다기보다는, 음색 하나로 되는 게 아니고 해석이나 창법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음색과 합쳐져서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들 음색이 유니크하지 않나요?
노래할 때 지키려는 자기만의 룰이 있는지.
노래하기 하루 전에는 절대로 술을 안 먹어요. 뭐 술을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당일 노래 부르기 3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안 먹고요.
영향 받은 보컬은.
너무 많아요. 제가 뭐든 다양하게 하는 편이에요. 18번이 없는 가수예요. 보통 가수면 한 가지일 텐데. 어렸을 땐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음악을 너무 좋아했어요. 특히 1, 2집을 너무 좋아했고요. 딱 그때까지가 제가 당시 하고 싶었던 음악이기도 했어요. 국내 가수는 백지영 언니요! 제가 원래 가요를 많이 한 게 아니어서요. 「미워요」 할 때부터는 백지영씨에게 감정 처리하는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롤 모델은 누군가.
이것도 당연히 아주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리쌍이 제 롤 모델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예능 전이었고, 아무도 리쌍을 몰랐어요. 그런데 선글라스 딱 끼고 무대 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하면 다들 알아보시는 거예요. 그래도 음악은 다 아는. 그게 멋졌어요.
익명성을 유지하면서도 누구에겐가 진가가 통하는 그런 스타일?
네. 그러면서 자기색이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했어요.
데뷔 후 첫 앨범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중들이 알기 시작한 것도 최근인데, 8년이라는 무명생활을 어떻게 견뎠나.
밖에서는 무명이었다고 생각할 텐데, 저는 음악을 계속 해 왔었어요. 매년 작업 물을 내고 있었으니까. 대단하지는 않지만 음악을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 그 힘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플라(G. Pla)에 대한 경험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
그때 음악적으로 많이 성장했죠. 그 전엔 학생이었고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을 때였는데, 밴드로 활동하게 되면서 음악 하는 과정과 이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아요.
해체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엔 나 때문이지만. 소송 문제도 있었고. 밴드를 계속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좋질 않았어요. 그때는 멤버들이 오로지 밴드 생활만 했었어요. 다른 것으로 돈 벌면서 해도 됐을 텐데 융통성이 없었죠. 돈이 없어서 많은 곡들을 제작할 수 없었어요. 두 번째 앨범을 여기저기서 빌려 좋은 곡 3곡만 뽑아 겨우 싱글 발매를 했는데 그때 이미 에너지가 다 소진됐던 거 같아요.
정인 하면 인맥이 넓을 것 같은데,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 중 다시 곡 작업을 해 보고 싶다거나 가장 인상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사실이에요. 인맥은 넓은 거 같아요.(웃음)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음…… 어렵네요.
그럼 작업했던 분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5명 정도만 꼽아 본다면.
먼저 리쌍의 길씨 같은 경우는 저보다 저를 더 잘 알아요. 제게 계속 새로운 것을 요구하면서 저 자신을 끌어내 줘요. 그럼 못 할 것 같았던 것도 다 하게 돼요. 드렁큰타이거는 워낙 레전드셔서 작업할 때 아무런 의심이 없었어요. 그냥 믿고 따라가면 되었죠. 바비킴씨는 저랑 너무 잘 맞아서 정말 수월하게 작업했고요. 윤종신 오빠같은 경우는 노래가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어요. 본인은 쉽게 부르시는데, 막상 불러보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호흡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오빠가 쉽고 뻔하게 내뱉는 게 아니었던 거죠. 대단한 사람이에요.
아! 조규찬 오빠와의 작업은 정말 재밌었어요. 조규찬씨가 곡 작업 하실 때 꼼꼼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그래서 좀 긴장하기도 했는데 막상 노래하러 가서 처음 만난 순간 오빠 머리와 제 머리가, 그 왜 usb로 연결이 돼서 오빠가 하는 생각들이 한 번에 쫙 입력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었고요. 아, 조규찬 오빠로 할게요. 다시 곡 작업 해 보고 싶은 사람.
솔로가수로 활동하는 건 어떤가. 협업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은데.
저는 무대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편이에요. 그래서 무엇이 더 좋아 그런 게 없고요. 음. 여럿이서 할 때는 놀러가는 느낌이랄까? 친구들도 많으니까. 그래서 즐겁고. 혼자 할 때는 또 혼자 하는 대로 좋아요. 관객들이랑 세션들이랑 다들 어울릴 수 있으니까.
나가수에 출연 중인데 부담은 없나.
없었어요. 알려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서요. 그런 것에 관심이 있지는 않아요. 시작하게 된 것도 그냥 제의가 들어온 건데 ‘해야죠!’ 해서 한 거고요.
정인은 메인스트림을 지향하는 이미지가 아닌데, 주류 범위에서 인선하는 나가수 측이 섭외했다는 것의 의미는 그만큼 노래를 잘 한다는 의미 아닌가.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제 국카스텐의 무대를 보고는 ‘너무 아무 생각이 없었구나’ 했어요.(웃음) 생각을 크게 안하고 있었는데 처음 나가수 방송이 나간 뒤 ‘나가수의 신데렐라가 될 것’이라는 식으로 알려져서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국카스텐이 프로그램을 살려 주는 것을 보면서 생각 없는 게 실수였다는 생각을 했죠. 이게 제 장점이자 단점이랍니다.
나가수에서 부른 노래들 대부분이 정재일 편곡이던데.
아, 이제는 못해요. 정재일씨가 해외 스케줄이 생겨서 앞으론 못하게 됐지만, 대단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해요. 저보다 동생인데. 음악도 좋고 사람도 너무 좋아요.
나가수 출연으로 인한 득과 실이 있다면.
아무래도 ‘관심’이겠죠. 그전에는 지금만큼의 좋은 관심도 없었지만 쓴 소리 들을 일도 없었거든요. 무대를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들의 말들이 처음에는 신경 쓰이더라고요. 댓글 의견 같은 걸 존중하는 입장이라 그런 걸 하나하나 읽거든요. 보면서 그 사람들 말들이 다 맞는 것 같고, 또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읽힐 수도 있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다 스트레스였죠. 이제는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스스로 커지고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그런 말들이 무대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건 아니었고요. 대중적으로 해 보겠다는 마음이었으면 나가수에서 그런 무대를 만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엠넷의 <볼륨 텐>에서 ‘선곡의 여왕’이라는 의미의 선녀로 불린다.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얘긴데 어떤가.
좋죠! 이런 이미지. (웃음) 20대에는 음악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범주가 아주 넓진 않은데, 어렸을 때는 소울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제 감수성을 건드린 음악이었거든요. 요즘은 바빠서 음악을 많이 못 들어 아쉬워요. 그래서 작년엔 하루에 음반 하나씩 듣기를 하자고 다짐한 적도 있었는데 자연스럽지 않으니 못하게 되더라고요.
같은 여자 가수로서 요즘 활동하고 있는 걸 그룹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아이들이 갖고 있는 열정과 열망 같은 것들이 부러워요.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슴 속에 들끓는 그것. 저는 그런 게 부족한 편이거든요. 성공이나 야망 같은. 이게 사실 저는 상관없는 문젠데 주위 분들에게 미안하긴 하죠. (웃음) 어린 친구들인데 정말 열심히 하잖아요. 안쓰럽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열정이 넘치는 것이 우선적으로 보여요 제겐. 가끔은 ‘나랑은 다른 세계구나’라 생각되기도 하고요.
황당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무엇 때문에 음악을 하는가.
‘내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이런 건 사실 아니에요. 그건 듣는 사람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제가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을 만들어 갈 때의 희열이 좋아서예요. 대중에 대한 측면은…… 음, 제 경우 누군가의 음악을 들었을 때 영감을 얻는 게 좋았어요. 네 영감, 인스피레이션이요. 미술 작품이나 예술 작품을 볼 때도요. 제 음악도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좋을 거 같아요.
본인이 가진 모습 중 지키고 싶은 것과 극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저는 늘 마음이 열려 있어요. 음악에 대한 사심(私心)도 없고요. (자문하며)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문제는 너무 사심이 없어서 계산적이지 못하다는 거예요. 음악 할 때도 그렇고. 그래서 같은 노래를 두 번 부르면 두 번이 다 달라요. 똑같이 부르지를 못해요.
어떤 가수로 남고 싶나.
제가 이렇게 봐 주세요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느끼는 대로 알아서 봐 주시면 그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게 없어요. 음. 억지로라도 말을 만들어 볼까요? 다른 생각 없이 순수하게 내 모습, 내 음악. 음. 그러니까 친구를 만나면 인간성이 맞아서 좋은 거, 이념이나 사상이 다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냥 통하는 거. 느낌이. 그냥 친구처럼, 아 꼬이네요. 전 정말 이런 게 없어서 고민이에요.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