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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의 매력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느낌”

한대수 인터뷰 ‘너도 살고 나도 살자(Live and let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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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음악인 한대수는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사진 에세이집 『뚜껑 열린 한 대수』 출간, 세시봉 전국투어 공연, CBS 라디오 <손숙, 한 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진행 등 다방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지난해 음악인 한대수는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사진 에세이집 『뚜껑 열린 한 대수』 출간, 세시봉 전국투어 공연, CBS 라디오 <손숙, 한 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진행 등 다방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는 젊은 아내와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얻은 딸을 위해 그는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 공사다망했던 2011년은 한대수의 새 전성기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방송을 마치고 오랜만에 이즘과 마주한 그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했다. 스스로 자주 쓰는 표현처럼, 정말 ‘양호했다.’(양호는 딸 이름이기도 하다) 젊은이와 후배에게 권위를 내세워도 무방한 연륜에도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들보다 더 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그의 솔직한 이야기와 호탕한 웃음은 한 대수 특유의 에너지와 인간미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라디오 방송 잘 듣고 있습니다!

아, 손숙씨랑 하는 <행복의 나라로>? 오케이! 고맙습니다! 젊은 사람이 듣는다니까 더 고맙네요!

방송 들으면 굉장히 행복해 보이세요.

그거 희한하네. 사실 나는 굉장히 힘든 삶을 살고 있어요. 50년 동안 구속 없이 바람처럼 살았거든요. 돈도 명예도 국적도 필요 없었어요. 근데 애를 갖고 나서 완벽한 자유에서 완벽한 구속으로 옮겨갔죠. 애가 지금 네 살이거든요.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거예요. 이전에는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는데 애 유치원 보내고 옷 사 입히고 예방접종 받고 하는 모든 일이 다 돈인 거야. 그래서 방송 활동도 고정적으로 하게 된 거죠. 방송은 손숙씨가 리드를 잘해주셔서 아주 재미있어요.

지난해 TV 출연도 자주 하셨는데, 주로 사모님 건강 문제가 많이 부각이 됐거든요.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처음 기획한 거랑 나중에 편집해서 나온 게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더라고. 그래도 건진 건 몇 가지 있어요. 우선 내가 아내를 장기적으로 입원시킬 만한 능력이 안 돼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방송국이 훌륭한 치료 센터를 알아다 주고, 치료비를 지원해 줬다는 거. 그 두 가지가 개인적으로 건진 거고, 세 번째는 우리나라 남자 중에 알코올 중독자가 상당히 많아요. 방송국 얘기에 따르면 3분의 1, 여자도 거의 10퍼센트에 달하고 있대요. 우리나라는 이런 사실을 쉬쉬하는 분위기거든. 그런데 내가 프로그램에 나가서 그런 걸 얘기하니까 거기에 용기를 얻었다는 사람이 많더라고. 용기를 얻어서 입원을 결심한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 이 세 가지가 얻은 거라고 할 수 있지. 그 대신에 음악가로서 완전히 빵점이 됐다는 거, (웃음) 그게 조금 아쉽지. 음악 말고 다른 게 더 주목을 받았으니까. 그렇지만 한 가지 얻으면 한 가지 잃는 거야. 두 가지 다 얻을 수 없어.

사모님 간호를 하면서 선생님 음악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음악은 완전히 못하지. 양호(딸) 낳기 전엔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 한 번 갔다 와서 곡을 쓰거나 책을 썼어. 창작 시간이 나한테는 6시에서 11시까지야. 그때만 일하고 나머지는 청소하고 밥해먹고 영화보고 그랬지. 근데 지금은 그 시간에 방송국에 나와서 직장생활 해야 되잖아. 나머지 시간에는 마누라 보살펴야 돼. 음악에 전혀 손을 못 댄다고 할 수 있어. 마지막 앨범이 < 욕망 >인데 만든 지 5년 됐을 걸. 음악은 완벽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거지.

세시봉 공연할 때도 그쪽에 조건을 줬어. 베이비시터 둘을 달라. 한 사람은 마누라 술 못 먹게끔 친구 역할 해주고, 한 사람은 딸 보살펴 주고. 그런데 두 사람 다 만만치가 않아. 딸은 우량아에다 고집은 내 고집에 제곱이야. 칭기즈칸이야. 베이비시터 두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두 손 들었어. 그래도 베이비시터가 있었기 때문에 공연을 할 수 있었지. 안 그러면 내가 어떻게 연습하고 공연을 하겠어. 그리고 마누라는 내가 일부러 코러스를 시킨 적도 있어. 마누라가 무대 체질이라 무대는 옛날부터 좋아했지. 춤을 추면서 코러스를 시키면 자기가 거기에 몰입을 할 것 아니야. 그렇게 겨우 끝냈어.


세시봉 붐을 타면서 활동이력 처음으로 디너쇼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나는 내 평생 그런 거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 그런데 그것도 사실상 양호 때문에 한 거였어. 오랜만에 세시봉 멤버들 만나니까 좋기도 했지. 양호 아니었으면 디너쇼 절대 안 합니다! (웃음) 근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나는 사람들이 포크랑 나이프 들고 먹고 있으면 우리가 노래를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식사 끝나고 공연을 해.

세시봉 무대에 처음 서셨을 때 기억나세요?

그럼요, 기억나죠. 제가 1968년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원래 가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던 건 아니고, 1960년대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커피숍에 가서 기타치고 커피 마시면서 모자 돌리는 것이 하나의 재미였거든. 자기가 만든 노래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자신의 음악성을 확인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걸 할 데가 없는 거야. 우리 집이 명륜동이었는데 퀸 다방이라는 유명한 곳이 있었어요.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음악을 막 틀기에 내가 신나서 DJ한테 오늘 저녁부터 한 곡 하겠다고 했더니 안 된대. 여기는 안 되고 무교동에 있는 세시봉에 가보래.

그래서 기타 들고 세시봉에 갔죠. 가니까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이 다 있더라고. 사장이 내가 머리도 길고, 기타도 갖고 있고, 뉴욕에서 왔다고 하니까 무대에 서봐라, 이렇게 됐지. 그때 젊은이들은 갈 데가 없었어. 지금처럼 화폐도 없었고(한 대수는 ‘돈’ 대신 ‘화폐’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니까 거기 와서 커피나 주스 하나 시켜놓고 하루 종일 있는 거야. 대화 나누고, 생음악 듣고. 그러면서 자기들 꿈을 키우고, 시도 쓰고, 여자들은 담배도 피우고. 그리고 트윈 폴리오 음악, 조영남 음악, 한대수 음악 들으면서 자유를 찾았죠. 느낌이 상당히 좋았어.

세시봉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때는 기획사란 게 없었어요. 우리 맘대로 작곡하고 작사하고 노래했어요. 보이는 게 바로 나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준 거예요. 꾸밈이 없어요. 그래서 1년 전에 세시봉 친구들이 나와서 그렇게 노래를 하니까 색달라 보일 수밖에 없지. 요즘 기획사가 만든 보이 밴드, 걸 밴드만 보다가 그런 걸 보니까 말이야. 기획사에서 내보낸 가수들은 MR이 기본이라 정확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코드도 가끔 틀리고 목소리가 안 맞아도 인간이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니까 매력적인 거야. 세시봉이 프랑스 말로 모든 것이 양호하다는 말인데, 이름 때문에 오래 간 것도 같아.

앨범 작업보다 공연을 선호하는 편이세요?

나는 앨범 작업을 더 좋아해요. 앨범에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작업, 음악가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그 과정이 좋아요. 공연은 나이가 드니까 좀 힘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앨범 작업이 있을 것 같은데.

전부 다 기억에 남아요. 하나하나가 맛이 달라요. 그래도 제일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건 첫 앨범. 그때는 녹음이 뭔지도 몰랐어. 그리고 우리나라에 녹음실이 하나뿐이었거든. 다른 가수들이 녹음을 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루 밖에 시간이 없어. 그래서 화장실도 안 갔어. 기타치고, 하모니카 불고, 정성조씨가 플루트 불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다가 하루 만에 끝냈어요. 우리나라가 그 정도로 가난했어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앨범이 < Eternal Sorrow >(2000). 손무현 씨가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녹음이 잘 됐어요. 뉴욕에서 미국 뮤지션들한테 들려줬더니 사운드가 진짜 완벽하다고 놀라더라고. 그리고 좋은 뮤지션들이 그 앨범에 많이 참여했고.

지난해 이승열 씨랑 「그들의 Blues」를 같이 작업을 하셨던 건 어떠셨어요?

나는 젊은 분들이 제의를 하면 음악만 양호하면 오케이해요. 화폐도 안 따져. 이승열씨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작곡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런 설명 필요 없다, 음악을 들어보자, 그랬지. 음악을 들어보니까 양호하더라고. 오케이! 합시다!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녹음했죠. 녹음도 한 시간 반? 바로 끝냈어요. 저는 녹음 시간 오래 안 잡아요. 제 좌우명이 ‘The first take is the best.’ 반복할수록 감정의 농도가 약해지고 목소리도 자꾸 안 좋아지고. 그게 연애하는 거 하고 똑같아요. 첫 사랑이랑 손을 딱 잡고 포옹을 딱 했을 때 우주에서 별이 쏟아지는 거지. 근데 100번째 사랑은 별이 쏟아지긴 하는데 쏟아지는 별의 숫자가 적어. (웃음) 그래서 저는 무조건 퍼스트 테이크! 제 앨범이 15개 정도 되는데 99퍼센트가 다 첫 번째 테이크. 두 번 세 번 부른 건 별로 없어요.


혹시 다음 앨범을 구상 중이신가요?

다음 앨범은 손무현씨하고 이우창씨하고 저하고 셋이서 구상하고 있어요. 금년 내로 아마 녹음 들어갈 겁니다. 손무현 씨 기타가 리듬이 강하고, 펑크(Funk)가 강해요. 엉덩이가 들썩들썩, 블루스 기타도 잘 치고. 이우창 씨는 재지(jazzy)한 부분이 있고. 저는 또 정신 나간 사람이니까. (웃음) 다음 앨범은 ‘정신 나간 펑크 리듬 앤 재즈’가 되겠네. (웃음)

지금도 신촌에 사시죠?

그렇습니다. 8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신촌 생활은 어떠세요?

저는 좋아요. 왜냐하면 우선 내가 대도시를 좋아해요. 뉴욕, 파리, 런던, 시카고, 베를린,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다 좋아해요. 그리고 음악가는 문화의 중심에 있어야 뭔가 배우고 흡수할 수 있거든. 신촌이 중심가잖아. 홍대 가는 것도 5분이면 가고, 시청 앞에 뭐 있다고 하면 15분이면 바로 가고, 방송국 있는 여의도도 택시 타면 15분, 목동도 지하철 타면 30분밖에 안 걸려. 그리고 신촌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거든.

자연이 필요하면 연세대학교 뒤로 가면 산 있잖아. 거기서 양호하고 낮잠도 자고 연도 날리고. 그리고 옥사나(부인)는 양식을 좋아하니까, 신촌에 그런 식당이 다 있잖아. 커피숍도 많고. 목동 출퇴근하는 데 일산이나 인천에서 살면 대충 다 합쳐서 세 시간 걸리거든. 내가 시간을 그렇게 낭비할 수가 없어. 애랑 마누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나 없는 사이에 마누라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니까 얼른 가야 돼.

그런데 신촌에 젊은이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청년을 대하는 게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보면 젊은 세대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나는 젊은이들을 좋아하고, 젊은이들도 나를 좋아해. 우리는 잘 통해. 내가 아직 철이 안 들었거든. 스물두 살에서 멈춰버렸어. 대화도 잘 되고, 남자하고도 이야기 잘 되고, 여학생은 더 잘 되고. (웃음)

장발을 고수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장발은 1960년대 상징이에요. 비틀즈가 음악가로도 혁명가지만 장발로도 혁명가에요. 이 사람들이 헤어스타일을 가르쳐 준 거야. 그거 보고 이렇게 머리를 길렀지. 군대 3년 빼놓고는 계속 길렀어요. 왜냐, 짧은 머리는 손이 많이 가지만 이렇게 하면 손이 안 가. 바람에 휘날리면 자연스럽고 신경이 안 쓰여. 그리고 무대에 서면 머리가 휘날려야 말이지. ‘크래쉬’의 안흥찬이 보면 머리를 막 (직접 헤드뱅잉을 하며) 이러잖아. 볼만 하잖아. (웃음) 장발은 ‘자유’고 공연 때도 느낌이 나게 돼 있다고.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탈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내 머리 보면 내 근처에 못 와. 저 사람은 저쪽 세상에 사는구나, 접근 안 해야지, 이런 게 있어. 접근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말라, 그런 거야. (웃음)

인생의 모토는 무엇인가요?

‘Live and let live.’ 간단한 말 같아도 어려운 말이야. 우리가 너 죽고 나 죽고잖아. 남북 관계도 그렇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도 난리가 났고. 너 죽고 나 살자(live and let die)는 게 아니라 나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야. 이게 뭐냐, 이데올로기, 개념, 신념이란 부분이 없어야 된다고.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이런 걸 극복할 수 있어야 돼. 그 다음이 종교 부분. 물론 어렵지. 하지만 그걸 감싸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 ‘Live and let live.’ 이게 아주 어려운 말이야.


새롭게 음악을 하려는 젊은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씀이나 충고가 있는지요?

지금은 과거에 비해 연주자들이 많아. 옛날에는 연주자가 너무 없어서 나를 보고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했다니까. (웃음) 나 기타 잘 못 쳐요. (웃음) 그 정도였는데, 지금은 실력 있는 연주자도 많고 엔지니어도 많고. 이 부분은 상당히 양호하다고 봐요. 하지만 불양호한 부분은 뭐냐면, 음반 산업이 너무 포맷화되어 있다는 것. 기획사 중심으로 음악가가 배출되니까 던킨 도너츠 만드는 기계 같아. 다들 서로 생긴 것도 비슷하고 노래하는 스타일도 비슷하고. 그래서 개성이 없어. 자기가 혼자 직접 작사하고 작곡하고 그런 사람들은 무대에 설 기회가 없어. 텔레비전에 나갈 기회가 없어. 훌륭한 음악가가 과잉 상태고 너무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에 옛날보다 더 힘들 거야.

그래도 정말 음악을 하겠다면 나는 정말 뭔가가 있다, 이 사람들하고 다른 뭔가가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돼. 그리고 완벽하게 희생할 줄 알아야 돼. 좌절하고, 또 좌절하고. 절대 한 방에 넘어가는 나무는 없습니다. 유명해지려고 돈 벌려고 하면 절대 안 돼. 그러려면 비즈니스 하는 게 낫지. 그러니까 음악에 대한 완벽한 희생, 음악을 하겠다는 집념이 없으면 안 돼. 우리 사회를 양호하게 바꿀 수 있다는 집념이 있어야 돼.

그렇게 하다가 음악이 좋아지면 유명해지고, 유명해지면 화폐도 따라온다는 말이지. 음악이 항상 중심이 돼야 돼. 나 혼자 음악으로 설 수 있느냐, 이것을 자신한테 물어보고 없으면 안 하는 게 나아. 음악은 1, 2년 가지고는 안 돼. 나도 벌써 43년이 됐잖아. 그리고 만약에 음악으로 크게 성공했어, 화폐도 많이 벌었어, 그러면 그 다음에 또 무엇을 할 것이냐, 이것도 스스로 물어봐야 돼. 그런 사람이 성공한다고.


인터뷰: 김두완
사진: 윤여홍
정리: 김두완

글 / 김두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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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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