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 이후 침체기로 빠져들던 브릿 팝이 콜드플레이에 의해 다시금 부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작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를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을 이번에 공개했습니다. 브릿팝의 최강자로 우뚝 선 콜드플레이를 만나보시죠. 그리고 인디 그룹 제8극장과 레이니썬의 보컬리스트 정차식의 신보도 함께 소개합니다.
콜드플레이(Coldplay) < Mylo Xyloto >(2011)
진화는 곧 생존이다. 음악이라는 무형의 ‘소리’에도 이 법칙의 적용은 어김이 없다. 새로운 소리를 창조해내는 음악가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대중의 선택'이라는 생존을 위해 쉼 없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2000년 데뷔 앨범
< Parachutes >이후 영광스러운 선택을 끊임없이 받아오며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밴드로 자리 잡은 콜드플레이가 또 다시 영속(永續)의 기운을 내비쳤다.
라디오헤드의 또 다른 여파라는 일각의 냉소와 비아냥거림은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라디오헤드가 점차 실험적인 사운드로 노선을 바꾸며 일부 팬들에게만 ‘숭배’를 받는 사이, 이들은 ‘브릿팝=라디오헤드’라는 공식의 우변에 ‘콜드플레이’의 이름을 다시금 새겨 넣었다. 이런 새로운 법칙을 세계 팬들의 뇌리에 재정립시킬 정도로 이미 거대한 집단이 되었다.
크리스 마틴이 지어낸 단어인 앨범 타이틀
< Mylo Xyloto >는 ‘표현의 자유’를 의미한다. 어떠한 사소한 아이디어도 존중하고 그것을 모두 반영하려 했다. 기존의 방향과 다를 것임을 부연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흥미진진한 작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거장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Brian Ino)가 총 지휘를 맡았고,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 Neon Bible >을 담당했던 마커스 드라브스(Markus Dravs), 2집부터 밴드와 손발을 맞춰온 릭 심슨(Ric Simpson)과 같은 프로듀서들이 조타수 역할로 참여하며 멤버들의 ‘자유의 항해’에 힘을 실어주었다.
새 앨범의 키워드는 ‘스케일의 확장’. 전작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브라이언 이노의 엠비언트적 요소를 수록곡 전체에 깊숙이 혼재시킴과 동시에 사운드의 군더더기를 걷어냈다. 창조의 영역 또한 거대하고 탄탄하게 업그레이드 시켰다.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을 앨범의 출사표로 선택한 것은 자신감 표출의 발로(發露)였다. 형형색색의 커버 아트부터 밴드가 전해왔던 ‘서정성’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졌고, 곡 자체로써도 변칙이었다. 신시사이저의 퍼져나가는 선율 위에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의 유연한 조합이 환상의 기운을 뿜어내지만, 이들의 강점이었던 ‘멜로디의 흡인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보컬 또한 특유의 팔세토가 아닌 샤우팅이라니 말이다.
‘우울의 정서’를 타파하고 더 강건하고 확장된 공간감을 전해줄 앨범이 될 것이라는 암시였다. 결과적으로 그 의도는 적중했다. 팬들은 이들의 ‘점진적 진보’를 기꺼이 품에 안을 준비가 돼 있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첫 싱글 발표 이후 3년 만에 내놓는 앨범의 반응은 발매 전부터 뜨거웠다. 아이튠즈 예약 판매만으로 미국 등 9개국에서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이들에 대한 식지 않은 관심과 사랑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싱글로 선택된 「Paradise」는 정돈된 현악과 피아노연주 위에 크리스 마틴의 ‘서정적 팔세토’가 어우러지며 프로그레시브적인 분위를 고조시킨다. 여기에 로맨틱한 신시사이저와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 역시 곡의 매력을 가중시키는 요소다. 「Charlie brown」은 전작의 대표곡 「Viva la vida」를 계승한다. 반복적인 키보드의 리프와 굵고 거친 듯한 어쿠스틱 기타리듬은 모던락 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Princess of china」에서 크리스는 매력적인 아가씨 리한나(Rihana)를 곡에 초대해 색다른 조화를 들려준다. 곡에서 그녀는 이전의 마룬5의 곡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에서 들려준 보컬 아담 리바인(Adam Levine)과 주고받는 호흡과는 달리 곡 전체를 아우르는 완숙미를 뽐낸다. 기존 팬은 물론 브릿팝 마니아들의 몰표가 예상되는 곡 「Up in flame」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콜드플레이의 감성 그 자체이다.
「Don't Let It Break Your Heart」는 브라이언 이노의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정돈되지 않은 습한 안개 속을 그려내는 듯 유투(U2)의 보노와 엣지가 창조해내는 공간감, 그 길고 짜릿한 여운을 남긴다. 이 여파는 다음 곡 「Up with the bird」로 이어지며 다채롭고 더 거대해진 음악적 결과물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Yellow」나 「Clocks」, 혹은「Viva la vida」와 같은 앨범의 얼굴격이라 할만한 ‘킬링 트랙’은 부재한다. 바로 이점이 유일한 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신작을 발매할 때마다 ‘올해의 송가(頌歌)’라 칭할만한 히트 싱글을 꾸준히 발표했던 밴드였기 때문에 이 점은 앨범을 평가하는데 큰 잣대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단점이 아닌 장점이다. 눈에 띄는 ‘단일성’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유기적인 ‘전체성’에 집중해 창조해授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중음악의 최고봉’이라 칭하는 비틀즈와 ‘콘셉트 앨범의 미학’을 일깨워준 핑크 플로이드와 같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고른 완성도를 가진 음반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콜드플레이는 10여년의 시간동안 5장의 고른 완성도를 갖춘 디스코그래피를 적립해오면서 조금도 서두르려 하지 않았다. 그 점진적인 자의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이 모든 것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어마어마한 공룡집단이 되버렸다. 누가 알겠는가? 이들이 ‘제 2의 비틀즈’가 될 가능성을 확실히 점치기는 힘들겠지만 가장 근접해있다는 사실은 더욱 확실해졌다.
글 / 신현태 ()
제 8극장 <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 > (2011)
제8극장의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였다. 생각해보면 그저 타박할 말은 아니다. 모던록의 대세 속에서 이들의 올드스타일은 악수(惡手)일지도 모른다. 뮤지컬에서 떼어온 듯한 과장된 상황과 보컬 스타일이 그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그룹명처럼 서커스, 텀블링 같은 버라이어티한 퍼포먼스를 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2008년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 < 거리의 악사 > 콘테스트를 우승, EBS 스페이스 공감의 < 이달의 헬로루키 >에 선정되면서 일찌감치 실력을 검증받았다. 정규앨범은 올해 나왔지만 그동안 세 장의 EP를 발매했다.
앞서 말했듯이 음악 또한 공연처럼 콘셉트를 지닌다. 데뷔부터 이들은 ‘광대’, ‘카니발’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신보는
“인생은 거대한 항해다”라는 테마 아래 19세기 어느 서양의 선원과 그들의 항해를 그리고 있다. 옆 동네 놈팽이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기고, 부와 명예, 아름다운 여인을 얻기 위해 무작정 바다(세상)으로 뛰어드는 이야기는 21세기 우리네 삶의 일기와 너무나 닮아있다. 장치와 배역은 다르지만 찌질하고 허세부리는 캐릭터만은 그대로인 것이다.
게다가 보컬과 연주의 표현력도 풍부하다. 새장에 갇힌 도도한 앵무새 (「나는 앵무새 파리넬리다」)부터 젊은이에게 인생의 쓴물단물을 설교하는 늙은 선원(「어느 베테랑으로부터」)까지 어느 역할도 어색함 없이 소화해낸다. 분위기에 맞게 배경으로 서있던 기타도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는 울분과 한을 토해내며 폭주한다. 더구나 화려한 피아노 반주와 코러스는 퀸의 음악과도 맞닿아 있다.
매우 대중적인 스타일이지만 이들의 음악은 호불호(好不好)가 갈린다. 그것은 작금의 트렌드와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록진영에서의 뮤지컬의 위치가 매우 어중간하다.) 꺼내 들기는 쉽지 않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 마지막장을 확인하고 마는 책처럼 흡인력이 뛰어나다. 자신의 색을 살리면서도 과장은 자제하고 공감을 얻어낼 때 이들은 진정한 파리넬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김반야 ()
정차식 < 황망한 사내 > (2011)
“예전에 아름다웠던 록의 열기나 다양한 장르의 모습들은 온 데 없고 온갖 게이 같은 음악 스타일만이 판을 치는 게 안타깝다”
귀곡메탈로 잘 알려진, 독특한 자신의 음계(音界)를 구축한 레이니썬(Rainysun) 정차식의 말이다. 작금의 행태를 쏘아붙이는 그의 일침에 슬쩍 편승하고자 한다. 최근에 이렇게 낯 뜨겁게 만드는 뜨끔한 말이 있었던가. 한발 나아가 그의 음악도 거침없다. 무겁고 축축하고 퇴폐적이며 길다.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불리어지는 대로 불러진 문제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뒤엉켜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마이너적인 감성을 주시하다 보면 스스로가 너무 다듬어지고 치장되었음을,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짐승과 가까운지를 알아채게 된다.
건반과 기타, 스트링의 단출한 구성과 이를 선도하는 보컬은 많은 이에게 백현진을 떠올리게 했다. 한 평자는
“백현진의 것이 읽는 음악이라면 정차식의 것은 듣는 음악이고, 백현진의 것이 문학가의 음악이라면 정차식의 것은 음악가의 문학이다”고 명료하게 정리했다. 백현진을 소설에 비유한다면 정차식은 시에 가깝다. 분명히 시는 음악의 배다른 형제기도 하다. 인디씬의 태동부터 견뎌낸 두 사내의 이런 오버랩은 흥미롭다. 사실대로 자백하자면, 상당히 흥분되는 부분이다.
정차식이 가진 비기(秘技)는 감히 넘보기 힘든 뒤틀린 보컬이다. 솔로 앨범만큼은 내지르지 않고 편안한 수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장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다소 저음으로 「용서」를 구하다가 「음탕한 계집」을 만나면 가성과 저음이 같이 걷기도 하고, 「습관적 회의」때는 중성적인 팔세토가 왈츠박자에 흐느적거리며 정체성을 헷갈리게 만든다. 겉으로 표현되는 목소리에 뒤편에는 (그것이 크던 작던 간에) 완전히 상반되는 존재가 기생하며, 그가 누구인지 조차 황망하게 만들어버린다.
음울하고 비루한 보컬과 달리 악기와 비트는 활달하고 화색이 돈다.「촛불」에서는 디스토션을 잔뜩 머금은 기타사운드와 가성이 만나 서로를 반사시키며 반짝거린다. 특히 그 속에서 새어나오는 새소리는 어느 인상파 화가의 착란적인 터치를 재현해내며 아름답게 발색한다. 멜로디에 섞여 새어나오는 또각거리는 구두굽비트와 차 질주소리, 지하철 안내 소리와 파도소리는 영매가 되어 몽상세계로 연결시킨다.
정차식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표정과 눈빛이 완전히 다른 15마리의 괴물이 앨범 속을 종횡하며 날뛰고 으르렁거린다. 낮은 스트링과 피아노 사이를 서서히 산책하는 「마중」에서는 숨 돌릴 틈을 잠시 주다가도, 「완벽한 당신」은 달콤한 멜로디 뒤에 치명적인 가사를 숨기고 있다. 자장가처럼 부드러움 요람 속에서 교묘하게 신경을 긁어 놓는 「불면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노래도 안전하고 쉽게 따돌릴 수가 없다.
‘문제작’의 딱지를 아무 곳이나 붙일 수는 없다. 이는 일종의 경고다. 어쩌면
“나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회피기도 하다. 가슴과 뇌 속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음기(音氣)는 자아를 점점 잃게 만든다. 멍하게 섰다가, 힘없이 주저앉았다가, 눈물을 흘리다가, 헛웃음도 터뜨리게 된다. 서서히 숨어들어와 눈을 가리고, 희롱하면서, 애써 조여 놓았던 나사를 풀어버린다. 마침내 우리를 고장 나게 만든다.
글 / 김반야 ()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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