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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19세기 파리로 초대합니다 -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이택광

인문학자가 그림을 보는 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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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무렵의 프랑스 파리. 한 장의 그림으로 유추할 수 있는 당시의 풍경, 분위기, 사람들의 생각들을 엿보며, 독자들은 두 시간 동안, 근대 파리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이 그림은 ‘단순한 그림 한 점’이 아니야!

3월부터 시작된 YES24의 예술특강 릴레이, 그 첫 주자로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이택광 저자가 나섰다. 근대 파리 풍경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독자를 근대의 파리로 초대한다. 지난 3월 28일 저녁, 강남역 토즈에 마련된 강연장. 이곳에 모인 독자들은 그림이 담긴 슬라이스를 통해 시간 여행을 떠났다.

근대화 무렵의 프랑스 파리. 한 장의 그림으로 유추할 수 있는 당시의 풍경, 분위기, 사람들의 생각들을 엿보며, 독자들은 두 시간 동안, 근대 파리의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물론 이택광 저자가 이날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이택광 저자는 “모네는 어떻게 근대를 그렸나”라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인상파 미술관의 문을 열었다.

세상을 바꾸는 그림은 나름대로 이유를 품고 있는 법이다. 명화는 무엇일까? 쉽게 마래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그림이다.(…) 그림은 경험의 감각을 바꾸어서 이런 믿음 체계를 뒤집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이 그냥 그림 한 점으로 끝날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옛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물을 닮은 이미지라기보다, 그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낯선 가치 체계이다. 인상파는 근대의 초입에서 자본주의 산업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려고 했던 화가들이었다. 인상파가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P.16)



19세기에 일어난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인상파 그림들

이택광 저자는 영문학 전공자다. 이 책을 내고 나서, “영문학 전공자가 왜 인상파 연구를 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사회적, 문화적 변동은 정치 경제학적 변동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 사회의 감각이나 인식 체계가 바뀌는 것은 미학적 혁신으로 드러난다. 19세기, 경제적으로 큰 변동을 겪었던 사회의 풍경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것이 비주얼 아트, 즉 회화다.”

그는 미술학자처럼 인상파 그림을 접하지 않고, 인문학자답게 살핀다. 인상파 자체를 분석하기보다는 인상파의 발생과 영향을 들여다보며, 사회적 맥락을 짚어본다. “인상파 그림을 보면 마치 클래식한 그림을 보는 것 같지만, 19세기 인상파 그림은 당시 과학적 발명을 담고 있는 셈이다.

색채를 만드는 일이 여의치 않아, 기존에는 색을 장악하는 일이 권력을 장악하는 일처럼 여겨졌으나 19세기에 그림 물감의 등장으로 큰 변화가 생긴다. 이런 일 역시 인상파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휴대용 물감을 통해 야외에서도 스케치와 채색이 가능했기에 모네의 ‘해돋이’ 연작이 가능했다.


「풀밭 위의 점심」 「산책」 「소풍」 …… ‘여가’가 중요한 키워드

인상파로 꼽히는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등의 그림을 살펴보면 이전과 다른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들의 그림에는 ‘여가’ ‘여행’이 중요한 키워드다.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풀밭 위의 점심」 「산책」 「소풍」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등의 그림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택광 저자는 “근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던 파리지앵의 생활방식 때문(P.18)”이라고 설명한다.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시장이 팽창되면서 소비 사회로 변화가 일어난다. 소비주체가 된 사람들은 타자의 욕망을 내재화하기 시작한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가 살던 그 동네가 세계의 전부라고 살던 이전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1860년을 기점으로 파리는 도심과 근교를 잇는 대중교통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듬해 최초로 프랑스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자가 발간되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했을 때, 시외로 나가서 여가를 즐기는 게 당시 파리에서는 흔한 일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P.29)


‘관광객의 시선’이 등장하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투어리즘. 관광 여행이다. 여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관광객의 시선이 나타나고, 이러한 변화가 인상파 화가의 그림들 속으로 들어왔다. 아래 그림을 살펴보자. 이 그림은 “자연을 그렸다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렸다.(P.30)” 이 그림 속에 드러난 화사한 색감과 현란한 빛의 흐름은 역동하는 파리의 발전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파리지앵의 여유로움을 암시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절벽위의 산책」 클로드 모네

모네는 실제 그림 속 장소 근처인 르아브르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고향을 그린 화가의 그림이 아닌가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화가가 풍경을 어디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 그림은 그야말로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는 구도’로 그려진 그림이다. 인상파에게 영향을 끼친 화가로 손꼽히는 코로의 그림을 살펴보면 이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마리셀의 교회」 「파르네제 정원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전경-오후」 카미유 코로

교회나 건물을 배경으로 숲을 그린 것이 아니다. 숲의 오솔길을 따라 가던 사람이 저 멀리 교회를 바라보고 있고, 어느 언덕 위에 올라서 마을을 내다보고 있는 시선이 드러난다. “분명히 근대의 시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 그 시선의 주인공은 관광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34)”

마네의 「발코니」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에 있는 남자」 역시 이런 맥락으로 살펴보면 흥미롭다. 저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들 눈에는 파리의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1855년 파리에는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이를 통해 파리의 문화적 자존심이 한껏 높아졌고, 이후에 오스망 남작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시내 안에 바리케이트를 허물었다. 이때 파리의 시외로 여겨졌던 몽마르트르나 벨빌 같은 곳이 파리의 시내로 포함된다. 그야말로 파리는 변화와 역동의 시간을 겪고 있었다.

「발코니」 마네, 「창가에 있는 남자」 귀스타브 카유보트

그림 속에 근대화의 상징인 기차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창 밖으로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는 기차의 등장 역시 관광을 융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인상파를 한데 묶어 설명했지만, 마네와 드가, 르누아르 각각의 인상파 화가가 근대를 바라보는 풍경은 또 달랐다. 화가 개인의 삶, 당시의 경제적 환경 등에 따라 인상파 안에서도 시선의 차이는 다채로웠다.


인상파, 일상을 고전으로 만들다

이렇게 그림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일만으로도 그림 속의 많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 그림을 왜 그렸을까? 저 사람이 왜 저기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관찰력,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림을 보는 눈’이다.

인상파 그림 속의 단서를 통해 19세기 파리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왜 그럴까? “인상파 화가들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성을 그림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 바로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보들레르는 ‘왜 프랑스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만 고전이라고 생각하나. 왜 우리 일상에서 고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개탄했단다. 그의 개탄이 비단 그 당시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이택광 저자는 “보들레르의 말 중에서 새겨 들어야 할 것은 바로 고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배워야할 것들은 이제 하나의 고급 상품으로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겉모습이라기보다, 이처럼 당대의 현실과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현재성의 예술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P.7)

여기에서 인상파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그들이 모더니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들의 일상을 고전화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또 그려낸 방식 역시 서구 전통과 완전한 단절을 이뤄냈다.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지금 여기를 그렸다.”

이택광 저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였다. “진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까? 비빔밥? 리조또 같은 종류로 프랑스에도 있다. 우리나라 밖에 없는 것은 뭘까? 부대찌개는 여기밖에 없다.” 즉, 전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곳에 우리만의 것이 있기도 하다는 말.

“고전은 교양으로 존재하는, 배워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으면 된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랬듯 말이다. 그림 한 장에 대한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자가 그림을 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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