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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호가든, 여성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 『인생, 이 맛이다』고나무

맥주 맛도 모르면서 인생 논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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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맛도 모르면서.”톱클래스의 영화배우와 감독들이 광고에 나와 읊조리는 이 대사, ‘참말’이다. 광고에서 대사를 ‘치는’ 그들 사이에서 참말 여부를 일컫는 게 아니다.

“맥주 맛도 모르면서.”
톱클래스의 영화배우와 감독들이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기금마련을 위한 캠페인 광고에 나와 읊조리는 이 대사, ‘참말’이다. 광고에서 대사를 ‘치는’ 그들 사이에서 참말 여부를 일컫는 게 아니다. 그 말은, 광고 바깥의 대부분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해당 맥주 브랜드의 광고 콘셉트는 ‘맥주 맛에 눈 뜨다’라는데, 글쎄올시다. 우리는 맥주 맛, 너무 모른다.

하이트와 OB만 맥주(서브 브랜드 맥주들 포함)라고 간판 내거는 이 땅에서, 세계 맥주라고 붙여져 봤자, 그 종류가 극히 한정된 한국에서, 맥주는 취향을 대변해주거나 감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하우스맥주? 2002 월드컵 덕에 반짝했지만, 법적인 문제 등으로 우리네 일상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어딜 가나 접할 수 있는 맥주라곤, 하이트나 OB 휘하의 ‘그냥’ 맥주다. TOP는 없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된 뒤, 좋은 점이 있다. 먹고 마시는 일에 관심이 커졌다. 맥주도 그 중의 하나였다. ‘다른’ 맥주를 마셔보게 됐고, 맥주 관련 책을 읽었다. 특히 람빅을 맛보고선, 그간 맥주에 대해 가졌던 개념이 완전 달라지는 경험도! 그렇게 커피 너머 맥주의 세계도 슬쩍 엿봤더니, 오호, 재밌더라. 알면 달라진다. 나도 예전엔 맥주, ‘그냥’ 마셨다. 기껏해야 프리미엄 맥주 정도였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맥주라곤 뻔했다. 그렇다고 주변에 ‘다른’ 맥주 취향의 사람이 있지도 않았으니…

그렇게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된 재미난 얘기, 하나 들려주겠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는, 세 개의 벨트가 있다.(또 다른 벨트가 있으면 알려주시라.) 커피벨트, 와인벨트, 비어(맥주)벨트가 그것이다. 내가 만들고 있는 커피는,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위 25도 사이에서만 잘 자랄 수 있는 커피나무를 모태로 한다. 이른바 커피 생산지. 커피벨트(Coffee belt)다. 열대나 아열대 기후, 서리가 내리지 않은 높은 고산지대에서 안개를 자양분으로 자란다.

그 위에 와인벨트(Wine belt)가 있다. 온난한 기후와 햇볕을 잘 받는 경사진 지형을 좋아하는 포도 덕분에 위도 30~50도에는 와이너리(포도농장)가 많이 분포해 있다. 당연히 와인양조장도 가까이 있고. 와인은 포도의 껍질이 약해 포도재배지를 멀리 벗어난 곳까지 운반하기 어려워서 생산국가가 비교적 한정돼 있다.

좀 더 위로 가보자. 지구는 비어벨트(Beer belt)를 두르고 있다. 역시나 원재료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후조건 때문이다. 맥주의 주원료인 맥주보리와 홉은 상대적으로 추운 지역을 선호한다. 보리는 북반구의 위도 45~55도에서 잘 자란다. 다만, 보리는 먼 거리 수송이 쉽고, 자연 상태에서 쉽게 발효되지 않아서 보리가 생산되지 않는 나라에서도 그 나라 고유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치맥. 치킨과 맥주만 있으면, 룰루랄라 즐거운 우리다. 그때 마시는 맥주야, 굳이 까다롭게 굴 필요는 없겠다. 여기 한 맥주당(맥주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얘길 했다. “맛있는 음식이나 술이 태양처럼 그 자체로 빛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과 우정은 맥주를 빚고 함께 마시는 행위처럼 단순하지도 않고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과 우정을 자꾸 확인하고 싶어서 그렇게도 술잔을 부딪치는 것 같다. 술은 구원도 해방도 아니지만, 술잔들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매력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동의한다. 커피도 때론 그런 관계가 빚어낸 마술을 보여줄 때가 있으니까. 나는 이 말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 “커피가 맛있는 것은, 단순히 맛뿐만 아니라 추억과 사람과 온기와 그리움이 커피에서 환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대부분 우리가 진짜 맥주 맛을 모르는 것은 맞다. 접할 기회도 적었고, 다른 맥주가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칼스버그 맥주박물관에 소장된 맥주만 1만7000가지가 넘는다. 재료나 제조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65~85종류나 된다. 이렇게 다양한 맥주를 통해 “인생, 이 맛이다!”라고 외치는 남자를 만났다. 스스로 비어홀릭(beer holic)이라고 칭하는 고나무 한겨레 기자. 지난 10월20일, 서울 상수동 극동방송국 부근의 도이치 하우스였다. 『인생, 이 맛이다』의 저자, ‘맥주당 고나무가 콕 집은 맛있는 맥줏집’ 중의 하나.

“어떤 맥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지만, 자신을 만족시키는 맥주를 찾아다니고, 직접 맥주를 만들어보겠다고 시도한 남자, 고나무. 맥주잔을 평등하게 들고 독자들이 그와 눈과 입을 맞췄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맥주가 넘실거린 풍경이다. 맥주 한 잔 준비하시고 읽어보시라.

고나무, 밀 맥주를 권하다


맥주에 완전 빠진 기자 고나무는, 이런 자리가 민망하다고 했다. 작가라고 소개받았지만, 글쟁이로서의 정체성이나 직업적으로나 자신은 ‘기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질문을 던지고 하는 것이 직업인데, 7년 만에 이렇게 질문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란다. 아울러, 자신의 글을 읽고 이렇게 와 준 독자들에게 황송하고 감사. 전교 30등 수준의 학생이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화하잔다.

아하, 이름처럼, 나무 같은 남자구나. 문득, <가을동화>가 떠올랐다. 아마 은서(문근영)가 말했지.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될 거라고. 한 번 뿌리내리면 다시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될 거라던. 그래서 다시는 누구하고도 헤어지지 않을 거라던. 나무 같은 사랑이 떠올랐다. 아니, 그럼 고나무가 송승헌을 닮았냐고? 음… 그건, 직접 확인하시고! 물론, 이름은 본명이며, 아버님이 쑥쑥 크라고 지어준 이름이란다.

“맥주가 좋긴 하나, 맥주 전문가는 아니다.” 아하, 취향의 문제. 전문가랍시고, 어렵게 쓴 글이나 대화는 질색인데, 잘 됐다. “책은 맥주를 열쇳말로 했는데, 맥주가 일상에서 친하나 조명은 덜 된 것 같다. 와인이나 커피, 맥주의 맛 표현은 일맥상통하는 것이 많다.” 맞다. 정말로 그렇다. 벨트의 위치는 다르지만, 그들에겐 공통점도 꽤 있다.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한다. 뭣보다, 취향이 작동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비어홀릭으로서 경험한 바로는, 취향에 관해서는 대화나 타협이 이뤄지기 힘들다. 정치 논쟁과 달리 취향은 말과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피부와 냄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14)

맥주를 마시기 전에, 맥줏집에 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사항. “맥주도 도수가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필스너에서 바디감이 묵직한 것으로 가는 것이 좋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원칙이라면, 쓸데없이 비싼 데는 안 간다. 가격대비 얼마나 괜찮은지가 맥줏집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이 맥주하우스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단다.

“필스너는 라거 맥주 중에서 체코의 필젠 지방에서 시작한 스타일을 가리킨다. 맑고 깔끔하며 홉이 많이 들어가 쌉쌀하다.”(p.104)

첫 번째 마셔볼 맥주는 밀 맥주. 말 그대로 밀이 포함된 맥주로, 향이 약간 자극적이라 고나무도 밤에 글 쓸 때 주로 마시던 맥주란다. 본업이 따로 있다 보니, ‘주경야작(晝耕夜酌)’을 하면서 홀짝홀짝 마셨던 맥주. 고나무의 추천 밀 맥주는요, 에델바이스(오스트리아), 에딩거(독일).

밀 맥주의 대표적인 생산국은 독일과 벨기에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호가든(Hoegaarden?비어헌터 이기중 교수는 ‘후가르든’이라고 부른다!)도 밀 맥주인데, 벨기에 중부 브라방 지역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 호가든이다. 벨기에에서는 밀 맥주를 ‘화이트 비어’라고도 부른다. 잔에 따랐을 때 거품이 커다랗고 진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거품의 흰색이 다른 맥주보다 더 잘 드러난다.

밀 맥주는 중립적인 맛의 라거와 달리 독특한 맛과 향을 지녔다. “밀 맥주를 병에서 따를 때는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먼저 조심스럽게 잔의 80% 정도 따르고 난 뒤, 원을 그리듯이 병을 가볍게 돌려서 거품을 만들어 효모가 든 나머지를 잔에 따른다.”(『유럽맥주견문록』, p.246) 고나무는 호가든 맥주가 수입에서 라이선스로 바뀐 뒤 맥주 맛이 떨어졌다고 평했다. OB맥주에서 라이선스를 하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오가든’이라고 불린단다.

“희고 뿌연 색에 향긋한 풍미를 내는 벨기에 맥주 호가든은 여성들이 특히 좋아한다. 전부 밀로만 만들지는 않으며, 밀 함량이 40~60퍼센트다. 매우 상쾌한 맛을 낸다. 독일어 바이스 비어나 바이젠(Weizen) 비어 모두 밀 맥주를 가리킨다.”(p.53)

어떤 맥주, 좋아하세요?


“당신이 좋아하는 맥주는 뭐죠, 미스터 잭슨? 나도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면 내가 어느 장소에 있고 어떤 기분이며 어떤 순간인지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다. 스타우트일 수도 있고 벨기에 밀 맥주일 수도 있고 비엔나 라거일 수도 있다. 차이 만세(vive la difference)! 혁명 만세(Viva la revolucion)!”(p.137)

한 독자가, 최근 ‘드라이’라는 이름을 붙여 나온 한국의 맥주 신제품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와인을 보면 알겠지만, 드라이가 스위트의 반대 의미다. 워낙 한국 맥주가 드라이한데, 더 드라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재료를 좋은 걸 쓰면 기본적으로 맛있는데, 예전에 외국인 브루마스터(Brew Master?맥주 양조장에서 맥주제조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기술자) 3명을 상대로 한국 맥주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해봤다. 결론이 비슷했다. 공통적으로 OB와 맥스가 낫다고 하더라.”

그에게도 당연히 선호하고 좋아하는 맥주가 있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것이. 벨기에 에일(ale) 중 하나인 듀벨(Duvel). 마트에도 한때 등장했다가 잘 팔리지 않았는지, 없어졌단다. “도수가 8도고, 과일향이 참 좋다. 정말 아쉽다. 우리나라 맥주 시장이 2조5,000억원 규모인데, 수입 맥주는 2,000억원 밖에 안 된다. 수입사들이 면허를 얻기는 쉬우나 영세해서 금방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리되면 듀벨처럼 갑자기 마트에서 없어지는 거지. 산토리(일본)도 들어왔었는데, 어느 순간 없어졌다.”

“맥주 효모는 크게 두 종류인데, 발효통에서 맥아즙을 발효할 때 맥아즙 윗부분에서 활동하는 상면 발효 효모와 발효통 밑바닥에서 활동하는 하면 발효 효모다. 상면 발효 효모는 15~20도에서 활동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로는 에일 맥주, 밀 맥주가 대표적이다. 하면 발효 효모는 이보다 낮은 10도 안팎에서 활동하고, 하면 발효로 만들어지는 맥주를 통틀어 라거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OB라거’라는 제품 이름은 식당 이름을 ‘밥집’이라고 짓고 자동차 제품에 ‘자동차’라는 이름을 붙인 것과 같다.”(p.53)

고나무는 맥주를 마실 때,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출까. 한 독자가 물었다. 향, 맛, 피니쉬 등 어떤 것이냐. “하나만 짚긴 어렵다. 커피나 와인도 마찬가지인데, 향이 중요하고, 그 다음 거품이 올라오는 정도를 보고 라이브 하느냐를 판단한다. 굳이 하나면 꼽으라면 향이다.”

거품에 대해서라면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한다. 맥주를 따를 때마다 거품을 줄이겠다고 용을 쓰는데, 나는 그때마다 기겁을 한다. 모름지기, 맥주엔 거품이 있어야 맛과 향이 지켜질 수 있는 법이거늘. 고나무도 거품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잔의 1/5 정도 거품이 적당히 있어야 하고, 아예 없으면 맛이 없다. 생맥주는 카스나 하이트도 괜찮다. 맥주통 관리만 잘 하면. 생맥주는 효모를 거르지 않아서 병맥주보다 낫다.”

맥주 따르기. “맥주마다 다른 잔을 쓰는데, 입구가 넓은 와인 잔이나 브랜디 잔이 좋다. 처음에 45도 각도로 따르다가 마지막에 ‘거품머리’를 내기 위해 잔을 세운다. 실제로 맥주잔 맨 위의 거품을 ‘헤드(head)’라고 부른다.”(p.43)

여기서 Tip 하나.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는 맥주는, 여과나 가열처리 등에 따라 보관을 달리하는데, 이때도 맛과 향이 달라진다. 숙성된 맥주를 여과나 가열처리 하지 않고 제품화한 것이 ‘통(桶)맥주(cask, 나무통)’로 가장 맛이 좋다. 이어 여과과정을 거친 맥주가 스테인리스통(keg)에 담긴 맥주가 뒤를 따른다. 우리가 보통 마시는 병이나 캔 맥주는 가열처리 등을 통해 효소나 효모의 활동을 정지시킨 것으로, 병 맥주, 캔 맥주 순으로 맛이 떨어진다. 즉, 맛있는 맥주를 원한다면, 여과와 살균처리를 거치지 않은 통 맥주가 가장 좋다.

맥주를 마실 때 즐겨먹는 안주는 뭐냐는 질문도 따라 나왔다. “안주발 세운 적이 별로 없다. (웃음) 안주에 집착하면 맥주를 즐길 수가 없다. 와인은 어느 음식과 잘 어울린다는 ‘마리아주’가 있는데, 맥주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런 게 있다. 읽은 책 중에 브루마스터와 소믈리에가 마리아주를 놓고 배틀을 해서 만든 게 있다. 『인생, 이 맛이다』에도 그런 부분이 약간 언급돼 있다.”

맥주 마시는 재미는, 컵에도 있다. 각 맥주에 맞는 컵이 따로 있다는 사실. 물론, 한국은 그렇지 않지만. “입구가 넓냐 좁으냐의 차이가 있다. 와인, 커피, 맥주 다 그런데, 향과 맛이 공기와 만나는 접점 때문에 그렇다.” 내가 알기로도, 향이 강하고 화려하면 위가 넓게 벌어진 맥주잔이 좋고, 복잡하고 미묘한 향을 가졌다면, 향이 달아나지 않는 좁은 맥주잔이 좋다. 맥주잔은 맥주의 향과 연관을 맺는 한편, 거품과 기포의 모습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각의 맥주마다 어울리는 잔과 온도가 있다.… 잔의 길이와 입구의 너비에 따라 맥주의 풍미, 상태, 외양, 향기 등이 달라진다. 전통과 문화도 잔 모양에 영향을 준다.… 벨기에에서는 심지어 “맥주는 있는데 잔이 없다”며 손님을 쫓아낼 때도 있다고 한다.”(p.138)

맥주 문화, 삶의 결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고나무는 시종일관 자신이 글쟁이임을 강조했다. 기자로서 전범으로 삼고 싶은 책도, 『앗 뜨거워』였다. 파스타를 삶기 위해 <뉴요커>의 기자를 때려 치고 주방으로 들어간 빌 버포드의 이야기. “주방이란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환이 아니라 주방의 정서 등을 정말 실감나게 잘 썼다. 시중에 나온 책 중에 맥주를 문화적 산물로 다룬 책이 많지 않더라. 와인은 그런 게 많은데. 이 책을 통해 그런 걸 발굴하고 싶었다. 맥주가 일상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나 계기로서 작동하길 바랐다.”

그가 단순히 맛, 맛집, 조리법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음식 관련 글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재료가 태어나는 바다와 밭, 생생한 주방 현장, 땀 흘리는 요리사의 즐거움과 고통, 한 접시의 요리와 한 잔의 술이 소비되는 시간과 공간 등 먹을거리의 모든 과정을 들여다볼 때 음식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p.6)

그는 거듭 미식가가 아님을 강조했다. “책에 와인형이니 맥주형 인간이니 하면서 와인형 인간을 좀 깠는데, 나는 편하게 마시자는 주의다. 그래서 약간 까긴 했지만, 와인에 대해선 양가적인 감정이 있다. 허영을 싫어하면서도 미식문화에 대해선 약간 선망도 하는. 전교 30등이 알려줘 봐야 얼마나 잘 알려주겠나. (웃음) 그래도, 전교 1, 2등은 다른 애들에게 절대 자신의 비법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30등정도 되니까, 알려주지.”

그가 ‘망원 브루어리’를 개설하고, ‘브루마스터 고’를 겸직(?)한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책에 나온 유급 휴직 기간, 맥주 양조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맥주를 배우는 과정도 흥미롭다.

“결과물은 신통치 않았지만 브루마스터라는 직업의 정서적 본질을 묘사하고 싶었다. 『앗 뜨거워』에서 저자는 주방에 대해, 욕하고 때리고 칼도 있고 그래서,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공간’이라고 묘사했는데, 나는 브루어리는 에스트로겐이 넘치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맥주가 마실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3주가 걸린다. 중간에 한 단계라도 빠트리면 맥주는 마실 수가 없게 된다. 그만큼 꼼꼼함, 섬세함, 기억의 힘이 중요하다.”

맥주라고 커피와 다르지 않다. 맥주를 만드는 노동이 있고, 맥주가 되기까지의 농작물이 있다. 고나무는 그런 것을 잡아내고 싶었던 라이터였고, 책은 그것의 결과물이다. “맥주가 아니라도 내 안에 욕망이 있어서 뭔가 쓰긴 했을 텐데, 훨씬 나중이 됐을 것이다. 잘 맞아 떨어져서 이번 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맥주당 고나무의 바람은 이어진다. “맥주 브랜드가 다양해졌지만, 스타일이 라거에 치중돼서 안타까운 점도 있다. 벨기에의 듀벨 등 좀 더 다양한 맥주가 수입이 안 되는 것도 그렇고. 에일이 들어와야 더 다양해질 것 같다. 마트는 라거 중심이라는 스타일의 한계가 있다. 맥주 전문가들도 테이스팅 문화를 만들어서 의견을 교환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맥주가 역사를 바꿨다거나 하는 거창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개 속을 오래 걸으면 옷이 젖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일상을 바꾸었을 뿐이다.”(p.33)

후기.

와인 거품은 꺼졌다. 막걸리가 대세라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다만 맥주는 꾸준하다. 치맥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좀 더 다양한 맥주를 맛봤으면 하는 바람, 나 역시도 있다. 커피가 그렇듯, 맥주도 취향을 가늠할 수 있는, 생의 결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무엇이다. 나는 일급의 작가도, 글 잘 쓰는 사람도 아니지만, 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식, 술, 옷, 말투 등은 주의 깊게 관찰”하는 무엇이다.

나도 한때는 기자였다. 그리고 이 사람처럼 직업을 바꿨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의 금융 회사를 다니다가 때려 치고 맥주를 공부하다가 인생의 여자를 만났고 제주도에서 맥주를 담그는 스페인 남자, ‘모던타임 제주 브루어리’의 주인장, 보리스 데 메조네스.

그는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금융업 종사자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하죠. 물론 상대적으로 많이 받긴 합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돈을 번만큼 품위를 유지해야 했어요. 품위 유지에는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금융 위기가 왜 온 줄 아세요? 금융 산업이 항상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기 때문이에요.”(p.163~164)

그런 금융 산업에 때론 야합하고 굴종하는 언론계의 일원으로서 나는 부끄러워서 그곳을 나오기도 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나, 투철한 기자 정신을 갖지도, 올바른 저널리즘을 깊이 고민하지도 않았던 나도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담백한 말을 하고 싶다. “회계적으로 보더라도 하우스 맥주를 운영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에요. 금융업보다 훨씬,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금융업으로 말하자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어요. 그저 그 과정 속으로 들어가 돈을 벌고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이미지를 얻는 것뿐이죠. 그게 제가 변화해 새로운 선택을 한 이유입니다. 난 직업을 바꿨을 뿐이에요.”(p.164)

커피와 맥주가 만나는 메뉴가 있다. 콘 비라. 콘(con)은 이탈리아어인데, ‘~과 함께’(with)라는 뜻이다. 에스프레소 콘 비라, 혹은 맥주 이름에 ‘콘 비라’를 붙이기도 한다. 맥주잔에 에스프레소 싱글의 1/2이나 2/3를 따르고 맥주를 채운다. 쉽다. 어렵지 않다. 다만 주의할 건, 에스프레소를 식혀야 한다. 반대로 맥주를 먼저 따르면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그 위에 부어도 된다.

나름 맛도 괜찮고, 사색하거나 적은 인원이 대화를 나눌 때도 좋다. 감성과 이성이 만난 달까. 취기를 부르는 맥주의 알코올과 사람을 각성시키는 에스프레소의 카페인이 결합하니까.

취함과 각성 사이에서 내 몸과 마음은 외줄타기를 한다. 임범 문화평론가는 이것을 지적인 긴장감이라고 하더라. 내 삶도 맥주와 커피 같았으면 좋겠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커피도 만들고, 맥주도 만들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럼 나는 어떤 인간형이 될까? 커피맥주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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