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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 느림과 비움,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찾아서 - 장석주 『느림과 비움의 미학』

잘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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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비움이라는 제목은 슬로우 시티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40대 사망자가 많은 우리나라엔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 고대의 사상가 장자,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에 살았던 현인 장자는 “반어와 풍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말 한마디로 천하를 들었다 놓고, 웃기고 울리는 사람이었다. 홀로 천지의 정신과 소통하고, 육기의 변화를 몰아 자유롭게 노닐었던 현인이었으며 여러 나라에서 재상 자리를 주겠다고 했으나 다 물리치고 스스로 가난에 처해 민중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았다. 그런 장자의 사상이 2300년이나 지나서도 우리에게 회자되는 것은 장자가 살았던 그 난세의 시대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그다지 다름이 없어서일 것이다.

“사마천에 따르면 『장자』는 본디 10여만 자에 이르는 책이다. 우리가 읽는 『장자』는 곽상이 편집한 것으로 「내편」 일곱 편, 「외편」 열다섯 편, 「잡편」 열한 편으로 합쳐 서른세 편으로 이루어진 판본이다.” 조선의 선비들도 『장자』를 즐겨 읽었으며 지금도 꾸준히 풀이되고 출간되는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장자』다. 그런 장자의 사상 중에서 ‘느림과 비움의 희망’을 찾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장석주 시인이다. 시인이 풀어낸 장자의 사상은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쉽게 읽힌다. 시인은 왜 하필이면 『장자』에서 ‘느림과 비움’을 찾았던 것일까? 지난 6월에 장석주 시인을 독자들과 만나 그 이야길 들었다.

장자를 읽다

딸을 만나러 미국에 다녀오는 길이라던 장석주 시인은 귀국하자마자 집에도 들리지 못한 채 만남의 장소로 나왔다. “전날만 하더라도 지구 반대편 플로리다의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지내다가 하루 만에 이곳에 와 있으니 놀랍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장자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장석주 시인이 장자를 읽기 시작한 것은 10년쯤 전이라 한다. 2000년 여름에 안성으로 이사를 가며 본격적으로 장자와 노자를 읽었다. 장자는 100번 정도 읽었고 관련 책만 50~70권을 읽었다. 노자는 외울 정도란다.

『장자』는 첫 장면부터 곤이라는 물고기가 붕으로 변하는 대붕의 이야기를 시작하여 기를 죽인단다. “남쪽 바다로 갈 때, 파도가 일어 3천 리 밖까지 퍼진다. 대붕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타고 여섯 달 동안 9만 리 장천을 날고 내려와 쉰다. 얼마나 스케일이 크면 날갯짓 한번에 3천 리 구름을 드리우는지 놀랄 일이다. 옻나무 숲을 관리하는 말단 관리였던 장자는 나무 이야기도 자주 했는데 어찌나 큰 나무인지 그 나무 그늘아래서 소가 천 마리나 쉴 수 있었다.” 장자의 엄청난 상상력은 한번 접하면 압도를 당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장자』를 읽으며 시인이 놀라워 한 것은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3000년 전이라면 지금과 같은 공유 수단이 없었을 텐데도 장자는 지식을 전했다. 그것도 핵심만을 전달한다. 그 방법은 『장자』의 「외물」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장자가 가난하여 감하후에게 양식을 꾸러 갔더니 감하후가 말했다. “좋습니다. 이제 연말이면 봉토에서 세금을 걷을 터인데 그때 돈 3백을 꾸어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까?” 장자가 마땅치 않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어제 이리로 오는데 길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었소. 돌아서 봤더니 수레바퀴 웅덩이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소. ‘붕어야, 무슨 일이나?’ 고 물었더니, 붕어가 ‘나는 동해의 파도를 담당하는 관리인데, 선생께서 물을 한 말이나 한 되만 길어다 주시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합디다. ‘좋다. 내가 지금 남쪽 오나라와 월나라로 가는데, 가면 반드시 서강의 물을 막았다가 한꺼번에 흘려보내 너를 맞도록 하마. 그만하면 되겠느냐?’ 그랬더니 붕어가 화난 얼굴로 ‘나는 상도를 잃고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라오. 그저 물 한 말이나 한 되 있으면 살 수가 있겠는데, 선생께서 그런 말을 하시니, 차라리 건어물점에나 가서 나를 찾는 게 낫겠소.’

한 되나 한 말의 물이 없으면 곧 생명을 잃을 물고기에게 서강의 큰 물길을 흘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물고기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한 되나 한 말의 물이다. 감하후가 장자의 그 우화를 듣고 돈을 빌려주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옻닭을 관리하는 말단공무원이었던 장자는 늘 가난했다. 하루는 곡식이 떨어져 감하후에게 곡식을 꾸러 갔는데 기다리면 더 많은 돈을 빌려준다고 하자 붕어를 빌어 감하후의 어리석음을 깨우친 것이다.

장자가 살았던 때는 난세의 시대였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바뀌고 권력과 폭력이 판을 치던 때였다. 그런 시대에 장자가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명예나 부를 버리고 자연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관리들이 찾아와 중책을 맡기려 했으나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재능을 뽐내려 하지 않았다. 나서지 않는 것,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방법이다. 내공을 쌓으면 웬만한 공격은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장자는 흑백논리를 쓰지 말라고 했다. 경계라는 말이 있는데 경계인으로 사는 것이 좋다며 시인은 예를 하나 들었다.

스승 밑에 있던 두 스님이 만행 길에 올랐다. 강가에 다다랐는데 예쁜 처자가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한 스님이 여자를 업어 건네주고 다시 길을 떠났는데 한참을 가다가 다른 스님이 그 스님에게 말했다. “스승님이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라 했는데 너는 왜 그걸 어기고 여자를 업어 강을 건넜느냐?” 하자 여자를 건네준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그 여자를 강만 건네주고 내려놓았는데 네 마음은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있구나!” 했다. 누가 더 위인지 알 것이다. 한 스님은 흑백의 분별을 하였고, 다른 스님은 분별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여자나 남자가 아니라, 자비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다른 스님은 소승적 원리 규범으로 법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본질을 놓치고 만 것이다. 분별하지 않는 것, 그게 장자의 가르침 중에 하나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공자의 말이다. 사람은 타고난 그대로 본질대로 살라는 게 장자다. 장자는 물속의 물고기에게 물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 물 밖의 물고기에게는 물을 끼얹어야 한다. 그런 차이다.

독서의 전문가, 장석주 시인

액체가 기체로 변할 때는 100도라는 임계치가 차는 순간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웃라이어』에 ‘어떤 부분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있다. “그건 하루에 세 시간씩 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해야 전문가가 된다는 뜻”이라 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들은 항상 뭔가가 되고 싶어 한다. 지금의 나가 아니라 다른 무엇, 조금 더 고양된 존재 혹은 높은 단계의 삶을 바란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장석주 시인은 매일 새벽 3시에 읽어나 12시까지 책을 읽고 일을 한단다. 하루가 무척이나 긴 셈이다. 또 12시가 되면 일을 손에서 놓고 산책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러 다닌다. 그제야 가장 활발한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겐 다들 그가 놀기만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는 쫓기면서 일을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원고를 쓰는 일이 즐겁다며 원고 마감은 철저하게 지키는 ‘품질보증, 시간완수,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라며 웃었다. 나름 세상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 바로 시인인데 책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한다. 그 와중에 영화도 보고 연주회니 뮤지컬도 관람해야 한다. 그가 그 많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쓸데없는 술자리? 마다하고 불필요한 만남을 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인은 가급적이면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난다. 그러면 하루가 굉장히 길고 그 하루 동안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시인의 습관도 알고 보면 저절로 온 것은 아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일이 어찌 그냥 오겠는가. 시인의 말처럼 시간과 노고가 필요한 일이다.

책을 읽고 나면 95%는 잊어버린다며 망각은 텍스트의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는 장석주 시인은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지 않고 보는 편이다. 그가 책을 기억하는 방법은 좋아하는 저자가 있으면 그 저자의 전작을 읽어버리는 거란다. 수전 손택이 그랬고, 발터 벤야민, 니체가 그랬다. 자칭 ‘독서의 전문가’라고 말하던 시인은 의외로 책을 ‘못’ 읽는 사람들이 많다며 독서에도 훈련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꽤 많은 책을 장르에 상관하지 않고 읽는 편인데 읽기만 해서 지식이 축적되는 것이 아니니 무조건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며 읽은 책들을 분류, 합성하여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인으로서의 할 일이라 했다. 그런 방식의 칼럼을 장석주 시인은 <장석주 시인의 인문학 산책>이라는 코너로 세계일보에 올리고 있다.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고 칼럼을 쓴 후 관련된 책을 추천 소개해주는 일이다. 그동안 결혼, 사랑, 축구 등 다양한 키워드로 칼럼을 써왔다. 장석주 시인은 책을 많이 읽은 만큼 펴낸 책도 많은데 그동안 58권의 책을 펴내고 지금도 10권 정도의 책을 쓰고 있으며 올해 4권의 책이 더 나올 생각이란다. 와우! 정말 다작이다. 그는 책 읽고 칼럼을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신문사나 월간지, 사보와 같은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느림과 비움에 대하여

장석주 시인이 책 제목에 ‘느림과 비움’을 넣은 것은 의도하지 않은 거라 했다. 우리 시대야말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삶은 그냥 살아지는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라는 거다. 잘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장자를 읽으면 그 해답이 나온다. “복잡한 제목은 싫고 느리게 살자는 게 핵심인데 속도에 저항하고 느리게 사는 것, 필요한 사람과 자기 시간, 자기의 어떤 것을 나누는, 또한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이 있는데 생각지도 않았을 때 받으면 기쁜 것처럼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 한데 이 단순한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고 만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

느림과 비움이라는 제목은 슬로우 시티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40대 사망자가 많은 우리나라엔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빠른 속도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에서 오는 삶의 스트레스를 줄여보자는 것이 슬로우 시티의 개념이다. 스트레스는 암의 원인이 되고 몸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느림과 휴식은 중요하다. 어떻게 잘 노느냐! 가 창의력을 살리고 어떻게 잘 쉬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바로 슬로우 시티이다. 개념은 슬로우 시티와 장석주 시인이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화도 잘 내고 성격이 급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시인의 나이를 모르는 사람은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란단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사실은 좀 놀랐다. 세련된 차림새에 도회적인 모습을 풍기며 아이패드 같은(이날 아이패드의 등장으로 잠시 동안 나는 왕눈이가 되어버렸다!) 최첨단 기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노자나 장자를 운운한다는 게 어쩐지 안 어울렸으니까. 시인이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느림과 비움을 말하는 사람이 왜 그런 문명의 기기를 사용하느냐고 하지만, 도구와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며 근본적으로 기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다루는데 있어서 어렵지 않기에 그냥 쓰는 거라 했다. 하긴 문명적인 기기를 다룬다고 장자니 노자를 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건 일종의 편견이다.

마지막 질문으로 독자가 20~3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시인은 책을 많이 읽으라 했다. 책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독선생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준단다. 또 여행을 많이 다니길 바라며 기회가 된다면 자신을 위해 배낭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좋은 일이라며 말을 끝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만남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이꾳의 참석자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었다는 게 특이했지만 고리타분할 것 같은 철학서를 여자들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가 살면서 알아야 할 좋은 글들이 그 속에 많이 들어 있고 장자를 너무나 쉽게 잘 설명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장석주 시인에게 더 많은 이야길 듣고 싶었지만 피곤한 여정을 보내고 온 터라 더 붙잡을 수는 없었다. 이 날은 ‘장자’니 ‘느림’이니 ‘미학’ 같은, 왠지 지루할 것이라는 내 편견을 완전히 깨트려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책, 『느림과 비움의 미학』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시 읽고 싶은, 읽는 내내 수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었다. 즐거웠다. 덕분에 장자를 알게 된 일은 행운이나 마찬가지며 조만간 장자를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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