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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북살롱] ‘시 쓰는 김경주’가 벌인 시의 성찬, 시의 매혹! - 『시차의 눈을 달랜다』 김경주

“내가 하루 중 가장 예쁜 순간은 시를 쓰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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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북살롱의 주인공은 김경주 시인! 현대시를 이끌어 가는 젊은 시인, 주목해야 할 젊은 시인……. 시인이 받을 법한 대부분의 찬란한 수식어를 거닐고 다니는, 하지만 어느 때에도 버거워 보이지 않는 그가 1월 25일 독자들을 북살롱으로 초대했다.

1월의 북살롱의 주인공은 김경주 시인! 현대시를 이끌어 가는 젊은 시인, 주목해야 할 젊은 시인……. 시인이 받을 법한 대부분의 찬란한 수식어를 거닐고 다니는, 하지만 어느 때에도 버거워 보이지 않는 그가 1월 25일 독자들을 북살롱으로 초대했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기획 일도 맡은 바 있으니 이곳이 낯설지는 않을 터. 헌데 이날 김경주 시인, 독감 인플루엔자와 사투를 벌이던 중이었다. “연말까지 공연 작업을 했는데, 정작 내 공연을 할 때 이렇게 기운이 빠져서 어떻게 하나 싶지만,(웃음) 편안한 응접실에 왔다고 생각하시고 과감 없이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날것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자 하니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러니까 오픈 마인드! 사진 속에 그는 깊숙한 눈동자와 무겁게 닫은 입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날, 직접 만난 김경주 시인은 사진보다 훨씬 부드러운 선을 지닌 사람이었다.

“기존의 딱딱한 낭독 공연 말고, 군데군데 지루하지 않게 마임이나 극이 함께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아마 이 자리에 모인 독자들 역시, 단순한 낭독 공연을 기대하고 모인 것은 아니리라. 복합문화창작집단 ‘츄리닝 바람’의 김경주 시인이라면, 단순히 시를 들려주기만 하랴. 그의 시를, 그 고유의 감수성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될 테지. “아주 멀리 보면, 저를 선배로 볼 수 있겠죠. 강단에도 서지만 저는 한번도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시 쓰는 김경주’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 “시 쓰는 김경주가 시를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보여 주신단다. 그의 시가 이곳, 상상마당 카페에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향기를 풍길는지!


우리의 삶은 시차들로 이루어진 흔적

“줄곧 생각해 왔던 시차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었다.”는
김경주 시인.

이번에 발간된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는 마치 여행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이것은 시차의 여행이다. 김경주는 “우리의 삶이 굉장히 많은 시차들로 이루어진 흔적들이 아닐까.” 질문한다. 일상 속에서 감각하지 못하는 시차들을 불러 세운다. 시차의 틈을 벌려, 이제껏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 이곳을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마치 일상 속에서 여행하는 법을 알려 주는 것만 같다. 제28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세 번째 시집은 김경주 자신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데뷔한 이후로, 줄곧 물어 왔던 하나의 주제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시차’에 대한 것인데, 우리는 대개 여행을 다닐 때 시차에 대한 직접적 체험을 하게 되죠. 과학적이고 물리적인 현상이지만, 우리가 겪는 감정의 일종의 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에는 그런 시차들에 대한 이야기를 쭉 담고 싶었습니다.” 김경주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여독」을 첫 낭독 작품으로 골랐다.

집에 들어와 머리를 감다가 누군가 마지막으로 따뜻한 물에 머리를 감겨 달라던 시제가 떠오릅니다. 그건 진티엔에서 밍티엔까지 기차의 침대칸에 누워 창밖으로 엄마가 이륙한 날을 떠올리던 날, 눈동자가 물색이 되어 가는 눈병에 걸린 누나가 자신의 별에 두고 온 문을 잔 속에 넣고 흔들던 시간, 발착해서 도착까지 내가 만든 내륙이 멍드는 일입니다

누군가 죽은 내 머리칼을 닦아 주는 순간에 떠오를 시제는 색깔을 처음 배우던 느낌, 새들의 피로 그린 지도 속에서 날아다니는 연을 쫓다가, 단 몇 초간 바라본 시야가 한 사람의 유적이 될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 밤에 각획선을 타고 가 보았던 나루터에선 빨래가 가장 아름다운 깃털처럼 흔들리고 혁명은 물속에서 욕조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다가 잠들고 싶은 시제입니다 이 별이 바위를 운행하는 별이라 다행입니다 그 별에서의 이별은 밤마다 한 눈이 다른 한쪽 눈을 구출하는 시간이어서 더욱 다행이고
- 「여독」중(p.30)

이 작품을 제일 먼저 낭송한 까닭을 묻자, 그가 되물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어느 공간이 가장 설레세요?” 김경주 시인은 주저 없이 “공항”이라고 말한다. “공항이 설렐 수 있는 건, 저기서 여기, 여기서 저기의 사이의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시는 사이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감정의 물감이 아닐까 싶어요. 세상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선명하지만 희미하고, 때로는 희미하지만 너무나 선명한 것들이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행을 하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이티 지진, 사천성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똑같았다고 합니다. 너무나 끔찍스러운 공포감과 경악과 충격으로 한 가지 표정만 나타난대요. 여진이 밀려올 때야, 다양한 참혹한 표정들이 발산되면서,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행의 매력은 거기서 느끼는 설렘도 있지만 다녀와서 느끼는 여진, 여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몇 장으로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오는 것 정도로는 시차를 달래기에는 너무 약합니다. 그저 기억의 힘으로 ‘그곳에 내가 분명 있었지.’ 하고 달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시집에서는 분명했던 것, 선명했던 것 이후에 오는 여진들을 담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여행의 기억들은 곧잘 그리움으로 희석되고 만다. 대개 여행의 기억들은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기보다는 감정적인 것, 그리움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사진 한 장은 그곳에서 웃고 있는 내 모습 이상을 보여 주지도, 들려주지도 않는다. 그는 좋은 여행법을 알려 주겠다며, “여행을 다닐 때에는 카메라를 들지 말라.”고 말했다. “여행은, 내가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여행기를 쓸 때도 장소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여행했느냐가 중요하지.”

그는 카메라보다 레코더를 들어 보라고 권한다. “여행지 가서 녹음기를 계속 켜 놓고, 마구 녹음해 보세요. 그곳에 있는 소리를 채집해 오는 겁니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도 라디오로 별빛, 달빛을 녹음하잖아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더라도 곳곳의 종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싸우는 소리, 바람 소리를 담아 보세요. 시간이 흐르고 그 공간이 아득해졌을 때, 그 소리를 들어 보세요. 엄청난 상상력을 가져다줄 거예요. 대신 녹음기에, 절대 자신의 목소리는 넣지 말 것! 나중에 엄청나게 부끄러워지거든요.(웃음)” 이것이 그의 여행법이다. 여행 산문집 『패스포트』를 발간하고 전시회를 가졌을 때, 그가 여행지에서 녹음해 온 소리를 틀어 주곤 했었단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소리 채집이라, 상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시 쓰기, 삶에 느낌표를 찍어 주는 일

여행을 좋아하는 그답게, 그의 시에는 유독 여행, 시차,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한 독자가 물었다. 그의 시 속에 부는 바람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고. 시차를 이야기하는 시인 김경주에게, 바람 역시 그것과 맞닿아있다.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바람뿐만 아니라, 음악도 있고 눈도 있죠. 시를 태동시킬 때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많은 시인들이 단어의 이물감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어를 자꾸 발음해 볼 때 입에서 느껴지는 질감을 이물감이라고 하는데, 바람이라는 단어도 질감이 참 좋습니다. 바람의 속성도 시차와 닿아 있을 듯해요. 경계 없이 흘러다닐 수 있고, 우리가 죽고 나서도 몇천 년 후에도 이 공간에 흘러다닐 테니까요.”

“인도 향을 선물 받은 날 다리를 좀 절었고 시차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집에서만 지내는데도 망각이 필요하다는 사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데에도 기억은 수십 종의 식물을 달고 간다 어쩐지 너의 여행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많은 종의 연필이 필요할 것 같아서 흑마를 탈까? 백마를 탈까? 청기를 들까? 백기를 들까? 여행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침묵의 차이 같아……”(p.39)라고 끝맺는 시, 「시차의 건축」을 그의 목소리로 음미하고, 우리는 구체적으로 시차를 상상해 보기로 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았던 나비의 입술을 호명하는 시 「나비의 입술 속으로 들어간 밤」은 짧은 극 무대로 준비되었다. 연극배우 선경선 씨가 낭독하고, 김지연 씨가 막대로 만들어 낸 나비 그림자를 움직였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시, 「나비의 입술 속으로 들어간 밤」

고요한 무대 위에 한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한 줄의 시가 한 마디의 대사가 된다. 느릿하고 오묘한 선율의 배경 음악에 실려, 배우의 음성은 금세 무대의 기운을 응축시킨다. 손끝으로 나비의 날개를 붙드는 배우, 순간의 정적, 독자들은 살짝 숨을 멈췄으리라. 시가 만들어 낸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나비의 입술을 보았거나 혹은 상상했다. 배우 강지연 씨는 “이 시를 아무리 읽어도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읽을수록 새로운 느낌이 든다고 해서 계속 읽었어요. 그러니 환상적이고 몽환적이고 애잔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렇게 느끼는 것도 시인가보다.’ 하는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웃음)”

그러자 이 말을 들은 김경주 시인이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시집을 한 권 내는 데 3년이 걸려요. 그렇게 오래 걸려 나온 시가, 세 시간도 투자하지 않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아요.” 시가 무르익는 3년의 시간, 내가 시를 읽는, 아니 어쩌면 훑어보는 삼 초의 시간. 어쩌면 내가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시에게 말을 거는 방법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좀 더 천천히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나의 말투, 나의 언어가 아니라 시의 언어로 말을 걸었어야 했는데, 공연히 시가 뜻도 감상도 내어 주지 않는다고, 불친절하다고 치부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더랬다.

그가 시에게 말 거는 법에 대해 좀 더 이야기했다. “시인은 느낌표 공동체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마침표를 찍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지만, 우리는 느낌표를 찍어 주고자 합니다. 시는 이해의 세계라기보다는 감의 세계예요. 조금만 더 능동적이면, 시인이 주려는 걸 더 많이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러티브의 매력은 개연성에 있지만 상징적인 시는, 따라가다 보면 이해할 수 있겠지 하는 믿음으로 보는 겁니다. 시에는, 개연성은 없어도 이미지의 논리가 있어요. 시어가 가지는 고유한 떨림을 즐기다 보면 시가 주려는 것을 충분히 다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 쓰는 김경주에게, 독자들은 그의 시 쓰기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김경주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읽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한 독자는 ‘가끔 내가 쓴 글을 보면, 이게 정말 내가 쓴 문장일까 싶을 정도로 낯선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하자 그 역시 공감했다. “기시감이 느껴진 적이 수도 없이 많죠. ‘내가 썼지만 장난 아니다.’(좌중 웃음) ‘내가 나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생각에 하루를 견디고,(웃음) 너무 참혹해서 그 방에 일주일도 들어가기 싫은 날도 많아요. 하루에도 끝도 없이 우월해졌다가 끝도 없는 열패감에 시달리는 거죠. 위대한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정말 위대한 것도 있지만, 그의 작품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언어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그에게, 시의 외연을 넓히는 활동들에 대한 소견을 묻기도 했다. “가능성을 공유하는 집단, ‘츄리닝 바람’의 작업이 바로 그러한 일이죠. 문학은 죽을 때까지 열려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후배나 동료들의 등을 두드려 주는 사람만 있으면 (이런 활동은) 계속할 수 있겠다 싶어요. 실내 야구장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야구를 하는 친구와 삼류 야구 프로단에서 벤치만 지키는 친구 중 누가 더 실력이 좋을까요? 저는 후자가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야구 연습만 하는 친구는 필드가 뭔지 모르고, 홈런이 뭔 줄 모를 거예요. 그가 실제 필드에 섰을 때는 엄청난 공포감과 야유 속에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벤치를 지키던 친구는 한 번 뛰더라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즉, 그만큼 현장 경험, 필드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씀. “젊어서 발을 아끼지 말라는 말이 있죠. 발을 움직이다 보면 머리는 저절로 따라오는 거거든요. 문학도 가만히 앉아서 형이상학적 작업만 하는 게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발을 움직여서, 매혹적인 작업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당부에, 몇몇 독자들은 수첩에 그의 말을 메모해 두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만의 매혹적인 작업을 꿈꾸고 있는 이들이리라.


예술은 재능보다 용기의 문제

아코디언 연주를 타고 흐르는 그의 목소리가, 또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김경주의 시가 보여주는 매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대웅이 무대에 올라 강렬한 마임 동작을 선보였다. 그는 맨발로 그 자리에서 걷고 뛰고, 당기고 쏠리는 움직임을 통해 시의 몸으로 읽어 냈다. 이어 이아림의 아코디언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김경주가 시를 한 편 더 낭송했다. “한 번은 쓰다듬고 한 번은 쓸려간다. 검은 모래 해변에 쓸려 온 흰 고래.”(p.46) 이제는 무대 위에 없는 최대웅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방 안에 누워 그대가 내 머리칼들을 쓸어내려 주면 손가락 사이로 파도 소리가 난다 나는 그대의 손바닥에 가라앉는 고래의 표정, 숨 쉬는 법을 처음 배우는 머리카락들, 해변에 누워 있는데 내가 지닌 가장 쓸쓸한 지갑에서 부드러운 고래 두 마리 흘러나온다 감은 눈이 감은 눈으로 와 서로의 눈을 비빈다 서로의 해안을 열고 들어가 물거품을 일으킨다
- 「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 중(p.47)

“해변으로 떠내려온 물색의 별자리가 휘고 있다.”(p.47) 김경주 시인이 펼쳐 놓은 물색의 별자리가 가시기 전에 조보나 화가가 이어 시를 낭독했다. “한참 새벽이 되면, 밤하늘도 표정을 바꾸지만, 어쩐지 사물들도 표정을 바꾸는 것 같아 더 외로워지더라고요. 제 친구들이 제가 불면증이 있다는 걸 알고, 새벽에 가끔 문자를 보내는데, 며칠 전 깊은 밤에 ‘자니?’라는 문자를 받았어요. 그때, 엉엉 울었어요.(웃음) 그 문자를 받고 이 시가 떠올라 낭송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읽어 준 시는, 이 시집에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시, 「먼저 자고 있어 곁이니까」.

진정제를 맞고 나는 웃는다 / 이상한 매를 맞은 소년처럼 웃는다 / 책상 서랍에 두고 온 책받침 생각처럼 / 웃는다 / 문을 만지면 / 손바닥이 노래진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너한테 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없었지만/ 말을 사랑하는 우리의 숫자들이 웃는다/ 문을 열면 / 회복실일까?

이야기나 짜는 생활이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되지 / 이 이야기를 생활로 바꾸어도 시가 되지도 않겠지만 / 문을 닫아 두면 / 줄타기나 줄넘기나 거기서 거기란 생각

어느날 이상하게 슬픈 플립을 연 후 / 잠들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먼저 자고 있어 곁이니까

내 눈에게 보내는 타전이었다
- 「먼저 자고 있어 곁이니까」 중(p.119)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마지막 문장이 그녀의 입속에서 두근두근 걸어와, 마음에 와락 안긴다. 시의 성찬이 벌어진 오늘의 북살롱! 마지막 무대로 인디밴드 데이드림의 류승재 씨가 노래와 함께 시를 들려주었다. 그가 읽은 시는 이 시집의 서문, “시집을 딱 펼쳐보니 이것이 보였다.”며 첫 장을 읽었다. “너의 수증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 내가 모르는 마을 속에서 언제나 네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거야 // 미안, / 여기를 ‘시차(時差)의 사회’라고만 부를게 // 2009년 겨울, 나는 공항 / 김경주” 맨 마지막 장의 시와 첫 장의 서문을 듣고 나니, 90여 분간의 시간 동안 책갈피 갈피에 숨어 있는 시차를 경험한 것 같다. 그렇게 첫 장으로 시집을 닫았다.

여러 독자들이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독자들에 질문에 대답해주고 있는 김경주 시인.

김경주는 “시를 쓰고 있는 상태만 시인”이라고 말한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예쁜 순간은 시를 쓰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이 시인은 스스로를 프로라고 말한다. “프로는 아마추어와 달리,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조기 축구를 하듯 쓰는 게 아?라, 매일 글을 쓰고 매일 시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문학적인 평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데뷔하고 오랫동안 먹고살기 위해 생계형 글쓰기를 오래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데뷔 전에는 ‘시를 정말 잘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면, 데뷔 후에는 ‘시인은 뭐지? 시인은 이 시대에 어떤 걸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장소에서도 ‘시인 김경주’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저 ‘시 쓰는 김경주’입니다. 시인이란 존재는 이 시대에 정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문학이건 예술이건 재능의 문제보다는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용기를 갖는 것 자체도 재능일 수 있겠죠. 여러분도 용기 때문에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북살롱의 무대는 막이 내렸는데도 한참이나, 마음속에서는 잔잔한 여진이 남았다. 시차, 혹은 시, 여행, 김경주……. 오늘 나와 접촉한 단어들이 뒤섞여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밤길의 감상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시를 향해 정중하게 노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징처럼 머금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라 보기도 해야겠다. 시가 입을 여는 순간,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내게만 속삭여 줄지도 모른다. 김경주 시인은 “늘 시를 쓰기 위해 시적인 상태를 몸에 예열하려고 노력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의 이 마음은 시와 접속할 수 있을 만큼 예열된 상태일지도 모른다. “늘 어느 정도 미열을 갖고 있어야 시가 온다.”는 그의 말은 비단 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터. 어쩐지 비밀스러운 것을 갖게 된 것마냥 히죽히죽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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