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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계의 우디 앨런을 소개합니다'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의 저자 게리 슈타인가르트

소설 밖에서 작가가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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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의 세계이지만 실재하는 장소를 연상케 하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소설을 써내는 작가 게리 슈테인가르트는 미국 문단에서 익살과 신랄함으로 빛을 발하는 젊은 작가다.

나는 작가를 직접 만나보기 전,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을 읽으면서 주인공 미샤 바인베르크처럼 뚱뚱한 작가를 상상했다. 그런데 5월 29일, 직접 만나본 게리는 서양인으로서는 오히려 왜소한 느낌을 주는 호리호리한 쪽이었고, 서글서글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책 속에 등장하는 미샤 바인베르크(이하 ‘미샤’)가 여러 면에서 자신과 상당히 유사한 인물이라고 한다. 우선 그도, 소설 속에서 러시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살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미샤처럼, 구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8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에 온 이민자다. 또한 미샤처럼 유대인이며, 미샤가 다문화학을 공부한 ‘어쩌다보니 대학(Accidental College)’과 비슷한 분위기인 오벌린 대학(Oberlin College)에서 조르지아, 몰도바, 타지키스탄의 구소련공화국에 대한 논문으로 정치학 학위를 받았다.

가공의 세계지만 실재하는 장소를 연상케 하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소설을 써내는 작가 게리 슈테인가르트(이하 ‘게리’)는 미국 문단에서 익살과 신랄함으로 빛을 발하는 젊은 작가다. 그는 데뷔작 『사교계에 데뷔하는 러시아 여자들의 안내서』(2002년)로 <뉴욕 타임스>의 ‘주목해야 할 도서’, <워싱턴포스트> 및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올해의 도서’, <가디언>의 ‘올해 최고의 데뷔작’으로 선정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2006년)은 구소련 붕괴 이후 혼란을 겪는 러시아?동유럽?중앙아시아 국가를 모티브로, 비뚤어진 아메리칸 드림, 정실자본주의, 다문화주의 등의 변화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다룬, 희극적 색채가 짙은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이달의 책’에 선정된 데 이어, ‘2006 최고의 소설 10’의 목록에도 그 이름을 올리면서, 이 젊은 작가를 미국 문학계에 중심적인 인물로 올려놓았다.

“(슈테인가르트는) 나보코프와 솔 벨로, 카프카와 우디 앨런에 비견할 만하다. 이들과 꼭 같이, 그 역시 러시아인이면서 유대인이며, 음험한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익살맞다. 그 재능 또한 대단하다.”(<뉴어크 스타-레저>)

위의 평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묻는 말에, 게리는 자신에 대한 평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찬사라며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솔 벨로는 캐나다에서 주로 활동한 굉장한 유머 작가다. 그가 러시아와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나와 공통점이 있다. 나 역시 러시아 출신으로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러시아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의 좋은 식당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식당을 ‘1913년’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그 해가 러시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은 소련이나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억압된 사회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결국 러시아에서는 문학을 하기에 풍자가 가장 이용하기 쉬운 문학 도구였던 것이다.

한편 세계적인 작가인 우디 앨런은 문화적인 표현력이 강한데, 그에게서도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의 영화에는 정신적 장애나 결핍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자기비판적이고 완벽에서 조금씩 모자란 부분에 대해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우디 앨런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우디 앨런처럼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열등감을 드러내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실제 미국에 사는 많은 유대인은 집안에서는 미국 영어의 사용을 금지하면서도 집 밖에서는 미국 문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우디 앨런은 가벼운 신경증을 앓고 있는데, 이는 이민자 대다수가 겪는 정신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내 작품 속의 주인공 미샤 역시 우디 앨런이나 앨런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정신과 의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이런 점들이 우디 앨런과 내가 가진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게리는 유대인이자, 지성인이자, 위대한 문화생산자인 우디 앨런의 수다와 유머를 지녔다. 더군다나 둘 다 뉴요커가 아닌가? 그런데 우디 앨런이 대체로 뉴욕에서 영화 제작을 한 점과는 달리, 게리는 첫 작품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두 번째 작품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은 이탈리아에서 집필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작가로서 느끼는 스트레스 및 압력과 상관이 있을 듯싶다. 그는 한 작품을 쓰고 나면 기쁨도 있지만, 스트레스와 압박도 있기에,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끔 견디기 어려울 때면 뉴욕에 있는 찜질방(정확히 ‘찜질방’이라고 발음했다)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찜질방에 다니는 게리는 ‘해장국’ ‘설렁탕’ ‘순두부’ 등의 한국 음식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공부해’ ‘피아노 쳐’ ‘텔레비전 꺼라’ 등의 우리말로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해 개인적인 친밀감을 표현했다. 이는 그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학생 중 30%가 한국인일 정도로 주변에 한국인이 많았고, 이창래(『영원한 이방인』의 저자)의 문예창작 수업을 수강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특히 이창래 교수로부터 미국인 작가의 순수 혈통 미국 문학과는 다른, 이민 생활의 실제적인 상황을 그려내는 이민자 문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며, 작가로서의 성취를 그의 덕으로 돌렸다.

게리의 문학적 배경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러시아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그의 할머니는 게리가 너덧 살 때부터 글쓰기를 훈련했다고 한다. 그가 글 한 편을 쓸 때면 치즈 한 조각씩 주는 방식으로. 그런 탓에 어린 시절 게리는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의 주인공 미샤처럼 뚱뚱했지만, 그때 이미 소련이 핀란드를 침략하고 혁명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은 『레닌과 거위』라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다.


아메리칸 드림과 자본주의를 풍자한 발칙하고 신랄한 소설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지도에서 열심히 ‘압수르디스탄’이란 나라를 찾아봤자 소용없다. 영어 단어에서 ‘터무니없는, 불합리한’이라는 뜻의 ‘absurd’와 중앙아시아 국가 이름에서 흔히 보는, ‘땅’을 뜻하는 ‘-stan’의 합성어로 만든 가상의 나라기 때문이다. 압수르디스탄은 러시아의 남쪽에 있는 이란 근처의 산유국이다. ‘카스피해의 노르웨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장밋빛 미래가 예견되는 나라로, 500억 배럴 분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국민은 300년에 걸친 ‘십자가 받침 분리 전쟁’ 이후 극심한 대립 양상을 보이는 스바니 족과 세보 족이다. 이 나라의 사회는 뇌물이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할 정도로 부패해 있다.

러시아 1,238번째 부자의 아들인 미샤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 뉴욕에 가려고 미국 비자를 신청한다. 그러나 과거 미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아버지의 전력 때문에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중동의 작은 나라 ‘압수르디스탄’에 가면 벨기에 위조 여권을 살 수 있다는 정보를 듣는다. 미샤가 압수르디스탄에서 벨기에 여권을 구한 순간, 내전이 일어난다. 스바니 족 출신인 독재자 게오르기 카누크에 대항해 세보 족 반군이 내란을 일으킨 것이다. 유럽으로 석유를 보낼 송유관이 스바니 족과 세보 족 구역 중 어느 곳을 통과해야 할 것을 두고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육감적인 몸매의 나나와 사랑에 빠진 미샤에게, 그녀의 아버지 나나브라고프는 이스라엘에 지원을 청해 미국 내 유대인으로부터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그를 ‘다문화부 장관’으로 추대한다.

그런데 내전이 진행될수록 전쟁 배후에 대해 의혹은 짙어지고, 실제로 압수르디스탄에는 석유가 고갈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내전은 전(前) 독재자 게오르기 카누크와 반군 중심 세력인 SCROD가 비밀리에 연출한 전쟁으로, 순전히 미국의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석유를 미끼로 미국 기업을 끌어들였으나, 석유가 없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호미로 막지 못한 거짓 사건은 굴착기로도 막지 못하는지, ‘종족 말살 전쟁’ 정도가 되어야 미국이 평화유지군이라도 파견할 거라는 시나리오가 준비되는데….

게리는 소설 속에 나오는 이 전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지만, 소설 속 가공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희화화는 작가의 작위적인 묘사가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실재보다 더 실재감이 있는 허구라 정말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소설 밖에서 작가가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


러시아 1,238번째 부자인 148kg의 거구 미샤 바인베르크의 한심함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남들을 돕고 싶은데, 여기서는 도무지 착해질 수가 없어요. 설사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해도, 나는 그게 뭔지 몰라요. 나는 무섭고, 외롭고, 불행해요”라고 소설의 주인공 미샤는 말한다. 우울하지만 세련된 취향의 뚱보 유대인 미샤는 자신의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스라엘에 세보 족과의 연대를 청하는 제안서를 보내지만, 지나치게 순진하다.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바보스럽고, 그렇다고 멍청한 얼간이라고 하기에도 지극히 선량하고 합리적이다.

작가가 체험한 한심하고 또 한심한, 우리들의 현실

작품에는 작가가 삶에서 체험한 것이 직간접적으로 녹아들게 마련이다. 작가 게리가 경험한 어처구니없이 슬픈 경험은 이런 것이 있다고 하는데, 작가의 육성으로 들어보자.

“예를 들어 한 번은 여행 중에 어떤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납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출판사에서 몸값으로 백만 달러는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어떤 여인이 다섯 살짜리 자기 딸을 5달러에 팔 테니 사겠느냐고 물었다. 이 모든 것이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풍자를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현실성을 비극과 결합하는 것이다.”

다문화주의? 미국적 합리주의? 글로벌 사회? - 부패의 현장을 고발하다

작품 속에는 미국과 러시아 이외에도 압수르디스탄에 대해 풍자의 틀 안에서 비판한다. 구소련의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국가주의로 전환하자는 인식이 있었다. 작가는 일례를 들어, 조르지아 같은 작은 국가조차도 내부적으로는 곪아가고 있으면서 주변국과 전쟁을 벌인 것이 그런 경향이 표출된 것이라며 진단했다. 한편 미국에서 9.11테러 때 3,000명이 죽는 참사가 큰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다뤄지는 데 반해, 이런 작은 나라에서 수만 명이 죽는다 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현실의 부당함을 다각도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동기에서도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주인공 미샤와 자본주의의 돈맛을 본 러시아인들이 추앙하는 ‘최고의 문화’가 ‘서구식 민주주의’와 ‘서구식 자본주의, 소비주의’인 까닭에 그들에게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싶어서 집필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작가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말과 다음 작품은…


“나는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엘리트의 삶을 벗어난 다른 삶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러시아는 이제 소수 엘리트가 독식하는, 브라질 같은 사회가 되었다. 중산층은 사라지고 몇몇 권력층만이 특권을 독점하고 있다. 미국 사회 속에서 이민 작가인 나는 나 자신을 엘리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엘리트라는 것은 정치적인 함의가 있다. 즉, 권력층이란 뜻이다. 내 생각에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이 한심한 미샤의 친구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 내 한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내가 “공부해” “텔레비전 꺼”와 같은 말부터 익숙해진 것은, 한국 사회가 엘리트를 지향하는 사회란 증거다. 한국계 부모들은 삶의 목표가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주 120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자녀가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갈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질 수밖에 없고, 정신적인 것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과 관련지어 볼 때, 조승희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다.”

게리 슈테인가르트는 열흘 동안 서울에 머물면서, <여행과 레저(Travel and Leisure)>에 연재하는 여행 칼럼을 쓰고자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가 느낀 서울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과거의 모습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다. 기자 회견이 있던 장소에서 우연하게도 판소리 소리가 흘러들어오자, 하던 말을 끊고 ‘저 소리가 판소리가 맞느냐’라는 말로 한국 문화에 대한 식견을 보여주었다.

현재 그는 세 번째 소설을 절반 정도 써놓았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15~20년 후 미국을 배경으로 직접적인 접촉 없이 PDA 등과 같은 기기를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사회를 그릴 예정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한국계 미국인이 인도인, 러시아인 이민자들과 함께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해서 문학과 지성이 붕괴한 사회를 풍자하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가디언>지는 그의 소설을 두고,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나온 소설 중 최고로 웃긴 소설’이라 평하였고, <뉴욕 옵저버>는 ‘슈테인가르트는 같은 세대의 작가들 중 가장 재능 있고 재미있는 작가의 하나로 자리 매김 했다’고 극찬했다. 소설 속 압수르디스탄과는 처지와 상황이 다르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 매일 신문 지면을 채우는 대한민국도 혹시 또 다른 압수르디스탄(어처구니없는 나라)? 일단은 머리를 저으며 부정하지만, 정신 차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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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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